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2013.05월호 | 특집 ]

나는 예술가인가 상품 제작자인가
  • 편집부
  • 등록 2014-10-31 14:58:22
기사수정

특집 - 도자예술, 그 미적가치와 가격사이의 간극

나는 예술가인가 상품 제작자인가

이세용 도예가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도자공예품. 2012공예트랜드페어

_?xml_: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나는 예술가인가 상품제작자인가?’ 4월 초에 이런 제목의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고 ‘그러지 뭐’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넘겨버렸었다. 예술이라는 게 결국 fine art를 지칭하는 걸 테고 상품이라는게 그냥 공예를 지칭하는게 아닐까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요걸 어떻게 풀어 나가지? 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예술가라니? 상품 제작자라니? 무슨 이런 해괴망칙한 구분법이 있다는 말인가? 무슨 근거로 공예가들을 상품제작자라고 몰아세운단 말인가? 물론 상품제작자라 불리울 만큼 무턱대고 만들어내는 작가도 있기는 하다. 남의 것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마구 카피 하는 작가도 있기는 하다. 또 조형성이고 예술성이고, 작가정신이고, 나발이고 상관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작업을 하며 내가 작갑네 하는 작가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게 공예가들만의 문제인가? 회화나 조각에서도 늘 모방이 문제가 되어 왔고 말도 안 되는 작업으로 그저 시류에 적당히 결탁하는 작가는 또 오죽 많은가? 공예가가 똑같은 제품을 양산한다고? 공예가들이 실용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품을 만든다고? 그럼 소위 화가들이 그리는 그게 그거 같은 그림들은 무엇이고 그들이 찍어대는 판화는 무엇이란 말인가? 조각가들이 소위 에디션넘버를 붙여가며 몇 개씩 찍어내는 작품은 뭐라 설명할 것인가? 그들의 작품이 건물의 입구에 무슨 해태상처럼 버티고 서서 건물을 장식하고 아파트 거실에 걸려서 인테리어용품처럼 쓰이고 있는 이 쓰임새는 무어라 할 수 있는가? 어떤 작가는 수 십 명 아니 외국 어떤 작가들은 수 백 명의 조수-그들은 우아하게 staff란 단어를 쓰고 있지만-들을 동원해 비슷비슷한 작품을 양산하고 있는데 이들이 만드는 작품은 예술 작품이고 도예가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흙을 반죽하고 물레 돌리고 장식하고 밤새 불을 때서 만들어내는 작품은 상품이란 말인가? 개가 웃을 소리다.

예술도 먹고 살지 못하면 예술이 아니다. 그건 객기다. 그런 거라면 당장 때려치울 일이다. 팔리지도 않고 그래서 그걸로 작가 스스로의 생활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예술이 무슨 예술인가? 물론 전쟁이나 극심한 경제 위기와 같은 시기에는 어쩔 수 없지만, 그 때는 누구나 다 힘들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18세기 유럽에 세워진 회화나 조각가들의 집단인 영국의 왕립아카데미나 프랑스의 미술 아카데미신의 고상하고 도도하신 화가나 조각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작품을 이미 산업화가 진행되어 양산을 하고 있는 공예품들과는 구분을 하고 싶었으리라 싶다. 기계공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회화·조각·공예 등이 모두 사람의 손으로 제작되었으므로 상호간에 구별 없이 혼연일체가 되었을 게다. 그러나 회화나 조각은 계속 사람의 손으로 제작하고 있었지만, 기계공업화로 인하여 공예품이라고 하는 제품은 몽땅 기계로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그들도 거기서 같이 취급되는 게 약이 오를 만도 했을 것이다. 이런 기계로 만들어진 제품은 사람의 손에 의한 것보다 질이 한참 떨어지고 조악해질 수 밖에 없으니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싸구려 상품과 순수미술을 구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회화나 조각의 순수성을 강조한 나머지, 공예에는 미 이외의 사용목적이 있다는 불순성을 지녔다 하여, 마치 공예가 다른 조형예술에 비하여 열등하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게 된 것이다. 미술 공예 운동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을 거치면서 공예인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등의 노력(?)으로 그러한 인식은 차츰 사라지고 있으나 아직도 공예는 파인 아트fine art의 아랫것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좌) 맹욱재 작, (우) 천혜영 작. 갤러리 담 2012.12

황재원 작

 

