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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월호 | 특집 ]

작가의식에 관하여
  • 편집부
  • 등록 2013-03-07 17: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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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의식에 관하여

작가의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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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용 도예가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예술가의 사명이니 예술론이니 하는 고상한 얘기는 치우기로 했다. 나는 내 작업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이다. 누구를 가르치는 직업도 아니고 그래서 위엄을 떨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 아부를 해야 하거나 고상하게 보일 이유도 없다. 또 인사를 하는 선배 도예가에게 팔장끼고 “나는 교수인데” 라고 거들먹거릴 이유도 없다. 나는 내 작업을 통해 내가 살아온 역사를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그리고 내가 꿈꾸는 미래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고 또 그런 내 작업을 이해하거나 좋아하는 분들과 교감을 나누고 사는 까닭에 뭐 감추고 에두르고 치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심야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나가 내 작업의 방향과 작업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 예술인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날은 뉴욕 화단에서 아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출신 작가를 찾아가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날 늦게까지 작업을 하느라 피곤했지만 자리에 누워 끝까지 그의 작업 세계와 뉴욕 화단에서의 성공담을 아주 흥미롭게 시청하였다. 특히 그가 말한 뉴욕 미술 시장에 대한 짧은 말 한마디가 아주 커다란 울림이 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뉴욕 미술시장은 마치 발명품 경진대회와 같습니다. 늘 새롭지 않으면 금방 도태되고 맙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닌 한 번도 본 바 없는 생뚱맞을 정도로 전혀 새로운 것만이 화상의 관심을 끌고 컬렉터의 주머니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뉴욕의 한 미술대학에서 fine art를 전공하는 학생이 방학 동안에 내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배우기 위해 한 달 정도를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도 그와 유사한 내용이었다. 뉴욕 전역의 벽에 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벽보나 유인물을 밤새 아주 얇은 면도칼로 정교하게 오려놓는 행위예술을 하는 이 학생은 졸업하기도 전에 여러 화랑에서 러브콜을 받은 상태라는 얘기 등등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과거 예술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뒤집으며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게 또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이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예술가는 아무래도 과거의 예술가와는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예술가의 표상은 생전의 이중섭이나 박수근처럼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무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생활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오히려 돈을 얘기면 타락한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그냥 세상살이와는 타협해서도 안 되고 타협될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건 우리나라나 외국을 막론하고 소위 성공한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렇다. 한스 에빙의 말마따나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약속하는(우리나라 몇몇 성공한 예술가만 봐도 그렇다!) 성공이라는 로또를 꿈꾸며 몰려드는 아트러쉬art rush 때문이거나 아니면 이문열의 「들소」에서처럼 태생적이거나 간에 예술가는 고금을 막론하고 가난한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또 달라져야 한다.

 

가끔 내 작업장을 찾는 지인들로부터 ‘당신 불량난 도자기나 하나 줘라.’ 혹은 ‘도자기 하나만 줘’ ‘내 초상화 하나만 그려 줘’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나보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인데도 돈을 줄 생각은 아예 안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그들도 예술은 고상한 것이기 때문에 돈으로 환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나 또는 예술가는 가난해야 좋은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정말 뭣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팔푼이 같은 나도 아직은 덜 타락한(?) 얼치기 도예가라서 그랬는지 얼마 달라는 소리를 잘 못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생각을 바꾸었다. 내 직업이 오로지 도자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서 그걸 팔아서 먹고 사는데 그래서 작품이 바로 재산이고 상품인데 그리고 이게 돈인데 이걸 공짜로 줘? 하는 생각을 하니 약이 올랐다. 그들이 운영하는 귀금속 가게에 가서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그냥 달라거나 자동차 대리점가서 그냥 차를 한 대 달라고 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알았어. 지금 안 쓰는 돈이나 혹은 은행에 저축해 놓은 돈 있으면 줘.”

그렇다. 작가에게서 작품은 상품이며 생활 수단이다. 한 참 전에 본인이 본지에 기고한 글 중에 ‘전업도예가로 살아남기’라는 글에서 접미어 ‘가’에 대해 말 한 적이 있다. 오로지 그 분야의 일로 일가一家를 이루지 못하는 작가에겐 ‘가’를 붙일 수 없다.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의 작업만으로 부모 공양하고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며 또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후계자를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프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축구선수도 공부하거나 직장을 다니면서 하는 아마추어 선수와 오로지 축구를 해서만 먹고 사는 프로 선수가 있다. 가끔 우리는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라는 농담을 한다. 어설프거나 형편없는 행동을 탓하는 농담이다. 프로는 스마트하다. 스마트한 프로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아마추어 축구 선수는 헛발질을 해도 욕을 먹지 않는다. 공 대신 신발이 날아가도 웃고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프로에겐 그게 용납이 되지 않는다. 무수한 연습과 자기 계발을 통해 최고가 되고자 애쓴 사람이 프로가 될 수 있다. 얄팍한 재주만 믿고 게으르거나 건방진 프로는 금방 도태되고 만다.

 

 

이른바 ‘타짜’인 프로의 세계엔 아마추어와 달리 선수가 갖추어야할 덕목이 있다. 굳이 멋있게 표현하자면 작가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가 가져야 할 덕목을 여럿 꼽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이는 역사의식과 소명의식을 거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회참여를 얘기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어떤 권력이나 부조리에 타협하지 않는 진정한 태도를 꼽기도 한다. 다 옳은 얘기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덕목을 갖춘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오히려 이러한 여러 가지 덕목들 이전에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 하나만 거론하고자 한다.

예술은 창조가 근본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창조이다. ‘자연은 하나님의 작품이요, 예술은 사람의 작품이다,’ 라는 롱펠로우의 말과 같이 예술 행위는 남의 것을 흉내 내거나 기존에 있는 것을 복제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요즘 각 지역의 도자기 축제를 가보면 백 개도 넘는 booth에 비슷비슷한 작업들이 많아 제작한 작가가 불과 몇 명 정도인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떤 도자기가 잘 팔린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비슷한 도자기를 만들어 대고 또 어떤 작가의 작품이 잘 팔린다 하면 또 그 비슷한 아류들이 넘쳐나고... 심지어는 자기 세계가 또렷한 작가조차 다른 작가의 작품을 흉내 내기도 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또 그걸 버젓이 전시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프로 작가가 할 일이 못된다. 배우는 중에 있는 학생이 수학의 한 일환으로 흉내 내본다거나 혹은 아마추어라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소위 창조를 업으로 한다고 하는 프로가 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 파렴치한 행위는 다른 작가를 상처내는 일이고 심하게는 그 작가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일일 뿐더러 자신에 대한 예의조차 없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어떤 도예가의 경우에는 모방은 남의 영혼을 도둑질하는 행위라고 격분해서 말하기도 했다.

타 분야의 예술에서 모방이나 표절을 저지른 작가의 경우 매장되는 경우가 많다.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작가로서의 소양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농담 중에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농담이 있다.

‘기본만 하면 중간은 간다.’ 그렇다. 기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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