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OVER> 영역을 넘어 확장으로
2012.4. 7 ~ 5. 2 밀알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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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미술관이 주최하고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가 주관, 이랜드문화재단이 협찬한 <CROSS·OVER>전이 4월 7일부터 5월 2일 까지 기독교 고난주간의 끝과 부활절에 맞추어 진행됐다. 밀알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에는 58명의 도자, 유리작가들이 참여했으며, 십자가가 가진 다양한 상징성과 기하학적 조형성을 예술의 영역에서 재조명하는데 목적을 두고 진행됐다. 참여작가는 종교인은 물론 비종교인까지 범위를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적인 조형성을 가진 작품들도 선보였다. 전시를 통해 두 직선을 교차해 놓은 단순한 형태의 십자가 속에서 신앙의 의미와 더불어 예술과 삶속에 스며든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공감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이 지면에서는 평론가와 전시기획자 등 3인이 각기 다른 시각적 차이로 분석한 <CROSS·OVER>전에 대한 텍스트를 소개한다.
참여작가 (도예, 유리작가 58명)강경연, 강소연, 강은영, 고성희, 권오훈, 권진희, 김문경, 김미경, 김애영, 김정석, 김정은, 김종현, 김준용, 김현숙, 김형종, 박경주, 박선영A, 박선영B, 박정근, 석창원, 송은애, 송준규, 신이철, 안민성, 양정숙, 양지운, 우관호, 원경환, 유의정, 윤경혜, 윤영수, 이경주, 이명아, 이미주, 이선호, 이소영, 이윤희, 이인숙, 이인진, 이재경, 이재준, 이정석, 이지수, 이지혜, 이택수, 이학주, 임미강, 전소영, 전현주, 조율리, 진혜주, 최동욱, 최보람, 최재일, 최지만, 편종필, 허정은, 황지혜 (가나다순)
cross·over ➀ 평론가의 시각
최윤정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cross over_형태와 의미의 변주變奏
“영역을 넘어 확장으로”란 부제를 지닌 <CROSS․OVER>전은 십자가를 주제로 작가와 관람객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본래의 이미지를 넘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기획된 전시이다. 예술이 종교와 만나 서로 영감을 주고받아 더 큰 상승효과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 전시라 하겠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예술품의 제작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하지만 재료와 관념의 세계를 탐닉하는 현대 미술에서 종교적 주제는 점차 소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때에 십자가를 테마로 한 전시란 무모하고도 용감한 도전으로 비춰졌다.
60여명의 작가들이 흙과 유리를 재료로 각자가 해석한 십자가를 풀어 놓은 전시는 관람객을 적잖이 당혹스럽게 한다. 전시장은 수많은 개념과 다양한 해석들로 뒤얽혀서, 마치 관현악단이 일제히 악기를 조율하는 듯 소음이 머릿속을 온통 흔들었다. 전시장을 천천히 오가며 얼마간 시간을 보내자 비로소 작품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십자가의 개념을 다양하게 변주變奏하며 작품으로 구현해 놓았고, 각각의 해석들은 종횡으로 교차하며 또 하나의 거대한 개념적 십자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들이 작품 사이에서 엇갈리는 동시에 제각기 관람객과의 소통으로 이어져 다른 층위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많은 엇갈림(“크로스 오버”)이 전시장을 들어 선 순간 한꺼번에 다가오기 때문에 한동안은 그저 우두커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작가들의 변주는 관람객과 만나면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작가들은 십자가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재료․형태․색․질감․의미 등을 여러 가지로 변형하여 연주하고 있다. 관람객의 감상鑑賞은 변이變異된 개념이 다양한 만큼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대의 교차를 발생시킨다. 한 명의 작가가 해석한 십자가는 관람자의 관점觀點과 교차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십자가´로 만들어진다. 나아가 관람자는 전시된 모든 작품과 새로운 ´개념의 십자가´를 형성한다. 관람자가 늘어나면, ´개념의 십자가´도 작품의 수를 곱한 만큼 많아진다. 하지만 관람자는 앞서 본 작품이나 다른 사람의 영향도 받기 때문에 사실상 샐 수 없이 증가한다 하겠다.
