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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월호 | 전시토픽 ]

설화문화전
  • 편집부
  • 등록 2011-02-10 10:53:11
  • 수정 2011-02-10 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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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30~11.8

서울 신사동 호림아트센터 JNB갤러리

 

작품보다 먼저 그 작품을 만드는 이의 마음이 있다. 작품에는 만드는 이의 철학, 바램, 미의 관념이 담겨있다. 즉 손끝의 기술보다 손끝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과 의식을 먼저 바라보는 것, 유형有形이전의 무형無形, 물질 이전의 정신은 공예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수작-간절한 만남’을 주제로 한 <설화문화전>이 지난 8일까지 서울 호림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설화문화전>은 기업이 문화를 후원하는 전시로 (주)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가 전통문화를 후원하기 위해 4년째 열고 있는 전시이다. 올해는 나전장 송방웅을 비롯한 전통공예가 6명, 패션디자이너 진태옥 등 현대작가 6명, 산업디자이너 마영범을 포함한 2명의 찬조작가들이 《수작》이라는 주제 아래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전통공예작품과 현대작품들을 선보였다. 20여점의 각 전통공예작품에는 수작의 여러 가지 의미- ‘공예는 손으로 만든 것手作’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秀作’이며, ‘그 우수성을 인정해 작위를 준다授爵’, 또한 ‘서로 주고받는다酬酌’ 가 담겨 만든 이의 정신, 마음, 의식, 미의 관념을 나누는 소통의 기회로 마련되었다.   

김정옥(도예)
도예가 김정옥의 작품에서 표현된 사랑의 개념은 ‘너와 나’에 입각해서 설명된다. 길을 걷다 보면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난다. 나는 그가 걸어온 길을 알지 못하고 오직 내가 걸어온 길만을 알 뿐. 그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반대편 길에 대해 알 수 있다. 나와 너라는 인간관계 역시 그렇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삶에 대해선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람은 사랑 안에서 산다. 사랑이란 너와 나 사이에 있다. 존재를 다 기울여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사랑이란 우주적 동작이다.” 전시 주제인 ‘수작’을 ‘남자가 여자에게 수작을 걸다’라는 뜻으로 해석한 이 작품은 유머와 위트를 담은 추상적 오리들이 간절하고 추상적인 존재임을 상징란다.
진태옥(볼레로)
풍성하고 로맨틱한 볼레로는 패션디자이너 진태옥의 작품. 노방 즉 오간자를 이용한 이 볼레로는 풍성한 불륨감을 살리는 데 50마의 오간자가 사용되었다. 반투명하고 얇으면서도 힘이 있는 이유는 평직 기법에서 오는 것이다. 진태옥은 이 오간자를 달팽이집 모양으로 길게 자른 후 일일이 손으로 주름 잡아 볼레로 같은 오브제를 완성했다. 완결형을 미리 짐작하거나 예단하지 않고 그저 소재에 순응하며 불균형이 균형이 되고 다시 그것이 균형을 이루는 카오스모스를 즐긴 결과다. 한 올 실에 의지하여 미로를 가는 사람처럼, 즉흥의 과정을 오롯이 손끝으로 더듬어 따랐다.

조대용(염장)
가장자리를 비단으로 마감하는 전통 발에서 탈피한 이 작품은 발의 수직성, 경직성을 훌쩍 벗어난다. 광섬유와 이어진 대나무 발은 유연하고 자유로워, 대나무라는 소재의 제약에 도전하고 있다. 문이나 벽에 걸어두고 시선을 차단하는 전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오히려 바람을 온몸으로 반기며 휘날리는 듯한 전위적인 인상마저 준다.
송방웅(나전칠기)
레이저 커팅으로 눈꽃모양을 따라 섬세하게 투각한 알루미늄에 나전을 시공한 이 작품은 전통 나전칠기 기법의 3차원성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현대적 감각을 담고 있다. 작품 아래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무늬가 점차 선명해지는 변화를 보이며 그 영롱한 무지개 빛이 아름답다. 인간문화재 송방웅의 작품은 고려 시대 나전칠기의 본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윤병훈(오죽장)
오죽장 윤병훈의 작품들은 단순한 대나무 공예의 경지를 뛰어넘은지 이미 오래다. 그의 붙임식 오죽공예 작품들은 빛의 종류와 각도,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색깔과 무늬가 변화하는 ‘기하화법’을 구현하여 ‘오죽신품’이라 불린다. 오죽장 윤병훈은 전국을 돌며 대나무를 고르며 대나무 중에서도 탄력성과 매끄러움이 뛰어나 최고급의 품질을 자랑하는 소상반죽으로 제작한다. 오죽은 5-10년의 성장을 지나고 다시 5-10년의 건조 후 작업에 사용되며 25가지 이상의 색을 나타낸다.

