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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월호 | 작가 리뷰 ]

이복규-心다완, 유에서 無로 무에서 有로
  • 편집부
  • 등록 2013-03-08 08:47:56
  • 수정 2013-03-08 08: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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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다완, 유에서 無로 무에서 有로

이복규 Lee Bok 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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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금 대구미술비평연구회, 화가

 

 

운무가 온 세상을 뒤덮는 신비감 앞에서 모든 의식들은 정지되어 버렸다. 순간 운무 속의 세상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수십만 평의 겹겹의 산과 들, 마을이 자아내는 시원한 정경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흐름과 맞물려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산의 중턱에 위치한 작업장의 높은 지형 때문에 깊은 공간에서 품어 오는 울림이 있었고, 그것은 감흥을 더욱 더 끌어올려 주었다

사람이 집을 말하고 집이 사람을 말한다. 직접 비슬산 기슭에 터를 잡고 길을 내고 집을 지은 작업장은 천상 그를 닮은 모습이다. 게다가 정갈하고 단아하며 실용적이면서도 격조가 있는 작업장은 그의 작업과도 닮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농사일과 작업으로 하루일과를 보내는 그에게 노동에 몰입하는 시간은 길고 힘들다. 어찌 보면 반복된 일상의 패턴 속에서, 외진 곳의 고요와 적막이 외로움을 안겨주기도 하겠지만 의식만큼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이다. “이곳에서는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 역시 그곳에서 풀이나 나무처럼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이복규는 차에 대한 책을 내고, 차 농사를 손수 짓고, 차를 담는 그릇을 만들면서 차를 마신다. 차를 통하여 도통을 하려는가 싶기도 하다. 더욱이 일본열도를 말차란 한 가지 생각을 품고 홀로 차유적지를 다녀보고 차회에 가서 각 유파의 차를 마셔보며 차의 진경을 궁구하는 그 대단한 연구열은 오래도록 그를 차의 세계에 심신을 담게 한다.

그는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또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차를 마신다. 그리고 마음과 다완을 일직선상에 놓고 차의 본성을 담아내고자 한다. 조선의 다완이 역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차를 담는 용도만을 가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이복규는 오랜 세월 다완을 연구함에 ‘차’라는 근본을 앞에 두고, 형태에 대한 조형성과 실용성을 함께 고민하며 차의 전위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밭일하던 그를 불러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문득 사시사철 대자연의 변화를 가슴에 안고 누리며 사는 그가 부러웠다. 그리고 햇볕에 그을린 상기된 얼굴이 다완처럼 행복해 보였다. 그런 그가 작업에 대하여 차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그의 이야기에는 삶과 작업이 일치된 사람 특유의 진정성이 담겨있다. 반듯한 성향이 자아내는 답답증도 잠시 이내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차를 나누는 것이 마음을 나누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처럼 우린 마음을 나누며, 흐르는 시간을 그냥 방치해두었다.

 

사실 그의 작품이 남다른 격조가 있다는 생각을 평소부터 해왔는데, 그 느낌은 그의 삶의 자세에서 나온 거라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렸다. 술을 마시고 차를 나누면서 흐트러지는 감흥에 취하기도 하는 그이지만 작업이야기를 하면 예리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정신으로 이내 돌아온다. 그러다가도 힘든 노동을 당연한 몫으로 받아들이며 막일하는 머슴마냥 생활의 무심無心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를 보는 일이, 그의 작품을 대하는 일이 마냥 쉽게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의 삶과 작품을 감상하고 취하기에는 필자의 감성이 도시란 현실과 바쁜 일상에서 비롯된 어수선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이 풍기는 고고高古한 격조가 마음을 정화시키고 고요히 다스려준다. 생활 속의 그릇 하나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런 감동을 선사하는 그는 대자연의 힘을 모태로 한 진정한 도예가일 것이다.

 

그의 작품은 백자에 이르러 정점頂點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은 백자의 하얀색을 통해 적조미寂照美를 품은 격조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의 백색에는 토기의 빛깔, 청자의 빛깔, 분청의 빛깔 등 모든 색이 담겨 있다. 그의 작업은 무수한 유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무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도달하는 순간, 다시 그는 또 다른 무를 향해 유를 버린다. 그 무수한 행위 속의 하나인 마음심을 담은 작업들은 지금 이 순간의 실존이지만 차에 대한 본질 그 자체를 향한 끊임없는 정진이기도 하다.

‘마음심’은 심장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이다. 그는 마음은 얼굴에 표현되어 나온다는 말처럼 얼굴표정을 마음심으로 재해석한다. 차를 나누는, 마음을 나누는 생활철학이 자기 작품 속의 화두가 되어 마치 일상에서 선을 행하는 수행자의 마음처럼 표현되고 있다 하겠다. 유의적有意的인 철학 속에 무의 세계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심방변으로 문양을 만들고 그 108개의 마음을 새긴 작품은 108번뇌의 마음을 넘어 108번의 반복된 행위를 통해 무아지경으로 가게 되는 염원이 아닐까 한다. 또 그는 ‘心다완’에 마음심의 반복된 패턴을 기호화 시켜 주술적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심이 변형되어 사람 각각의 미소로 바뀌기도 하고, 여체를 통한 마음심의 해체가 여심을 표현하고 있기도 한다. 오래도록 ‘心’을 화두로 작업을 해왔지만 다도에 대한 우리 미의식의 갈증이 내면세계와 맞물리기를 바라며 ‘心’의 마음이 들어간 다완 들을 빚어냈다.

마음심, 이를 통해 이복규는 ‘다완’에 전위적인 차의 세계를 담아 이야기 하고자 한다.

 

‘心’이란 마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가슴, 생각, 본성, 근본, 중심, 도의 본원, 진수의 의미들도 가지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차의 세계가 본질적인 것을 잃지 않고, 외향보다 내향을 꿈꾸는 세계로 나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담고, 마음을 빚는다.

어찌 心다완을 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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