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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월호 | 뉴스단신 ]

실용론의 비밀
  • 편집부
  • 등록 2011-04-12 11:01:50
  • 수정 2011-04-13 10: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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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

 

 

 

 

 

 

 

 

 

 

 

어린 시절, 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할머니와 단둘이 집에 있는데 아버지의 손님 한 분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아버지가 안 계신 상황이라 인사만 전하시고는 선물보따리 하나를 건내며 “별 것 아니고, 닭입니다.”라고 했다. ‘왠 닭을...’이라는 의아함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선물로 들어온 닭이 혹시라도 상할까 포장을 풀지도 않은 채 얼른 냉동실에 넣어두셨다. 몇 일 후 설 음식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선물로 들어온 닭이 냉동실에 있는 것을 기억하시고 닭볶음탕을 만드신다며 꺼내셨다. 겹겹이 쌓인 포장을 풀었더니 그 안에는 닭이 아닌 ‘백자다기白磁茶器’가 들어있었다. “다기입니다.”를 “닭입니다.”로 잘못 전해들은 할머니와 나의 실수로 명절날 모인 온 일가친척이 박장대소를 했던 에피소드다.
그 다기는 30년이 지난 오래전 기억임에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멋을 지닌 작품이다. 당시 어린소년이었던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멋스러움이었다. 다관의 뚜껑은 마치 젊은여인의 가슴 몽우리처럼 봉긋했고, 물대는 어린아이의 고추를 닮았으며 손잡이는 어른남성의 그것과 꼭 같았다. 지금보아도 그 독특한 멋스러움은 그대로다. 그 백자다기는 아직도 부모님 댁 장식장 속에 잘 보관돼 있다.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채 말이다. 수 십 년을 소장하며 한 번도 꺼내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부모님은 평소 잎차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었노라고 하신다.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안 쓰시면 대신 가져가서 사용하겠다는데도 쉽게 내어주시지 않는다. 없으면 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도자애호가가 사는 집이 아닐지라도 어느 집이든 그 집안을 꼼꼼히 둘러보면 다양한 형식의 도자예술품이 소장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거실 한쪽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고사성어를 담고 있는 커다란 항아리도 있을 것이고, 대대로 내려와 왠지 TV진품명품에 나가면 수 천만원의 가치로 평가받을 것만 같은 행복상상용 도자기도 있을 것이다. 또 차곡차곡 쌓기 좋아 주부들이 선호하는 코렐식기에게 밀려 찬장 구석으로 밀려들어가 빛을 못보고 있는 핸드메이드 도자식기 등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집안 곳곳에 좋은 도자기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견이지만 멋진 필체의 고사성어를 담고 거실한쪽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나 매일 모닝커피를 담아 마시는 어느 도예가가 만든 작은 백자컵이나 둘 다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없으면 허전할 만큼 존재의미로써 관상적 가치가 있고, 또 하나는 매일아침 커피를 제공하는 용도로써의 가치가 있다. 그래서 두 가지 모두 실용적이다. 만든 사람이 규정한 용도는 보는 사람에 의해서 늘 바뀔 수 있으며, 만든 이의 구분은 어떤 의미로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다는 것은 늘 용도가 있으며 그 쓸모 때문에 실용적인 것이다. 따라서 실용이라는 잣대는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다. 당연히 실용이나 용도로 무엇인가를 구분하는 것은 무용하다.
그래도 본인은 관상용 보다는 쓰임의 용도가 있는 도자문화가 확대되기를 원한다. 자주 쓰고, 깨져서 버리고, 또다시 사들여야 도자시장이 움직인다라는 의무감 비슷한 인식이 내 속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닭이 됐던 다기에 집착하는 이유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백자다기가 어둠에서 나와 빛을 보았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다. 아마 올 설에도 부모님댁 장식장 속 깊이 숨어있는 그 매력적인 백자다기를 반드시 손에 넣기 위해 더욱 강력한 도자 용도론과 시장론을 펼치며 부모님을 설득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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