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법과 예술
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
흔히 예술은 자유를, 법은 구속을 상징한다. 인류의 보편적인 삶도 자유와 구속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늘 혼재하거나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예술과 법의 관계는 이처럼 중층적이고 다면적이다. 법과 예술은 삶의 갈등이라는 동일 현상을 함께 다루고, 위대한 예술 작품은 법이 지향해야 할 인권의 신장을 지향한다. 그런 예술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예술가들의 사고와 경험 및 시야가 좁기 때문이고,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과 폭, 법치가 후진성을 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권의식이 낮은 탓이다.1) 정치가나 법률가가 끼치는 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비교하면 예술가의 그것은 범위가 좁다고 볼 수 있다. 다소 냉소적인 이 말을 과하게 받아드리고 모욕감을 느끼는 예술가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게 사유하고 활동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탓하는 이들일 확률이 많다.
철학자였던 플라톤Platon은 “이상국가에서는 예술가를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리고 이후에도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추방당하기는커녕 인류의 사랑을 받고 인류를 위한 예술을 창조해 왔다. 법에 의해 추방당한 예술조차 도리어 위대한 예술로 남은 경우가 있었다. 어쩌면 추방당했기에 더 위대한 예술로 남게 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많은 사랑의 서정시를 남긴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하이네Heine, Heinrich가 그렇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법이 범죄시했기에 무엇보다도 치열한 비평정신을 가진 사상가로 제도권을 향해 대항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최근 도예(공예)계에서는 관련법을 만들기가 한창이다. 도예(공예)관련 산업의 진흥을 위한 시책으로 법안 상정을 통해 이를 효율적으로 시행, 관련 문화·산업을 육성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 솔직한 이면은 어떤가. 혹시 법적 테두리를 마련해 그 견고한 보호막 속에 들어가 안위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닌가. 또 자신이 몸담고 일하는 분야의 종목을 국가 법전에 새겨 넣는 최고의 성취감에 의의를 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예술가라면 적어도 네모난 틀에서 벗어나 규범과 기존 질서에 의문을 던지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미적 성취를 이뤄내는데 열정을 다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기술이 아닌 예술은 모방이 아닌 창조여야 하며 새로운 질서와 낯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궁극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은 이번호 특집기사 [도자예술과 법]에 대한 솔직한 개인적 소회로 다른 의미는 없다. 단지 어떤 분야에 대한 법적 장치(특히 예술정책)가 소속된 자들을 품속에서 넣어 안전하게 보호하고 한없이 일방적으로 생계를 책임져 주는 파라다이스만은 아니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1) 『예술,법을 만나다 - 예술의 자유와 법의 구속을 말한다』 박홍규, 이다미디어
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