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53)은 명품 하나를 만들기보다는 좋은 찻사발을 많이 만들어 낸다. 때문에 그의 가마는 고장이 잦은 편이다. 그만한 열정이 없다면 좋은 도자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한 여름 여전히 가마번조가 한창인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 남구 문현동의 도심 속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 토담요를 찾았다.
지리산 태토와 오감五感천목유
김동열의 찻사발은 멋과 기능적인 면이 적절히 조화됐다. 여러 찻사발 중 「속구형 다완」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속구형 다완」은 독특한 구조로 다솔로 차를 저을 때 공기와의 접촉이 많아 거품이 많이 나고 전 바로 밑 부분이 안쪽으로 살짝 굽어있어 차가 넘치지 않는다. 또한 손에 잡기 편한 약간은 둥근 형태와 적절한 크기는 차를 마시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고 입술과 구연부가 자연스럽게 밀착이 되어 차를 마실 때 편하다. 이 외에도 그의 작품에는 거북이 등껍질 형태의 「별구형 다완」, 문인들이 격불을 하며 그림과 글을 쓰며 사용했던 「창구형 다완」, 전부터 굽까지 일자로 뻗은 납작한 형태의 「염구형 다완」 등이 있다. 자주 쓰는 유약은 크게 다섯 가지다. 모두 천목유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비율분배에 차등을 두고 가마번조 시간에 차이를 둬 다양한 색감과 우연적 요소들을 뽑아낸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모두 생김새와 색감이 다르다. 흙은 주로 산청토를 쓰는데 가끔 시간이 날때마다 지리산에 오르며 태토를 구해 그가 가진 흙과 조합해 쓴다. 특히 그의 작업실에는 직접 제조한 까만 태토가 있다. 오랜 실험 끝에 완성된 까만 태토는 번조시 천목유와 어우러지며 다른 태토에 비해 더 깊은 색감을 내기 때문에 그가 자주 활용하곤 한다.
산행 중 찻잔에서 발견한 두 번째 인생
1981년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김동열은 성공을 꿈꾸며 건축업을 시작한 사업가였다. 1997년 IMF의 여파로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그 역시 사업이 어려워지자 모든 것을 포기한채 하던 일을 접어야만 했다. 좀처럼 희망은 보이질 않았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산을 타는 일뿐이었다. 그리곤 산행 중 어느 산장에 잠시 들렸다. 주인이 내온 차를 마시자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찻잔에 담긴 주인의 정성과 찻잔을 보자 그는 그간 느끼지 못한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진 것이다. 작가들이 지닌 숙명적인 예술가적 재능과 끼를 갖고 있거나 특별한 사연은 없다. 그는 이렇게 아주 단순하고 우연한 기회에 도예와 차를 접하게 됐다. 당시의 인연으로 경성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도예의 기본부터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이기주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교수에게 도예의 기본과 전반적 흐름을 배웠고 유약과 소지에 대한 의문은 명지대학교에서 주최한 계절특강에 참여해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다기와 다완, 조형물과 유약실험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가마번조시 늘 다른 문양과 다른 색채를 만들어내는 천목유였다. 그렇게 10여 년이 넘게 도예를 공부했다.
이후 김동열은 2008, 2009년 서울 통인화랑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천목유의 다양성에 대한 실험적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에서 그는 도자기 콜렉터인 한 관람객을 만났다. 전시 이후 그 관람객은 송대의 진품 천목다완 수십여점을 들고 그의 작업실에 찾아왔다. 상자와 보자기로 정성스럽게 싸여있는 있는 포장을 벗겨내자 그동안 책에서만 봐왔던 작품들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고 작품을 마음껏 보고 만지자 손이 떨릴 정도의 황홀함이 느껴졌다. 당시의 황홀함은 그를 더욱더 천목유의 매력 속으로 끌어들였다. 2010년 가진 경인미술관에서의 세 번째 개인전은 천목의 완성도에 대한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한 무엇인가 항상 허전했던 마음들이 사라졌고 제대로 완성된 작품을 보여줄 수 있었다. 평소 그의 작품을 눈여겨 봐왔던 도예 관련인, 콜렉터,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이전까지는 자유롭고 창작적인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다면 이 전시에서는 투차斗茶(차 맛 겨루기)의 조건에 맞는 기형의 정확성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
천목다완의 신비, 불가능은 없다
김동열은 천목다완 외에 다른 작업은 하지 않는다. 천목다완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안 이상 다른 작업에 신경 쓸 시간과 여유가 없다. 최근에는 「요변천목다완」을 연구중이다. 「요변천목다완」이란 중국 남송시대에 처음 제작된 작품으로 내부 흑갈색을 중심으로 청백색의 달무리가 낀 듯한 팥알 크기의 무늬를 흩뜨린 다완이다. 지금은 현존하는 3개 모두가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 최근에도 많은 도예가가 「요변천목다완」의 재현에 도전하고 있으나 성공한 예는 드물다. 그는 “그만큼 모방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실물이 존재하는 이상 아무리 재현이 곤란하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천목다완은 언제나 신비함 그 자체인 것이다. 전시기간 중 한 관람객이 그가 가장 소중히 하는 작품을 구입했을 때에도 그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차나 도예에 관심이 전혀 없어보여 혹시나 함부로 다뤄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이 화려하게 쓰여지는걸 바라는건 아니지만 어두운 창고 안에 자리하고 있는 건 더더욱 바라지 않는다. 결국 그의 마음을 하늘이 알았는지 구입자는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반품을 했다. 그리고는 전시 마지막 날 갤러리를 찾은 한 스님이 그 작품을 구입해 갔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0.08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