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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월호 | 뉴스단신 ]

현대미술의 7가지 키워드와 함께 떠나는 방창현의 세계도자기행(10)
  • 편집부
  • 등록 2011-03-03 11: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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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가 아직도 유토피아를 믿느냐?
  • 열 번째 작가 :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

이 글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키워드인 숭고the sublime, 몸body, 미니멀리즘minimalism, 물성materiality, 서사narrative, 개념미술conceptual art, 팝아트pop art를 중심으로 본 현대도예 비평의 글이다. 하지만, 형식면에서는 기행문적 수필의 형식을 빌어 독자들이 현대 도예 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 한국의 현대도예가 오랜 동면의 시기를 지나 이제 찬란했던 옛 영화를 위한 용트림을 하는 이 시기에 한국 현대도예의 미래 비젼과 현재의 성찰을 제시하는 글이 될 것이다.

 

너희가 아직도 유토피아를 믿느냐? 


열 번째 작가 :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

 

This is our century - technology, machine, socialism. Make your peace with it. Shoulder its task.
금세기는 테크놀로지, 기계, 사회주의의 시대다.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라. 그들의 임무를 떠맡아라.
(Moholy-Nagy, 1975)1)

일본의 팝아트는 자국의 경제적 우월성과 문화적 자부심을 발판으로 세계 미술시장에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와 나라 요시모토 Yoshimoto Nara와 같은 걸출한 예술가를 배출한 일본 예술의 상징적인 장르이다. 세계 현대도예에서 일본의 팝아티스트들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그 중심엔 타카쉬 히노다Takashi Hinoda,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 그리고 아유미 호리에Ayumi Horie가 있다. 타카쉬 히노다와 쉬게키 하야쉬는 미국의 SOFAThe International Expositions of Sculpture Objects and Functional Art를 통해 이미 세계적인 작가의 대열에 들어선지 오래 되었고, 아유미 호리에 Ayumi Horie는 도자디자인 분야에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공상과학영화와 일본 만화manga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해온 대표적인 일본의 현대도예가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의 작품을 만난 것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SOFA에서 였다.
작은 동자승들이 우주 전투복을 입고, 일본의 전통적인 사당에 일렬로 앉아있는 작품은 관객들을 시선을 한번에 압도했다. 이것은 작품의 시각적 문법이 가져다주는 단순한 새로움 때문만이 아니라, 내 무의식 속에 늘상 잠재되어 있던 욕망이 어떤 충격으로 인해 의식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내 현실을 마비시키는 그런 경험이었다. 그랬다.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는 20세기 기계문명이 야기한 상처를 감당해내는 21세기의 인간들의 초상을 이렇게 보란 듯이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상처는 이제 어른들만의 몫이 아닌 듯 보인다.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 무장한 아이들이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전장에서 벌써 지친 것일까? 아름다운 테크노피아의 시대에 무엇이 이 아이들을 전장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언뜻 보기에 PVC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 전투복은 1200도의 고온을 견뎌낸 흙과 유약이 만들어낸 현대판 도자 연금술의 결정체였다. 20세기 기계미학과 사회주의를 찬미했던 모호리-나기Moholy-Nagy가 이 작품을 본다면 과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가 찬미했던 사회주의 세상과 기계문명이 만들어 줄 유토피아를 이제 믿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구소련의 붕괴는 이제 역사 속에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고, 모호리-나기Moholy-Nagy가 찬미했던 기계문명을 통한 노동과 생산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환경파괴와 핵무기, 그리고 911 테러와 같은 비이성적인 대량살상의 디스토피아dystopia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는 현대도예와 전통도예가 같이 살아 숨쉬는 일본의 도예생산지로 유명한 미노美濃, Mino에서 작업을 해왔다. 미노는 쉬게키 하야쉬에게 도자기의 전통적인 기능과 기술뿐만 아니라 현대 도자조각의 미학까지 깊게 영향을 미친 곳이다. 쉬게키 하야쉬의 작품에서 보이는 심오한 미학적 개념들을 시각화시키기 위해서는 미노의 축적된 도자공예의 기술과 장인정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쉬게키 하야쉬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주인공들은 도자기로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천의무봉天衣無縫에 가까운 완벽한 기술력을 과시한다. 이 캐릭터들은 모두 석고로 캐스팅 한 후 슬립slip, 흙물을 부어서 천천히 말리고,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소성한 것이다. 쉬게키 하야쉬의 작품에는 단 한 점의 핀홀pinhole, 유약에 생기는 기포이나 실금이 간 자국도 없을 만큼 그는 전통도자에서 물려받은 공예적인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다. 작가의 수공예적인 캐스팅의 기술력은 다름 아닌 대량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현대의 기계문명을 비웃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완벽에 가까웠다.
