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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월호 | 작가 리뷰 ]

김시영 KIM SI-YOUNG
  • 편집부
  • 등록 2011-08-17 10:15:41
  • 수정 2011-08-29 1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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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곡이 생겨먹은 그대로의 이 항아리들

안중국 소설가

 

80년대 초 내가 제대 후 복학생으로 연세대 산악부장을 맡았을 때 청곡 김시영은 산악부 2학년이었다. ‘젊은 눔이 왜 이리 겉늙었누?’속으로 되뇐 첫인상이 그러했고, ‘생긴 대로네’하고 나중에 웃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늙은 소 같이 어질고 다소 우직했다. 한결 두드러져 보였던 것은 어진 품성이다. 암벽을 오르는 도중 차디찬 북새풍이 불어오면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자켓도 벗어서 철모르는 1학년 후배들에게 입혔다. 저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간혹 하는 말이, “얘들아, 괜찮니?”였다. 후배들이 혹여 다칠까, 어떻게 될까 저어하며 다독이고 추스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날갯품에 새끼를 껴안으려는 어미 닭 형국이었다. 그런 김시영의 모습을 본 게 몇 번이던가. 후배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기껏 화를 낸다는게 그 특유의 저음 바리톤으로 “어라, 이 녀석들 봐라?”하는 정도가 최고였다.

 

 

검은 달

 

달은 자유로와 보인다
인생 같기도 친구 같기도 사람 같기도 하다.
달 항아리 자태는 서글푼 생명력으로
인간의 자유로움 모두를 알고 있는 듯
하여 멋지다.
잠시 검은 달 항아리에
태백의 풍류를 추억하며
진달래꽃을 가득 담아본다


                                  청곡 김시영

 

 

물성物性은 곧 그 주인의 품성品性이다. 청곡이 만드는 도자기에는 그것이 비록 잘못 구워져 비틀린 것이라 해도 그의 품성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그가 구워낸 도자기를 보라. 그렇지 않은가. 편안하며, 어질다. 게다가 이번엔 보름달처럼 둥근 달항아리라니-. 원형은 두루 원만함의 상징이니, 바로 청곡의 품성 그대로다. 집안 구석에 하나 놓아두면 그 기운에 온 집안이 두루 평안해질 것 같다.
그런데, 그는 그저 어질기만 한 것이 아니다. ‘고집 세기로는 안강최 순서’라는 말이 있듯, 아버지가 안씨이고 어머니가 강씨여서 더더욱 질기다는 평을 듣는 내가 질려서 고개를 흔들 만큼 독한 구석이 간혹 암벽의 그에게서 엿보였고, 그 근성이 도자기를 만나더니 꽃을 피웠다.
그렇다. 그가 구워내는 흑도자기들은 하나 하나가 갓 피어난 검붉은 흑장미처럼 깊은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혹했다. 그러나 장골에 힘이 장사였던 그가 수용소 포로처럼 피골이 상접해지고 허리마저 제대로 펴지 못해 절절 매는 모양을 보았을 때는 그까짓 꽃 천 송이 만 송이 피우면 뭘하나 싶어, “야, 그 도자기 아니면 못 먹고 사냐”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는 그렇게, 백척간두의 암벽에 매달리듯 독하게 우리의 옛 흑자 재현에 올인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로 세계를 움직이는 지성 100인에 꼽히기도 했던 말콤 글래드웰은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했다. 비틀즈나 빌게이츠, 고흐, 모차르트 같은 천재들 모두가 실은 하루에 3시간씩 10년, 아니면 6시간씩 5년 이상 몰입해서야 그와 같은 천재성을 얻었다고 한다. 청곡은 아마도 1만 시간의 몇 배쯤은 도자기에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적당히 해라, 오래 살며 봐야 할 것 아니냐” 하고 싶지만, 물론 청곡은 한때 무서웠던 선배일 망정 내 말도 귓전으로 흘려버릴 것이다.

청곡의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저 우직한 화상이 어떻게 이런 날렵한 도자기를!’ 하는 감탄으로 돌아봤던 기억이 선하다. 청곡요 도자기 자랑은 청곡의 처로 역시 연세대 산악부원이었던 홍옥주가 더했다. “형(산악부에서는 여성도 남자 선배를 오빠 아닌 형이라고 부른다), 이 도자기 무늬 좀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워요!”하며 제 남편이 도자기의 안팎에 고온의 화염으로 그려낸 무늬를 홍옥주는 사랑했고, 나중에는 그녀 스스로도 흑자 만들기에 나섰다. 이를 테면 부부 도공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그랬던 홍옥주는 그러나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는 여자의 몸으로 너무 무리했던 것일까. 시름시름 앓더니 세 해 전 먼저 세상을 떴다.
두 딸아이마저 서울 기숙사로 보내고 나서 가평 깊은 산골짜기 가마 앞에 앉아 홀로 불길을 들여다볼 때 청곡이 마주해야 했을 외로움은 얼마나 깊었을까. 그래도 그는 용케도 견디어냈다.
아내의 사후 그의 도자기는 점점 더 소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달리 말해 점점 더 대하기가 편해지고 있다. 일본인들의 넋을 앗았던 그 세련되고 날렵한 흑자의 모습은 종적도 없고 편안한 시골 노인 같은 달항아리가 되었다. 청곡의 도자기에서는 그래서인가, 이제는 달관達觀마저도 엿보인다.
달항아리는 대개 흰 보름달처럼 흰색이다. 그러나 청곡의 달항아리는 검은 항아리다. 달이 검어지는 때는 일식, 곧 달이 해를 가릴 때뿐이다. 감히 달이 수천억 배는 더 큰 해를 가리려 들다니! 그러면서 검게 타버린듯 암흑의 색으로 변하는 단 한 순간의 달처럼, 청곡의 흑자 달항아리는 또한 알고 보면 열정의 덩어리다. 이청준이 ‘불 머금은 항아리’라는 소설을 썼듯, 그의 달항아리는 온갖 삿된 것을 살라버리는 척사의 기운을 품고도 있다.

작가 김시영은 연세대 금속학과와 동대학 산업대학원 세라믹학과를 졸업하고 국립공업연구소 도자기 시험소 연구원과 (주)한조세라믹 공장장을 역임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 정도 600년기념 ‘신미술창작성’ 최우수상을 비롯해 제13회 일본 기옥도예전 특별상을 수상하고 일본과 우즈베키스탄 한국에서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현재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회곡리에서 가평요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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