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자문화디자인학과 교수
작가 권오훈이 추구하는 작품의 성향을 정리하면 기하학적 구조에 Optical Illusion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작품시리즈와 기하학적구조와 Optical Illusion에 의한 빛과 물이라는 시어詩語로 표현되는 기능과 조형성을 표현한 조명등과 분수시리즈를 들 수 있다.
근래에는 자연물(돌의 이미지)과 유기적인 곡선을 주제로 한 형태의 Tableware Design이 새로운 경향으로 보인다. 기하학적 형태와 유기적인 형태와의 조합을 무리없이 잘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전사 처리된 문양이 다소 진부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형태가 주는 조형적 실험성과 완결성에 비하여 문양이 이에 미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생각된다.
권오훈 교수의 전시리뷰를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우선 난감한 심정으로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필자의 친구로서 작가 권오훈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가까이 잘 안다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고, 권오훈 교수와는 성씨가 같아 때로는 두 사람을 혼돈하기도 할 뿐더러, 산업현장의 경력이나 교육경력, 석고를 주로 다루는 작품제작 방식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경쟁(?) 관계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오해를 낳을 수 있고, 잘 쓴다고 해도 내용의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우려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염려를 무시하고, 지금 이 원고를 쓰는 이유는 앞에서 든 우려가 우려일 뿐이기 때문이다. 권오훈 교수와 본인은 추구하는 방향이나 성향이 다를뿐더러 소위 말하는 경쟁관계로 의식할 만큼 속물적이지 않다는 내심 근거 없는 자만심(?)도 작용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이런 심정은 아마도 권오훈 교수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의 작가로써 작품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이든 작품을 평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모습으로 보여 지고 싶지 않은 솔직한 심정의 표현이라고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족을 달게 된 것이다.
60-70년대 불모지 한국 현대도예의 태동기 대학에서 도자기를 시작한 세대가 겪은 어려움은 보고 배울 모델이나 스승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스스로 하고 싶은 데로 알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도자예술을 시작한 당시의 세대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헤매면서, 어떤 이는 도예의 전통과 현대화라는 작업을, 어떤 이는 일본과 미국의 현대도예를, 또 어떤 이들은 산업현장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인지 60-70년대 작가들의 작품들은 어느 한 분야에 쏠림이 없이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권오훈 교수 역시 자기의 성향 데로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묵묵히 하면서, 아울러 자신의 방법대로 교육자의 길을 걸어 왔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 보여준 도판圖板 작업에서 도자기의 재료적 특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술적 우위가 돋보이는 크기에 압도됨에 비하여, 내용적인 감동을 주기에는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하였다. 어쩌면 감동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기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첫 번의 시도에서 모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권오훈의 작품 성향은 생활과 예술이 만남을 추구하는 SOFA Sculpture Object Function Art라는 개념에 잘 부합되는 작품 성향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망迷妄의 한국 현대 도예에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돌파구의 하나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권오훈은 재료Material와 기술Technology, 공정Process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흔치 않은 작가로서, 장인적匠人的 세라믹 디자이너Ceramic Designer로 완숙한 경지의 기예技藝가 승勝한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