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안 사람들의 손위에 책과 신문이 모습을 감춘 것이 바로 얼마 전인데 이제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의 손에도 손끝으로 액정을 누르는 전화기만 들려져있다. 많은 이들이 앞으로는 반짝이고 반들거리는 종이 위에 인쇄된 글이나 사진 한 컷에서 받는 감동이 사라질 것이라며 종이 매체의 종말을 말한다. 종이에 인쇄된 글은 취소할 수 없는 기록이 된다. 기록 새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본인에게 종이 매체의 종말이라는 주장은 치명적이다. 따라서 아무 때고 복사하고 수정하고 삭제해버릴 수 있는 즉흥적인 정보는 스스로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법이라며 자위하게 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오면 잡지사의 구독관리팀은 바빠진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종이로 만든 국내유일의 도자예술 전문 잡지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난히 책을 싣고 출장을 떠나는 동료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종이잡지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이 해를 거듭 할수록 냉담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치 디지털 도구의 진화 발전 속도와 정반대로 학생독자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오히려 나이 들어 대학에 진학한 만학도나 중년의 독자층이 늘어나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조차 손끝으로 액정누르기를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적응하며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구독관리팀의 대학생 구독확장 활약을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중계해보았다.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이 뜨겁다. 서로 본인의 학교에도 와달라는 요청 댓글이 속속 달린다. 아예 이참에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학생 구독자 신청을 받기로 했다. 내부에서는 성과가 좋으면 다음번 구독확장 프로젝트는 온라인상에서만 진행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마음이 좋지만은 않다.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현장을 찾아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들의 고충을 직접 들어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엘피LP판이 귀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댁 거실 한 켠의 먼지 쌓인 턴테이블을 들고 온 일이 있다. ‘지지직’ 엘피판 위로 카트리지가 내려앉으면 둔탁한 시작 소리와 함께 아날로그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카트리지 바늘은 구불구불한 엘피판의 골을 지나면서 만난 먼지까지 소리로 전달한다. 음악을 내려 받아 듣고 지워 버리는 인스턴트화된 디지털 음원과 달리 엘피판은 음악을 소유한다는 느낌을 준다. CD나 MP3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이 있어 사람 냄새까지 나는듯하다.
인문학으로의 회귀를 부르짓는 학자들의 “디지털 기술이 진화할수록 사람들은 그 반대적 가치인 아날로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려 할 것”이라는 주장은 그나마 큰 위안이 된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기기 전인 20세기 초반, 정보시대에 이르는 인류의 역정을 노래한 한 시인의 시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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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living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삶life은 어디에 있는가.
지혜wisdom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생활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knowledge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informaition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_ T.S. 엘리엇 「바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