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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월호 | 작가 리뷰 ]

안정현-적층積層 에 담긴 응축된 시간
  • 편집부
  • 등록 2013-03-06 12:16:04
  • 수정 2013-03-06 13: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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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현 Ahn Jung Hyun

적층積層 에 담긴 응축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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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아 예술학

 

 

흙과 물, 불, 그리고 시간이 축적되어 완성되는 도자의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 시간일 것이다. 물레를 돌리고 형태를 만들어내는 시간, 가마에 들어가 뜨거운 불을 견디는 시간, 유약을 바르고 또 다시 굽는 반복되는 과정들. 아마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고요한 시간의 흐름을 인내하고 기다려야만 완성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도예陶藝인 것이다. 안정현이 작업의 모티브로 사용하는 적층積層 또한 시간의 축척으로 이루어졌다. 액체상태의 흙 슬립을 붓질의 단순 반복을 통해 한 겹 한 겹 쌓아 올려 완성되는 적층 덩어리는 마치 지층이나 암석의 단면처럼 무수한 세월이 쌓여 만들어내는 모양과 흡사한데 이는 그의 작업에 있어 가장 첫 번째 단계로 작업의 재료를 만드는 과정에 불과하다.

적층의 단면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2007년부터 적층 기법을 활용한 패턴연구를 시작한 안정현은 작업 초기, 재료를 개발하거나 기술적인 연마, 즉 흙과 불을 컨트롤 함으로서 서로 다른 재료들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것은 안정현의 작업이 연리문練理紋에서 비롯된 것과 관계가 있는데, 연리문은 고려시대 청자토와 색이 다른 흙을 혼합해 만든 도자기로 흙 자체만으로 표현되는 자연스러운 무늬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상이한 소지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높은 파손율은 제작에 있어 한계점으로 지적되어 왔고 안정현은 이러한 문제를 적층과 결합해 해결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제작 방법을 구축하게 된다.

안정현은 석고캐스팅이나 물레작업, 조형작업 등 도자의 일반적인 제작방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슬립을 사용하지만 말랑한 흙의 상태를 유지해 손으로 형태를 만들거나 유약을 쓰지 않고 연마해 표면을 다듬는 등 도자의 기본적 제작 과정을 두루 섞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는 백자소지와 안료를 결합한 슬립을 이용해 적층을 만들고 그 덩어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포를 뜨거나 잘라 기본적인 단위체를 만든 후 이를 서로 조합해 여러 패턴의 블록을 만들어 석고 몰드에서 가압성형hand building으로 도자의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러한 실험적 제작방식은 백자소지와 안료의 비율, 흙의 습도, 온도, 시간, 가압의 정도 등 각각의 과정에서 정확한 수치를 기록하고 계산하며 수많은 실험을 통해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과정을 요구하였고 최종적으로 작가가 의도한 패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도자의 무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안정현의 독특하고 집약적인 패턴은 연리문의 전통적인 방법이 선사하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무늬는 마치 세필로 그림을 그린 듯 정교하고, 실로 잘 짜여진 조직같이 견고한 모양으로 혹은 여백이 있는 한 폭의 추상화처럼 자기의 표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시에 백자에 새겨진 흑색의 선들과 코발트색 무늬는 장구한 세월을 견딘 지층의 연속처럼 때로는 오래된 나무껍질의 표면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물결처럼 자연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안정현은 백자소지에 넣는 안료를 흑과 백, 그리고 코발트색으로 제한하고, 문양이 새겨지는 자기의 형태를 곡선을 완만하게 살리거나 원기둥의 기하학적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단순하게 제작해 자기의 형태보다 패턴에 집중할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을 세운다. 지층의 단면같이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처럼 보이는 패턴과 장식이 최소화된 형태는 안정현의 작품을 일견 쉽게 완성된 도자작품의 하나로 인식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형태의 단순함이 경험의 단순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미니멀리즘 작가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말처럼 안정현만의 패턴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실험들, 여러 단계의 복잡한 작업과정, 거쳐간 시간들은 작품 안에서 서로 고요하게 조화를 이루며 안정현 특유의 탄탄하고 밀도 있는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올해 개인전에서 안정현은 <Specific Objects(특정한 사물)>라는 주제로 적층 기법을 활용한 패턴을 중심으로 오브제, 소품, 조명, 평면작업 등 20여 점을 선보인다. 다양한 패턴의 도자기 외에 안정현은 결이 곱고 층이 조밀한 향나무yellow cedar를 도자작품과 결합해 패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며 서로 다른 재료의 질감이 부여하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손으로 연마한 소박한 광택은 자기의 형태와 결합해 유약이 덮인 매끈한 질감과는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작가는 오브제 아트워크라는 범주에 자신을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데 특히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자신의 작업 영역을 확장하는 대담함도 보이고 있다.

도예는 시간의 예술, 기다림의 예술이고 이러한 요소가 작품을 더욱 숭고한 대상으로 만든다.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패턴을 선보이는 안정현의 작업은 과거의 전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감각으로 표현해 성공하고 있다. 또한 백자소지와 안료의 결합, 적층 블록들의 결합, 도자와 나무의 결합 등 각기 다른 촉감의 결합 등 작품 제작과정에서 발생되는 여러 상이한 결합과 복잡한 과정에 투여된 시간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세련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오히려 더 노동집약적이며 치열한 작업과정을 선택하였고 특유의 성실함과 집념으로 작품 안에서 응축된 시간을 드러내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냈다. 지치지 않는 열정과 작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 시간이 만들어내는 도예의 본연의 정신을 잊지 않으며 무엇보다 옛 것과 새것을 거침없이 아우르는 안정현의 감각은 앞으로의 작업을 더욱 기대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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