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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월호 | 작가 리뷰 ]

공동체 활성화로 자생적 활로를 개척한 도예가 크리스틴 데니엘Christine Denniel
  • 편집부
  • 등록 2013-03-06 14:19:02
  • 수정 2013-03-06 14: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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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활성화로 자생적 활로를 개척한

도예가 크리스틴 데니엘Christine Den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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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erie Ceramique d´Art, Atelier Denniel Bonnieux, Luberon, Provence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인간의 의지라기 보다는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힘이 작용한다. 매우 특별한 인연으로 필자는 머나먼 나라 프랑스의 크리스틴 덴이엘Christine Denniel을 만나게 되었다. 도자의 흔적을 찾아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현대도예가 크리스틴 데니엘Christine Denniel을 알게 된 건 2010년 가을이었다. 이후 우리는 한국과 프랑스의 도예에 대한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게 되었고 올해 드디어 프랑스로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크리스틴의 공방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루베론the Luberon, Provence 지역의 보니오Bonnieux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1인 작가의 공방치고는 꽤 큰 규모였다.

유럽으로 갈 때마다 매번 느끼게 되는 사실인데 그 곳의 많은 작가들에게는 버너드 리치Bernard Leach의 스튜디오 포터적studio potter, 즉 소규모의 1인 생산체제인 공방작가정신이 아직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현대도예에 있어서도 이러한 환경은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 내는 토대가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크리스틴도 이러한 배경으로 1인 생산방식의 본인만의 공방을 열게 되었으리라고 본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졸업 이후 스스로 연구하고 탐구하면서 이 분야에 대하여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고 마침내 끝임 없이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도예가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프랑스 북부지역에서 공방을 운영하다가 현재의 프로방스 루베론the Luberon, Provence 지역의 보니오Bonnieux에서 공방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틴 데니엘과의 대화에서 필자에게 크게 관심이 쏠리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도자기 하나로 40여 년간 생계를 유지하며 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도자기로 생업을 유지하며 작가로 인정받게 되기까지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 필자는 크리스틴 데니엘의 생업을 위한 공방운영과 작가로 유지 할 수 있었던 본인의 노력과 노하우를 전해 듣고 싶어졌다. 아마도 많은 한국의 도예가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도자기 작가의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며 저변을 확대하고 시장을 열어 독특한 예술생태구조를 만들어 내는 크리스틴 데니엘과 그 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크리스틴 데니엘은 생활을 위한 도자기를 만드니 만큼 그 기능과 쓰임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실용적 형태에 집중하여 다양하고 실용적인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독특한 유약의 배합으로 장식하여 마무리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프로방스의 자연,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분야로부터 영감을 받은 흔적을 엿볼 수 있었으며 작품에서 프로방스의 자연과 색채가 고스란히 배어나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유약을 동시에 사용하여 장식된 무늬는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기도 하고 표현주의적 작품을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녀의 40여 년간의 노력과 땀의 흔적을 작품을 통해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사용하다 보면 컵의 손잡이와 크기, 찻주전자의 형태와 표면의 처리가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함과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점이 그녀는 작품에 매력을 더해주고 시간이 갈수록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방을 찾고 있는 고객은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전역과 미국에서까지 온다고 하였다. 크리스틴 데니엘은 실생활에서의 쓰임과 사용에 집중하여 편리한 방법들과 편안한 생활예술을 추구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고객들을 만나지 못하면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크리스틴 데니엘은 그녀의 작품들과 고객들이 만나는 다양한 접점을 만드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그녀는 도자기 작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프랑스의 도자기 교육도 우리와 다르지 않게 취약한 부분이 많다고 그녀는 말했다. 자신이 도자기를 배우던 시절에는 대학에서 공예를 가르쳤지만 점차적으로 공예는 순수예술과 심하게 차별을 겪게 되어 결국 기술적인 교육으로만 명맥을 이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도예 전공자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단합하게 되었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도예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했으며 생존을 위한 다양한 길을 함께 모색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프로방스로 오게 된 배경에는 이 지역은 관광객이 많은 곳으로 도자기의 수요 또한 많을 것으로 보았기에 프로방스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따뜻한 날씨를 선호하기 때문에 프로방스로 왔다고 하였다. 이곳에서 1986년부터 프로방스 지역의 도예가들의 모임과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기 시작하여 1988년에부터 뜻을 같이하는 도예가와 손을 잡고 보니오 지역에서의 도자기 페어 및 전시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그 지역 사람들과 함께 문화적이면서 경제적인 활동으로 지속성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보니오 도자기 페어는 더욱 규모가 켜졌고 보니오의 문화 관광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크리스틴 데니엘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노력으로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나누는 것이 도자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말한다.

지금은 프로방스 지역의 여러 도예단체, 협회, 작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방스의 많은 도예가들이 그녀의 공방에 와서 배우기도 하고 또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단합, 공유 체제로 프로방스 지역의 도예 작가들은 전시 또는 도자기 페어 및 마켓의 진출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생계 또한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들의 공동체인 지역 도예가 협회에 가입을 하게 되면 1년간 일정한 지원금을 제공 받는데 이것을 전시, 페어, 홍보 등에 사용한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도예가들과 서로 도움을 주며 협력체를 형성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인상 깊었다. 프랑스에는 대표적인 도예단체 및 협회가 4개정도 있고 지역별로 또 소규모의 협회가 있다고 한다.

 

 

크리스틴의 도움으로 프로방스 지역의 많은 도예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뜻밖에도 한국의 오랜 도자기 전통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듣게 되었다. 한국 도자에 대한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이들은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 한국의 많은 관련 행사들에 대하여도 알고 있었고 상호 교류관계도 갖고 싶다는 의사 표시도 잊지 않았다.

필자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한국의 도자 전통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한국 도자도 국내의 굴레를 벗어나 세계와 소통하고 교류하며 맥을 이어나갈 한국 도자기 분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또한 공동체를 통하여 상호교류하고 상업적인 성과를 만들어가는 프랑스 지역 도예가의 활동을 한국에서도 인식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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