10 여년 전에 전시장을 찾은 모 유명대학의 회화과 과장 교수라는 양반이 내 도자기를 보고 얼마냐고 묻길래 얼마얼마 합니다.라고 대꾸했더니 곧바로 한다는 소리가 무슨 도자기가 그렇게 비싸? 였다. 이런! 자기 그림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는게 공공연한 사실인데 그까짓 100만원 남짓한 걸 비싸다고? 게다가 자기는 교수 아닌가? 시간 남으면 겨우 겨우 그리는 그림 주제에 프로도 아닌 것이 까불어?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얼굴 붉히고 싸울 입장도 아니어서 그냥 허허 웃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 브로셔brochure에 도예가라고 쓰지 않는다. 내 이름 앞에는 대신 아티스트Artist라고 쓰고 있다. 물론 여기 이 글에는 도예가로서 쓰는 글이니 당연히 도예가라고 써야겠지만 내가 누굴 만나도 도예가라고 나를 국한해서 표현하기 싫다. 나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있고 조각도 하고 있으며 시도 쓰고 있다. 난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염색을 배우고자 하며 목공예도 배우고자 한다. 또한 철 작업을 위해 용접과 주물을 배우고자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고유한 미적 언어나 철학을 표현하는 데 굳이 장르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장르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화가나 조각가들이 도예를 하고 타피스트리를 디자인하고 목공예를 디자인하고 있다.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예술에 대한 관념은 대폭 수정되었다. 외주 제작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지 오래며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수많은 스탭들이 분업화된 작업을 하는 공장형식의 작가들도 많다. 그 방법 또한 기존의 손작업에서 벗어나 기계가 동원되기도 하고 컴퓨터가 동원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매스 프로덕트mass product, 일반대중상품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뤼사르가 태피스트리를 디자인하고 피카소가 도자기에 손을 댄 일 등은 물론이거니와 실크 스크린을 동원한 팝아트같은 예술행위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렸다. ‘미술’이라는 개념 그 자체의 엄청난 변혁이 있는데도 아직 많은 도예가들은 공연히 파인아트fine art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자격지심으로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스스로 상품 제작자라고 생각하고 도자기를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디자이너로서 산업계의 분업 조직에 적극 참여해서 자기의 창의성을 제품에 표현하는 일이다. 공예 뿐 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과거에는 오로지 손에 의지해야만 비로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기계 발달과 더불어 기계가 손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기계는 손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정확하게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싸고 견고한 상품을 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업 생산에 의하더라도 제품은 역시 아름다워야 하므로 미적 훈련을 받은 미술가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이들을 상품제작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범위가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상품제작자라고 해서 예술가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술은 미를 창조하고 싶다거나, 진실을 표현하고 싶다는 인간의 마음Heart을 중심으로 지성과 손Hand의 기술이 결합되어 제작된다고 한다. 그에 반해 공예는 숙련된 손의 기술을 중심으로 지성과 마음이 엮어져서 이루어지고 산업디자인은 지성두뇌:Head을 중심으로 마음과 기술이 결합되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세 분야는 각각 마음·손·머리가 중심이 되어 비로소 활동이 시작되지만, 각각의 영역이 서로 교차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는 무엇이 중심이 되는가가 문제이다. 아무리 손재주가 있고 머리가 좋아도 작가정신이 없으면 미술작품이 될 수 없고 손의 기술이 숙련되지 않고는 본격적인 공예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바랄 수도 없으며 치밀한 계획없이 공업 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세 분야는 서로 중첩되고 보완하며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도 상품을 기획할 수 있고 상품제작자도 적극적으로 예술행위에 접하지 않으면 스스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화가나 조각가가 환경 미술이나 가구 혹은 구조물을 설계하고 디자이너가 순수예술 작업을 직접하는 일은 이제 낯 선 일이 아니다.

우리만 파인아트fine art니 공예니 산업이니 구분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예술가이자 상품제작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프로다. 19세기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구분은 하지 말기 바란다.

 

 

필자 이세용은 경희대학교 도예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립요업기술원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도예가로 전업 후 개인전 20회를 가졌고 대한민국 디자인 우수작가 초대전, 서울 도예비엔날레전, Exhibition of Korean-Turkish artist, Istanbul, Turkey, 독일 Kunsthandwerk aus Korea, Galerie Forum, Meinz, 2008-2009 SOFA참가, 2009 세계현대도자전(불의 모험), 2010호텔아트페어(대구 노보텔, 서울 신라호텔), 화랑미술제(금산갤러리, 서울), 대구국제페어,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 참가 등 다양한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며 활발한 활동 중에 있다.

 

0
비담은 도재상_사이드배너
설봉초벌_사이드배너
산청도예초벌전시장_사이드배너
월간세라믹스
전시더보기
대호단양CC
대호알프스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