´개념의 십자가´는 그 속에 전체와 닮은 모습의 무수히 많은 십자가를 가지고 있다. 해석과 의미는 서로 뒤섞여 혼란스러운 모습이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으며, 계속 반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개념의 십자가´는 자신과 유사한 형태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프랙탈fractal과 서로 닮았다. ´개념의 십자가´는 만들어진 과정은 서로 동일하지만 그 내용은 모두 다르며, 고정된 정의定義로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의미가 부여되는 동적인 상황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십자가라는 테마Thema가 종교적인 범위를 넘어서 현대미술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전시는 ´개념의 십자가´를 발견해 내는 만큼이나 “CROSS OVER”의 중의적重義的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기획자는 예술과 종교라는 두 장르의 결합을 “크로스 오버”로 규정하며 전시를 열고 있다. 이 때 십자가는 본래의 종교적 상징에 예술적 해석이 더해지면서 서로 “크로스 오버”되는 것이다. 작가들이 부여한 ´개념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대신한 거대한 ´사랑´이거나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기반성´이며, 희생을 통한 ´구원´과 이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관람객은 십자가를 통해 예수를 보며, 작가들이 부여한 ´개념의 십자가´를 읽어 본다. 이렇게 신神과 인간은 십자가를 매개로 만나게 되고, 종교와 예술은 작가적 해석을 매개로 “크로스 오버” 된다.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公義’와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만나는 자리이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개념이 한 자리에서 교차하는 것이다-“크로스 오버”-.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서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동시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예수와 기독교인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자신을 내어주어 인간을 생명에 이르게 한 점에서는 예수의 삶을 의미하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縱과 이웃 사랑橫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기독교인의 삶을 상징한다. 결국 기독교에서 십자가는 성경의 모든 개념이 만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작가들은 십자가의 기본적인 형태와 종교적인 의미에 재료의 “크로스 오버”를 더한다. 백토는 조합토 혹은 석기질의 점토와 함께 사용되며, 나무는 점토와 금속을, 유리는 스텐레스 스틸 등의 재료와 한 작품 안에서 교차된다. 이질적인 재료의 만남은 십자가의 상징적 의미와는 별개로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십자가라는 형태 자체가 “크로스 오버”이기도 하지만 작가에 따라 전형적인 교차형을 벗어난 마주침을 계획하기도 한다. 빛이 이용되기도 하고, 색채나 질감의 대비가 동원되기도 하며, 전혀 다른 형태와 의미의 조합이 미묘한 뉘앙스nuance의 엇갈림을 만들어 낸다. 작가들에게 선택된 이런 도구들은 사랑과 용서, 안식처와 기도, 치유와 회개의 눈물 같은 키워드가 되어 다시 한 번 의미의 교차를 형성한다.
문화나 음악 등이 다른 유형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크로스 오버”라 표현한다면, 십자가는 그 자체의 종교적 상징도 이미 “크로스 오버” 된 것이다. 고대 책형磔刑을 위한 죽음의 도구가 그리스도 사후 인류의 구원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의미가 바뀌게 된다. 죽음의 상징에서 죽음을 넘어 부활한 예수의 생명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크로스 오버”된 십자가는 작가의 개념과 관람자의 관점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처음 출발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된다. 여러 단계, 다양한 층위의 “크로스 오버”는 십자가를 종교적 상징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이 전시에서 “크로스 오버”는 ´건너다´라는 의미 코드로 해석될 수도 있다. ´건너다´라는 행위는 종교에서 종종 긍정적인 변화의 의미로 사용된다. 길을 건너거나 강을 건넌다는 행위는 내가 속한 익숙한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의 세계를 벗어나는 행위를 통해 역설적이지만 인간은 진정한 자기성찰에 이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건너다´라는 개념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출발이자, 현재의 자신을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통해 십자가의 새로운 의미에 도달할 수도 있으며, 십자가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소통은 철저히 관람객의 관점에서 재조정된다 하겠다.
십자가는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형태이다. 십자가는 성경의 모든 개념이 만나는 종교적인 자리이며, 동시에 작가적 변주가 이루어지는 해석의 장場이기도 하다. 작가의 생각과 손을 거친 십자가는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재해석된다. 가로와 세로, 종교와 예술, 예술품과 해석이 엇갈리면서 거대한 ´개념의 십자가´는 만들어진다. 종교와 예술의 만남("크로스 오버")은 십자가의 의미를 변화시키며("크로스 오버"), 엇갈림의 중심에 관람자가 서 있다. 관람자의 시선은 다층적인 ´개념의 십자가´를 계속해서 자아내며("크로스 오버"), 찰나刹那에 의미가 부여되고 변화되어 간다("크로스 오버"). 관람자에게 십자가는 더 이상 종교적인 상징물로 머무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주할 수 있는 테마곡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2012년 6월호 exhibition topic에서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