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관 도예가
우리에게는 오랜 역사동안 너무나 흔하게 사용해 왔던 옹기를 주제로 삼아 엑스포를 개최 하겠다는 계획을 접하며 성공여부를 떠나서 과연 개최할만한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10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는 성공적 개최였다. 우리 옹기문화의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보이기 위하여 우리의 과거 옹기와 현재의 옹기, 그리고 세계의 옹기류를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었고 옹기의 기능성과 과학성을 전개하는 동시에 이들 모든 내용을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도록, 서적들을 통하여 다각적으로 소개한 행사로 진행되었다. 이는 자기磁器에 비해 낮게 평가되어온 옹기를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행사로는 최초였으며 결국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세미나와 초대전에 참가한 외국의 도예연구가들이나 작가들 특히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작가들은 우리가 발 빠르게 토기와 도기 문화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개최한 엑스포행사를 부러워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국의 토기, 도기 문화도 하루빨리 보존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본 글은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의 행사 중의 하나인 ‘한국현대옹기작가전’의 전시와 워크숍을 기획, 진행하면서 전국의 많은 옹기점을 방문하고 전체 행사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을 말하고자 한다.
옹기작가전과 워크숍
전시와 아울러서 치러진 워크숍은 많은 관람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지금까지 개별적인 옹기 워크숍이야 많이 있었지만 한자리에서 경기도, 충청도의 또아리쌓기 방식의 배기태림과 경상도의 서려쌓기 방식의 배기태림, 전라도, 제주도의 쳇바퀴 태림, 그리고 작은 기물을 만들기 위한 썰질을 구사하는 최고의 장인들의 솜씨를 비교해 가며 볼 수 있는 기회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인들보다도 국내외의 도예가들에게는 깊은 관심과 놀라움을 주었다.
세계에는 옹기와 비슷한 종류의 큰 독이나 수레질 성형기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작은 기물을 만들 때에 수레질을 할 뿐 정작 큰 독을 만들 때에는 수레질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물레조차 사용치 않는 국가들이 많다. 결국 우리의 옹기 제작 기술이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얇고 가벼운 옹기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고 이는 곧 세계적으로 자랑거리인 자산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전국 옹기점의 현황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옹기장 중에 기계생산을 위한 기술자들을 제외하고, 독 크기를 수레질하여 만들 수 있는 옹기장들이 65-70명 정도라고 한다. 연령대에 있어서도 대부분 60대이다. 이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감소된 숫자이며 연령대가 너무 높아 자칫하면 많은 기술이 수년 내에 사라져갈 위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중에 직접 작업장을 운영하는 곳은 35개가 안된다. 예전에는 옹기점을 운영만 하는 주인이 대장이라 불리는 장인들을 여럿 거느리며 옹기를 생산하던 형태에서 지금은 주로 대장 출신의 운영자가 직접 독을 만들거나 한두 명의 대장을 직원으로 채용하여 만들고, 나머지 작은 옹기들은 기계와 석고틀을 이용하여 대량생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가족끼리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점점 기계물레나 석고틀에 의존하게 되고 현대식 가마를 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하겠다. 다행히도 요즘 웰빙 분위기에 맞추어 술, 주스, 장 등을 담그기 위한 큰 독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어느 옹기점이나 독만큼은 손으로 직접 만들고 있다.
현재 생존하는 옹기장으로는 중요무형문화재 2명, 명장 1명, 각 지방의 무형문화재 10여명이 있고, 울주군 외고산 마을의 경우에는 옹기장 8명이 소속된 옹기협회가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만 아쉽다면 옹기점이 가장 먼저 소멸한 강원도에 무형, 유형의 문화재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유형문화재의 경우로는 전북 김제의 안시성 작가가 사용하는 옛 가마와 작업장이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어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403호로 유일하게 지정받았다. 사적지로 지정받은 옛 가마들은 있으나 현재 사용하거나 몇 년 전까지 사용하던 장작가마들이 점차 파괴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더 많은 가마들도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다. 몽탄의 대형 뺄불통가마도 망가져서 사용치 못하고 덮어놓은 상태로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경기도 산이리의 50미터가 넘는 뺄불통가마가 사라진 것을 두고 아직도 많은 도예가들이 잊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옹기점들은 주로 가스가마를 사용하고 있고 대형의 전기가마를 사용하기도 한다. 무형문화재를 취득한 곳들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장작가마만을 고집하며 현대식 가마를 설치하지도 않은 곳은 다섯 군데뿐이다.
