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
도예가, 미국리포터
나는 도조와 한국 전통옹기작업, 드로잉과 함께 장소집약적 설치작업Site-Specific Installation을 하고 있다. 2005년도부터 시작한 설치 작업은 어떤 특정 장소에서, 그 장소와 교감하며, 공간에 그림을 그리듯, 노래를 부르듯, 때로는 팔을 휘둘러 춤을 추듯, 공간에 대한 필자의 감정과 반응을 조형미술로 표현한다. 장소에 따라 점토, 슬립, 모래, 자갈, 종이, 나뭇가지, 아크릴 물감, 아크릴풀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다. 본고는 설치 작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과정, 작품의도를 정리한 것이다.
2006년 미국 크랜부룩 대학원Cranbrook Adacemy of Art에 재학할 당시, 필자는 몇 달 동안 평면의 드로잉을 점토를 사용해 입체형태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한 학기 동안 만든 많은 작품들을 벽에 걸기 위해 크리틱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빈 방으로 옮겼다. 그곳은 한 면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창으로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이 들어오는 조용한 빈 공간이었다. 필자는 6일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작품설치를 위해 그 공간에 머무르며 그 동안, 유리창 밖으로 해가 지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을 보았다. 방의 한쪽 구석에 놓인 라지에이터를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공기를 느끼며 도자 형태 하나하나를 벽에 걸었다. 2미터 가까이 되는 긴 파이프 형태와 유기적 자유로운 형태의 작품들을 벽에 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작품이 걸릴 장소를 정하고 사다리를 오르고 못을 박고 작품을 걸고, 또 다시 장로를 고치기 위해 작품을 내리고 못을 박으며 수십 번 사다리를 오르고 내렸다. 몇 시간 후 필자는 완전히 탈진했다.
학교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가는 길에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누워 있는 나뭇가지를 보았다. 햇빛과 공기 그리고 시간의 흐름으로 구부러지고 변형된 그 나뭇가지는 본인 스스로 점토로 간절히 만들기를 바라던 형태였다. 필자는 바람에 뒹구는 나뭇가지들을 모아 방으로 가져 왔다. 지난밤에 실수로 걷어찬 커피잔 속 커피가 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콘크리트 바닥에 말라붙은 황토색의 무늬는 본인에게 흘러간 시간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두 잊었다.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도자형태들을 벽에 걸고 공간에 설치하고 나뭇가지들로 그림을 그리고 팔을 휘둘러 모래를 뿌렸다. 내가 서있는 그곳이 그 방이 되었고 그 방은 나의 내면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 방에서 바라본 창밖의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따뜻하게 데워진 공기의 맛, 그리고 공간에 드리워진 나를 스쳐간 기억들은 스스로에게 모두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여름 방학의 학교 캠퍼스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박물관 맞은편에는 조각분수가 있는 긴 계단형 연못이 있었는데, 텅 빈 공간의 연못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은 마치 멈출 수 없는 시간을 들려주는 듯 했다. 필자는 그 물속에 도자기 작품들을 넣어보고 싶었다. 학교 건물에서 잔디를 지나 오십여 미터 떨어져 있는 연못으로 작품들을 옮겼다. 작품들은 매우 깨지기 쉬운 형태들로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두 세개의 작품들을 모두 옮기며 작업실에서 연못까지 수십 번 왕복을 해야 했다. 3일 동안 무릎까지 오는 물 속에서 작품을 설치했다. 물의 굴절로 인해 변형되어 보이는 물속 도자 형태들은 마치 지나간 기억 속의 파편같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속의 이끼가 흔들려 마치 문양같이 도자 표면에 자리 잡았다. 햇빛이 물을 비추어 도자의 그림자를 만들어 이 그림자는 다시 물체에 비추었다. 필자는 연못의 콘크리트 가장자리는 그림의 틀과 같고 필자는 그림 속의 부분 같다고 생각했다.
물 속에서 물은 필자의 발을 맛사지하며 쉼없이 흘러갔다. 어느 순간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곤충의 노랫소리, 새의 날개 짓이 마치 고향에 있는 듯 느껴졌다. 순간, 필자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작업실에서 오랜 시간 보내온 시간들은 무슨 의미인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알았다.
빛이 물체에 부딪히며 그 뒤에 어떤 자국을 만드는 것, 그림자는 필자에게 잠재된 기억을 의미한다. 미국 로드 아일랜드주 프로비던드시의 생활품 교환가게에서 앞면은 부드러운 표면으로 뒷면은 스티커같이 접착할 수 있는 천을 보았다. 문득 그것을 바닥에 붙여 그림자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해리슨버그의 스미스 하우스의 조각정원의 공간 바닥에 본인이 오린 추상형태의 그림자를 붙이고자 계획했다. 2008년 찬 공기가 신선하던 가을 이른 아침, 필자는 몇 달 동안 오려서 모은 형태들을 일주일동안 하나씩 하나씩 붙였다. 바닥에 앉아서 그곳을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를 생각하며 바닥을 위로하듯 어루만지며 그곳과 함께 했다. 바닥의 붙인 그림들은 그곳에 드리워진 그림자들과 만나고 바람이 불러온 나뭇잎, 흙과 함께 어우러졌다. 본인이 만든 그림자들은 해가 비추고 바람이 지나가고, 눈이 쌓이고 다시 녹아 그림자들을 드러내기까지 그곳에 오래 있었다. 그림을 붙이며 가졌던 생각들과 그 공간을 지나갔던 사람들이 가졌던 기억은 여러 층으로 축적된 채 그 공간에 함께 섞인 것 같았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