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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월호 | 뉴스단신 ]

잃어버린 감성의 기억
  • 편집부
  • 등록 2015-09-03 18:20:17
  • 수정 2018-01-02 17: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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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감성의 기억

놀이문화가 옹색했던 유년시절, 방학이면 누이들과 모아둔 용돈을 모아 일주일이 멀다하고 동네 만화방을 찾아갔었다. 오래묵은 책들이 내뿜는 퀴퀴한 냄새와 낡은 소파, 듬성듬성 앉아 흑백의 그림책 사이로 머리를 조아리며 키득거리는 사람들. 그곳에 가면 뭔지모를 낯선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느새 막냇동생의 손을 끌어당기며 그곳을 빠져나가려는 누이의 행동이 야속

했지만 전자오락실과 동등한 평가를 받으며 불건전의 온상이라고 교육받아온 우리는 그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다행히 만화방을 나오는 우리 손에는 종이가방이 들려있었고, 그 안에는 몇차례 허탕치다 어렵게 확보한 이강토’(허영만 작가의 만화 주인공)설까치’(이현세 작가의 만화 주인공)가 등장하는 만화책이 잔뜩 담겨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4. 빌려온 수 십권의 시리즈 만화책을 되돌려줘야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침묻힌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움직임 외에 모든 촉각이 온전히 흑백 그림 속으로 빨려들어가 있었다. 무섭게 내리는 장맛비도, 온 세상을 익혀버릴 듯한 열대야도 모두 잊게 했다. 권투하는 이강토와 야구하는 설까치중에서 나는 유독 이강토를 좋아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고생이 많았지만, 정의롭게 성장한 헝그리 복서의 과정을 멋지게 그려낸 감동이 좋았고,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언제나 유쾌함을 잃지 않은 효심 지극한 착한 심성의 그녀석이 좋았다. 또 한칸 한칸 이동하며 느꼈던 긴장감과 기대감, 섬세한 펜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웃음과 감탄은 어린 감수성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아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사무실 근처 예술의 전당에서 최초로 만화가의 전시<</SPAN>허영만 - 창작의 비밀>2015. 4.29- 7.19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유년시절 감동을 준 그 만화 주인공을 탄생시킨 원로작가의 40년 만화인생을 선보이는 전시였다. 꼭 가보리라 생각했다. 잠깐 시간내서 다녀올 수 있었지만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엇 때문인지 차일피일 미루다 3개월 동안의 전시를 폐막 4일 남겨두고 겨우 찾아갔다. 설렘으로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잃었던 기억과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전시장을 들어서서 출구를 나서기까지 4시간을 훌쩍 넘겼다. 메머드급 전시가 아니고서 한 작가의 단일전시를 관람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일이 있었던가. 오래전 누렇게 변한 책장을 넘기며 그림 한컷, 한컷에서 발견했던 세밀한 감동은 전시장에 선보인 작가의 작업노트 수십권과 스케치, 캐릭터 그림 속에서 고스란히 다시 느낄 수 있었고, 다큐형식의 영상물을 통해 원로작가의 만화와 일상의 삶이 작업대 위에서 동거하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 또한 감동이었다. 중간 중간 내가 너무 유별난 독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다행히도 나와 동선과 시간을 비슷하게 가져가는 관람객들이 몇몇 보였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니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느 예술가가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이토록 동심을 자극 할 수 있고, 그 시절의 감동을 고스란히 다시 전해 줄 수 있을까. 그동안 보아왔던 작품전시 중에 이토록 내 발걸음을 붙잡은 일이 있었나 되돌아보게 됐다. 물론 만화의 예술성에 대한 시비를 걸어온다면 더이상 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어린시절 자연스럽게 접할 수밖에 없었고, 한사람의 감수성을 형성시키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만화가 수십년, 수백년 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서 존재하며 생활 습관과 삶의 질 그리고 인간정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공예품과 다름은 무엇인가 잠시나마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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