청송과 상주, 몽탄, 진안의 작업장의 경우를 보면 흙벽과 흙바닥,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덮은 천장과 초가지붕 위에 양철을 덮은 집이 마치 1970년대까지의 모습 그대로이다. 김제 부거리 작업장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잘 보존된 곳도 있지만 각 지방 행정의 관심 여부에 따라 보호받지 못하고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어 문화재 지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미 작업이 중단된 아산, 청원, 상주, 청도 등에도 옛 옹기막이나 가마가 방치되며 무너져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곤 하지만 청송의 경우에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무형문화재의 작업장인데도 불구하고 지붕을 받친 나무가 부러지고 흙벽의 일부분이 쓰러져가고 있어서 사용치 못하고 방치된 상황이다. 이렇게 대대로 전통만을 고집하는 옹기장인은 국가차원에서라도 빨리 고쳐서 보존하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장작가마를 이용해 구운 옹기는 과학적으로 우수한 기능성과 맛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적인 아름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에 있어서 차이가 거의 없는 아이러니가 존재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이천, 광주, 여주의 전승도자기 요장마다 장작가마를 설비하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때는 곳은 거의 없이 주로 가스가마로 구워 고가로 판매되고 있을 당시에 여주에서 상감청자나 분청사기의 대형 화분을 장작가마로 구워 싼 가격으로 판매하던 상황과 비슷한 현상이다. 장작가마를 때려면 많은 화목을 구해 잘라서 쌓아놓아야 하고 5-7일간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불 때는 기술은 쉽게 얻을 수도 없고 불량률도 많다. 당연히 고가여야 할 옹기가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장작가마에 의한 미적 가치와 아울러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장점들을 찾아 끊임없이 밝혀야 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제언
1970년대 까지 전승도예는 물론 옹기 집안에서도 자식이 대를 이어 가계를 잇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는 반대로 바뀌어서 아들, 딸은 물론 며느리까지 도예를 전공하여 가계를 잇는 공방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자식들이 옹기를 아버지만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옹기점은 대부분 사업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옹기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기 보다는 판매를 담당하면서 직원들이 옹기를 수월하게 만들기 위한 뒷일들, 즉 포클레인이나 지게차, 트럭을 운전한다든가 점토준비, 유약 조합 및 시유, 번조, 홈페이지 관리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작가로서의 길을 소홀히 하면 오히려 사업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무형문화재나 명장이라는 명예의 대를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을 이어야만 하며 그래야만 고부가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번 옹기엑스포에서 옹기에 관련된 책자를 80여권 전시하였는데 전시되지 않은 옹기 서적까지 해야 150여권 된다. 옹기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한 책은 1931년에 일본인이 썼고, 최초의 옹기만의 단행본은 1987년에 미국인에 의하여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발간되었다.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단행본은 30권이 채 안되며 다음으로 석, 박사학위 논문이 많고, 나머지는 학술지, 도록, 보고서 등으로 일반인들이 구매하기 어려운 책들이다. 이들 책 중에 경상도, 강원도 지역을 조사 연구한 서적은 거의 없다. 전통이 잘 보존되어 왔고 옹기점 숫자가 적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연구에 소홀히 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현재의 상황은 물론 폐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업장과 전직의 대장들을 대상으로 자료를 남겨야만 한다. 강원도의 경우도 아직까지 횡성, 홍천, 삼척 등 가마터가 남아있는 곳이 있고 전직 대장들이 생존해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가능한 일이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0.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