유국일(금속공예)
유국일의 감쇠기는 소리의 잡음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며 음악 매니아들에게는 이미 유명하다. 감쇠기라고도 하는 어테뉴에이터는 오디오에서 음량을 조정하거나 신호를 감소시켜서 전체적인 소리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한다. 작가는 겨울 하늘의 별자리에서 별이 지나간 흔적을 모티프로 삼았다. 소리를 정연하고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기기이니만큼 투명하고 정연한 겨울 별을 떠올린 것이다. 작가의 의도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말한다면 완성된 작품은 마치 소리의 결, 물의 결을 닮았다. ‘반짝이는 원형’이라는 형태적 모티프 또한 강물의 흐름 속에 부드러워진 조약돌처럼도 보인다.
김환경(채화칠장)
채색 옻칠 기법인 채화질은 진수, 주석, 꽃 등과 같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아교를 섞어 색을 낸다. 채색 옻칠 기법이라 말할 수 있는 채화칠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채화칠은 문양이나 형식에 있어 표현의 가능성에 대한 제한이 있었다. 김환경의 작품들은 서양화의 트롱프뢰유trompe-l’oeil 기법을 활용함으로 현대 소비문화의 요구와 조선 목가구의 전통을 접목시킨 결과물이다. 무겁고 단정하며 소박한, 남성적이고 금욕적인 조선의 목가구. 그 위에 바람이 떨구어 놓고 간 듯한 실크 스카프는 가벼우며 화려하고, 여성적이면서 현대적이다.
 
박문열(두석장)
자물쇠 등의 금속장식을 뜻하는 두석공예는 독립된 공예 장르로 대우받기 보다는 목가구나 나전공예의 부분으로 여겨져왔다. 이번 전시에서 두석 공예는 기물의 전면에 배치되어 그 물성을 온전하게 드러냈다. 기능이나 문양의 의미에 몰두하던 두석 공예가 막상 표면이 되자, 그것은 본래와는 전혀 다르게 현대적이며 세련된 질감과 장식성을 구현했다. 두석 공예라는 소재와 기법에 숨어 있던 마티에르의 힘이 발굴된 결과, 장인의 숙련된 기술이 더욱 부각되는 결과를 낳았다. 금속 소재의 차가움은 당초의 생태적인 곡선미로 완화되었다.

배세화(가구)
찜통에서 나무를 쪄낸 후 5-10초의 시간동안만 나무가 구부러질 수 있는 성질을 이용한 작품. 유기적인 구조와 형태를 재현하는 배세화는 자연과의 조화에서 자신의 미학을 찾는다. 이는 자연 공간을 인간과 정신적 소통이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구조를 추구하는 그가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스팀 작업들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을 선보인다. 단순한 직육면체에 약간의 왜곡이 더해지면서 배船 같기도 하고 요람 같기도 한 가구가 탄생했다. 작가의 전작前作과 이어서 생각한다면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눕히는 요람으로 읽을 수 있지만, 물과 바람에 순응하는 자연스럽고도 순한 형태를 감안하면 배라고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홍종진(배첩장)
밀가루 풀을 이용한 배첩. 4대째 고문서 복원을 통해 역사를 재현하는 배첩장을 이어오고 있는 홍종진의 작품. 열두 폭의 병풍은 배첩이라는 공예의 특성을 최대한 희석시키고 무화시킨 다분히 역설적인 작품이다. 배첩의 존재가 사라지자 글씨의 아우라가 강렬해졌다. 공기 중에 떠올라 부유하는 듯한 글씨는 공교롭게도 친필이 아닌 탁본이다. 또 한번의 역설이다. 복제가능하며 진품/모조품이라는 예술적 구분을 모호하게 흐려놓는 글씨들은 의미 사이에 구획된 경계를 다시금 지운다.

김성연(유리)
유리작가 김성연은 유리를 녹여 불거나 주조하는 과정을 선택하지 않는 대신 크리스탈 가루를 쌓아 녹이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크리스탈 가루를 쌓는 방법을 사용한다. 작가가 의도한 형태를 빚어낼 수는 있지만 한없이 더디고 고된 작업이다. 빛을 품고 투과하고 반사하는 크리스탈에 스며든 색채들은 마치 채색수묵화처럼 보인다. 자연물 그대로의 형태를 담은 그의 작품들은 가장 자연에 가까운 듯하면서 동시에 그것에서 가장 멀기도 하다. 무위자연과 ‘낯설게 하기’ 효과가 동시에 구현된 셈이다.

강석영(도예)
조선백자를 입체, 평면 두가지 표현으로 재현해낸 도예가 강석영. 디지털 문명적인 시각으로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해석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수작酬酌하는 순간이다. 입체와 평면의 동시적 표현은 극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변화가 아닌 은근하지만 선명한 혁신이다. 그의 작업은 전통의 수용과 그것의 현대적 변용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다.


장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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