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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콜렉터
  • 편집부
  • 등록 2011-05-13 10:27:33
  • 수정 2011-05-13 13: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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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

 

 

 

 

 

 

 

 

 

 

 

 

얼마 전, 강남의 한 갤러리 기획전 오프닝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특강시간에 강연을 한 일이 있다. 대상은 회화작품에 관심이 많은 미술품 콜렉터들이었다. 애초 갤러리에서 요청한 주제는 ‘도자예술작품 감상법’이었다. 자칫 전통도자기 감상방법이라는 다소 지루한 강의로 인식될 듯싶어 강의의 첫 장을 ‘도예는 미술인가?’라는 자각적 질문으로 꺼내들었다. 그리고 도자재료의 본질과 역사성, 현대도자예술의 양상들, 감상키워드 등을 전달했다. 강의하는 내내 한 가지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현대 회화 작품을 주로 접해온 콜렉터들이 지닌 도예 분야에 대한 인식이 궁금해서였다. 혹시나 그들에게 도자예술작품이란 가끔 선물로 받아 집안 장식장 안에 넣어두는 다루기 불편한 소장품, 혹은 부엌장 속에 차곡하게 쌓인 규격화된 산업자기와는 다른 손맛이 나는 비싼 수제그릇이라는 인식만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러나 나의 의구심은 곧바로 해소됐다. 강의가 끝나자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다. “장작가마로 굽는 도자기가 비싼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도예작품 콜렉션도 수익성이 있는 겁니까?”, “수입명품도자식기와 도예가가 빚은 도자식기 중 어느 것이 더 소장가치가 있습니까?”, “요즘 백자달항아리 수집이 유행인거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 좋은 달항아리 입니까?” 등의 질문들. 그들에게는 도자예술품도 철저한 재테크 수단이었던 것이다. 본인은 그곳에서 과연 도자예술품이 새로운 투자상품 중 하나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관심만을 증폭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미래가치가 뛰어나고 고상하면서 매력적이기까지 한 멋진 투자종목을 선전하는 전문애널리스트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본인이 처음 생각했던 그들의 도자예술품에 대한 인식과 의구심은 매우 순진한 기우였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도자콜렉터(애호가)는 정말 좋은 찻그릇을 상자에 담아 소중히 여기며 혼자 감상하고 그 가치를 느끼고 행복해하거나, 지방의 외진 산골에 자리한 작업실을 찾아가 작가를 후원해주기 위해 아낌없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이들이 전부였으니 마음의 공허함이 더 크게 느껴진 것 같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자신의 책 『수집이야기』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이야 딱히 어느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애초부터 존재하는 바이고, 내가 이런 식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행위 역시 인간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아름다운 대상,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본래의 진면목을 그 행위에서 찾아내고 또 그것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가 시도했던 수집도 내 마음의 발자취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수집품 하나하나는 나의 친근한 동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은사이기도 하다.”고 했다. 야나기는 적어도 공예품을 수집할 때만큼은 사고파는 이익을 예상하고 수집을 한다거나, 허세를 부리는 불순함을 보이거나, 고가의 물품, 유명한 작품 혹은 이름있는 물건에 의지 혹은 진기한 것, 완전품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물론 진정 미술을 사랑하는 콜렉터는 존재한다. 그들은 미술의 분야 혹은 작품의 유형을 규정해서 수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의 성품에 반해서 혹은 전시된 작품이 감성을 움직이거나 그 조형성이 눈을 행복하게 할 경우 서슴없이 작품을 구입할 것이다. 바쁜 일상 중 하루를 시간 내 전시장을 찾거나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가 대화하고 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가슴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이들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극히 이상주의적인 철부지 같은 생각만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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