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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월호 | 전시토픽 ]

차와 향, 그리고 혼을 담다 신안용천청자
  • 편집부
  • 등록 2011-07-12 15:48:46
  • 수정 2011-07-13 08:4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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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ngquan Ware from the Sinan Shipwreck

2011.3.22~6.19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신안해저에서 발견된 용천청자를 테마로 한 <신안용천청자>전이 지난 3월 22일부터 6월 19일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용천청자는 중국 오대·북송대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저장성 남부의 룽취안 일대에서 생산된 도자기다. 또한 남송부터 원ㆍ명대에 이르러 중국 내에서도 폭넓게 유통됐다.


용천청자는 송나라 이후 도자기 수출이 급증하면서 바닷길이 많이 이용됐다. 닝보, 푸저우, 광저우를 출발해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이르는 길을 ‘도자기 길’이라 불렀다. 용천청자가 1만 4000여 점이 발견된 신안유물선은 1323년 당시 중국의 저장성 닝보를 출발해 일본으로 향하던 중 난파돼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110여 점의 용천청자를 선보인 이번 전시는 ‘용천청자의 기종’, ‘용천청자의 유색과 문양’ 등 외형적 특징과 더불어 ‘용천청자에서 파생된 여러 문화’에 초점을 맞춰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 도입부에는 신안에서 발견된 다양한 ‘용천청자의 기종’이 전시돼 있다. 신안해저에서 발견된 용천청자는 음식용기, 저장용기, 장식용기, 문방용구로 구분할 수 있다. 음식용기로는 접시, 대접, 주자, 발, 고족배, 잔탁 등이 있으며, 저장용기로는 항아리와 병이 있다. 실내장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는 향로, 화병, 화분, 수반이 있으며 문방용구로는 연적이 있다. 원대의 새로운 지배자인 몽골인과 서아시아의 이슬람인은 큰 그릇에 음식과 스프를 담아 함께 나누어 먹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대형 기종을 많이 사용했다. 원 정부의 적극적인 도자기 수출 정책에 힘입어 대량의 용천청자를 싣고 일본으로 출발했던 신안선에서도 접시, 항아리, 병 등의 대형 기종이 많이 발견됐다.
전시장 안쪽에 들어서면 ‘용천청자의 독특한 유색’, ‘장식기법’ 그리고 ‘장식문양의 다양한 형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 자료를 살펴보면 오대·북송시기의 용천청자는 월주요 청자를 모방한 제품을 주로 생산했으나 남송시기 후반에 이르러 ‘분청’이라 불리는 옥빛 청자를 생산하며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용천청자의 분은 남송 관요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그 원류는 여요汝窯에서 시작된다. 유색을 장식요소로 활용했던 남송시기의 용천청자와 달리 원대 이후의 용천청자는 음각, 양각, 인화, 첩화, 노태첩화 등 다양한 장식기법을 이용한 다채로운 문양으로 장식됐다. 
전시 후반부는 용천청자가 실생활에서 사용된 사례와 그 문화사적인 의미를 살피는 데 주력했다. 원나라 시대에는 복고풍의 영향으로 고대 청동기를 모방한 도자기가 많이 생산되기 시작한다. 용천청자를 많이 수입한 일본에는 그것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헌 자료가 남아있다. 이에 따르면 향로에 향을 피워 실내를 청결하게 했으며 찻잔, 잔탁, 주자 등은 당시에 유행한 다도에 사용했다고 한다. 나아가 형태와 색이 빼어난 용천청자는 실내 장식용으로도 널리 사용된 흔적이 있다.
박물관 측은 “신안해저유물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용천청자가 질적인 측면에서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소장품의 하나임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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