공예적 전통과 현대미학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대립항을 넘어설 수 있는 공간인 미노는 작가에게 기술뿐만 아니라 작품의 영감을 주는 중요한 원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 쉬게키 하야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상과학 이야기들 중 하나인 일본 구전 설화 죽취물어竹取物語, Taketori-Monogatari(AD 900)를 작품에 중요한 테마로 도입시킨다. 죽취물어는 대나무에서 태어난 절세의 미녀 가구야히메가 달로 돌아간다는 일본의 유명한 휘야희輝夜姬, 가구야히메 설화에서 인용된 이야기이다.2) 작가는 1000년 전의 구전설화와 현대적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키고, 가장 오래된 재료인 흙을 구워 유약을 입히고, 그 위에 현대적 개념을 부여한 것이다. 쉬게키 하야쉬의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실험정신은 셀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낳았지만, 한국에서 전수된 미노의 축적된 전통도자의 기술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도자공예의 장인정신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전대미문의 걸출한 도예작가를 탄생시킨 것이다.
작품 속에 보이는 동자승(아이)은 이 공상과학 이야기에서 나오는 주인공 아이의 이미지를 다시 각색해서 재형상화한 것이다. 전투복을 입고 일렬로 줄지어 있는 복제된 아이들은 현대 기계문명이 남긴 속도, 대량생산, 반복, 표준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기계화된 인공의 세계에서 시원始原의 순수함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보이는 특이함은 비례가 맞지 않은 긴 팔을 가진 아이들이 헬멧을 쓰지 않고 우주복을 입고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나의 시선은 한동안 이 기묘한 인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비평가 아키 나카니쉬Aki Nakanishi는 이 기묘한 아이들이 헬멧을 쓰고 있지 않은 이유를 적에게 자신이 아이라는 존재의 취약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과연 이 아이들에게 적이란 누구인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어떻게 판단하며 찾아야할 것인가?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를 강조한 동양의 문명과는 달리, 투쟁을 통해서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일구어온 서구의 관점에서는 분명 근대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유토피아의 세계를 꿈꾸게 만들었다.3) 바우하우스Bauhaus의 교수였던 모호리-나기Moholy-Nagy와 같은 작가에게 기계문명과 사회주의는 서구의 개인주의에 부여된 특권을 제거해서 평등한 사회, 즉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을 통한 대량학살은 유토피아의 꿈을 산산히 무너지게 만들었고, 권력과 자본주의의 이해관계 결탁으로 인해 테크놀러지는 사회와 대중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4)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는 기계문명에 의해 획일화되어가고, 거대한 정치적 욕망에 의해 희생되어지고 있는 개인의 고유성을 무감각해진 현대인들이 직시해야할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작품에 보이는 반복성은 대량복제시대의 획일화된 문명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현대문명에 무감각해진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 위함이다.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의 작품에서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작품의 개념을  표현하는 매체인 ‘도자기’라는 재료의 사용에 관한 부분이다. 현대 도예 조각가들은 도자기라는 매체와 작품의 개념 사이의 관계를 쉽게 간과해온 것이 지난 짧은 현대도예의 현실이었다. 도예작가이기 때문에 재료를 도자기를 쓴다는 것은 현대미술의 개념에도 부합되지 않을 뿐더러, 자칫 개념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작품의 질을 떨어드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쉬게키 하야쉬는 화장실에서 우리가 보는 일상적인 위생도기의 느낌이 나는 유약을 아이들의 전투복에 입힘으로써 개념적 모순을 피해가고 있다.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에 의해 다소 새로운 개별자의 표상으로 인식되지만, 여전히 표준화되어 단순한 기능만을 나타내는 변기의 이미지를 차용함으로써 쉬게키 하야쉬는 기계적으로 ‘표준화’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잘 정돈된 제도와 위계질서 속에 개별자의 의미를 상실한 정주민들의 세상이 유토피아를 가져다준다는 신화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표준화’의 신화를 따르지 않으면 또한 불안에 휩싸이는 우리들은 과연 어디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것인가? 이 불안감들은 격세유전隔世遺傳에서 흘러들어 온 기이한 유전자에 의한 것은 아닐까? 나는 과연 이 신화에 역행해서 나의 유목적 여정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인가? 쉬게키 하야쉬Shigeki Hayashi의 작품을 보고 온 날 밤 나는 많은 의문에 휩싸인 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춘추전국시대의 혁명가인 장자莊子 BC 365∼BC 290가 쓴 ‘제물론齊物論’과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쓴 ‘천 개의 고원’을 다시 읽었다. 이데올로기와 국가, 자본이라는 정주민들이 표준화시킨 초월적인 기표들을 넘어 진정한 자유를 만나고 싶었다. 정주민의 수목적 위계 질서를 벗어나 자유로운 유목적 영혼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나의 여정은 나의 소망들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들을 많이 만나도 나의 이 목마름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나도 장자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엇이 나의 삶에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인가?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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