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3.2
서울 일우스페이스
장동광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이헌정의 이번 개인전의 특징은 그간 그가 다루어 왔던 표현재료, 주제의식을 종합한 작은 회고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의 조형적 사유의 지평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져 왔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도해圖解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이헌정의 조형적 탐사의 도해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지향하는 조형적 세계관의 미래를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헌정을 유목적 예술가Nomadic Artist라 부르는 것이 그리 부적합하지 않음은 그가 여행Journey이라는 타이틀로 전개해 온 그간의 개인전이 암각화처럼 말해 준다. 도예그릇전, 설치작품전, 조형도자전, 가구조형전 등 전시형식의 다양성, 드로잉과 회화작품, 도판, 타일과 같은 장르적 변주성, 흙, 시멘트, 철물, 나무, 기성오브제 등과 같은 재료적 복합성 등 현대미술의 수평과 수직을 가로지르며 자유로운 조형의식을 발현해 왔던 것이다.
이번 개인전은 바로 그러한 조형적 활동의 종합적 포개짐이자 새로운 조형세계의 전개를 지시하는 깃발의 펄럭임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이번 근작들을 조망할 때, 건축적 사유Thought on Architecture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측면을 담보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몇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건축적 풍경들이 우리의 시각적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선사하려는 건축적 풍경은 다음과 같다. 1)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이루어진 하얀 색의 방, 2)콘크리트로 구축된 광장에 세워진 작은 도시, 3)두 개의 추상표현주의적 화풍으로 그려진 회화작품이 놓여 진 공간, 4)어린이 놀이용 기차를 변용하여 영상카메라를 장착한 기차를 통해 보여주는 실시간 화면이 중개되는 무대의 방, 5)실험용 비이커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순환적 흐름을 보여주는 탁자, 6)마치 무쇠주물과 같은 빛깔로 구워진 건축적 구조물의 도자조형물들, 7)초콜렛으로 만들어진 만다라상, 8)흰색 입체타일이 설치된 벽면 등으로 구성된다.
앞서 언급한 빛과 움직임의 문제와 더불어 물성과 명상성의 문제는 그의 이번 근작에서 주목을 요하는 비평적 기제이다. 물성은 재료 그 자체가 가진 표면의 표정이기도 하지만, 이헌정은 그것에 데포르망Deformation함으로써 원형 자체의 물성을 눈속임Trompe-l´oeil하거나 전사기법을 통한 나비, 새, 꽃 등을 도자표면에 비밀스럽게 포치해 놓았다. 이것은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재료들, 즉 베니어합판, 시멘트, 앤틱 기성품들의 혼합적 구성에서도 물성 자체가 드러내는 예술적 의미읽기에 관한 그의 개념들이 생생하게 포착되고 있다. 또한 명상성은 그의 이번 전시의 중심축으로 설치된 방에서 극대화대어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하얀 색의 방에 놓여진 의자에 홀로 있는 관객은 그 공간이 주는 환상성, 단일성, 흰색이 주는 색의 침묵성에 의해 색다른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명상이 주는 의미들이 각자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겠지만.
이헌정은 이 불완전한 미궁의 방에서 존재의 자각에 이르는 하나의 계기를 제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어있으므로 무언가를 채울 수 있으리라는 조형적 사유는 그릇이나 건축이나 동일한 시선에서 같은 하늘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헌정은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에게 현대인들이 가진 어떤 동심적 유희성 혹은 일탈적 사유가 가능한 작은 도시를 건설했다. “우리가 끝없는 순환과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이 하나의 바퀴살과 같은 의미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작은 도시로 우리를 초대하여 그러한 철학적 가설을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서사의 재귀환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미궁의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