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공예협회 볼티모어쇼 참가기
2010. 2.23~28 American Craft Council
| 전신연 미국 리포터
필자는 올해 미국공예협회American Craft Council 주최로 볼티모어 컨밴션 센터에서 열린 <미국 공예협회 볼티모어 쇼 2010American Craft Council Baltimore Show 2010>에 아티스트로서 참가했다. 미국공예협회는 미국 전역의 6지역(Baltimore, Atlanta, St. Paul, San Francisco, Charlotte, Sarasota)에서 1년에 걸쳐 차례로 행사를 갖는데, 볼티모어 쇼는 그 중 제일 먼저 열리는 가장 규모가 큰 행사이다.
쇼는 모두 엿새간 계속되었다. 2월 23일~24일의 전반 이틀은 홀세일쇼wholesale show로서 사업자 등록을 한 갤러리 소유주, 콜렉터, 기자 등만이 입장할 수 있었고, 2월 25일~28일의 4일간은 퍼블릭쇼Public Show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올해로 34번째인 볼티모어 쇼는 미국 국내 공예쇼 중 가장 큰 규모로 이번에도 미국 각 지역에서 약 700여명이 넘는 작가들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었다. 참여 분야는 바구니(4), 도예(89), 의상 및 패션 액세서리(135), 장식 섬유(37), 가구와 조명(49), 유리(67), 에나멜 장신구(16), 금속 장신구(120), 금속(42) 장신구 및 보석류(244), 가죽 장신구와 의상(26), 혼합 재료Mixed Media 장신구, 책, 인형, 조각, 벽걸이(59), 만화경(2), 목공예(40), 종이(7), 악기(3), 장난감과 퍼즐(3) 등을 망라한다.1) 그 외에도 두세가지의 재료를 넘나드는 혹은 섞어져 있는 부스들도 눈에 띄었다.
미국 공예협회는 전국적인 비영리 공공 교육 단체로서 1943년 현대 미국 공예의 이해와 감상을 대중에게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Aileen Osborn Webb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협회는 주요 공예잡지인 『American Craft』를 격월로 출판하고, 매년 열리는 공모전, 리더쉽 학회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주최한다. 매년 쇼를 열 때마다 협회는 새로운 시도를 하곤 하는데, 올해에는 AlCraftAlternative Craft Movement란 이름으로 주로 소규모의 공예쇼에서 활동하는 독립작가나 지방에서 작업하는 작가들 중, 독창적인 테크닉이나 재료들을 이용하는 작가들을 ACC쇼에 참가시킴으로 문호를 넓혀 그들의 커리어를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는 발판을 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회를 마련했다. 수백명의 지원 공예작가들 중에 심사를 거쳐서 선정된 참여작가들은 전시장 중간 한 곳에 모여서 연결된 테이블에서 각자의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필자는 지난 6년간 이 행사를 본지에 소개하면서 이 행사의 진행이나 목적, 많은 참여 작가들에 대하여 알고 있었는데 올해에는 전시 작가 자격으로 참가해 행사의 준비 과정부터 부스 세팅, 작품 운반, 판매 등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이 쇼를 준비하며 그 동안 작업하며 모아둔 아티스트로서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도자 조소/조각 작품들과 「추상풍경Abstract Landscape」, 「인체 해부도Human Anatomy」, 「내 마음은 어디에Where is my mind?」 등의 사람들이 쉽게 감상하고 팔릴만한 기능성 있는 용기를 지난 겨울 내 준비했다. 컨벤션 센터의 행사장 안에 10´×10´(사방 3m)의 공간의 부스를 과연 어떻게 꾸밀 것인가? 어떤 재료로 벽을 세워야 나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고 관람객들도 용이하게 들고 나고 할 수 있을까? 제작 경비는? 많은 고민 끝에 필자는 쇠파이프로 구조를 만들고 흰색 커튼으로 사방을 가리는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왜냐하면 이 ACC쇼에 참가 신청을 할 때 필자는 작품을 판다기 보다는 지난 수년간 제작해 왔던 본인의 작업을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인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부스 셋팅에는 간소하고 비용이 저렴한 쪽이 좋을 것 같았다.
쇼가 시작되기 전 일요일과 월요일은 부스를 설치하는 시간이었는데, 볼티모어 컨벤션 센터의 큰 규모답게 많은 진행요원들이 적재적소에서 행사 진행을 돕고 있었다. 이틀간 각각의 노하우를 이용해서 전국에서 모인 700여명의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형태의 부스를 설치하는 풍경은 무척 흥미로웠다. 필자처럼 쇼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은 설치하는 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10년, 20년이 넘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준비된, 가볍고, 튼튼한 소품들을 이용해서, 두어 시간 안에 프레임, 벽 세우기, 작품 진열하기까지 끝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나마 필자는 전시장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살고 있어서 작품 운반이 용이했다. 다른 많은 전시자들은 작품과 부스 셋팅 재료를 운송 회사을 통해 화물로 부치고 비행기로 볼티모어에 도착해서 행사장으로 와서 짐을 풀어 쇼를 준비하기도 했다.
화요일, 수요일은 홀세일 기간으로 갤러리 관계자나 비즈니스 사업자 등록증을 가진 사람들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일반 관객들이 없는 관계로 비교적 전시장의 분위기는 한산했다. 메릴랜드, 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등의 대학과 고등학교 등에서 많은 학생들이 ACC쇼에 견학을 왔고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로부터 질문도 많이 받았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퍼블릭쇼로 일반인들이 관람 할 수 있었는데 이 나흘에 걸친 기간에 지도 교수, 가르쳤던 학생들, 지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람객들이 다녀갔다.
올해 행사에는 작가로 참여했기 때문에 다른 해와는 달리 전시장을 자세히 둘러보기는 힘들었지만, 설치 단계부터 주위에 참가한 도예가들로부터는 그들의 작품세계, 작업 환경, 교육 배경, 아트 시장 등의 정보들, 그리고 이런 쇼를 참가하며 생활을 유지하는 그들의 노하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필자의 바로 앞 부스를 사용했던 제임스 구기나James Guggina는 메사추세스의 플로랜스에서 온 기능성 물레작업을 하는 도예가다. 그는 이번 쇼를 위해 완전히 다른 두 스타일의 그릇들을 준비했다고 했다. 한 시리즈는 빨강, 노랑, 파랑 등의 현란한 색감의 유약 배치로 기능적인 용기들에 생명력을 더했고, 다른 시리즈는 빛바랜 광택있는 흰색의 유약에 군데군데 검정색 안료로 액센트를 준 디너웨어 세트들이었다. 그는 실용적인 용기들을 만드는 도예가로 활동 한 지 15년째라고 하며 스튜디오에서 그릇들을 제작하여 각종 공예 쇼에 참가해서 팔고 갤러리나 기프트 샵 등에 납품하는 것으로 꽤 괜찮은 생활을 영위한다고 했다. 철저한 실용정신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는데, 그는 팔릴 것들을 만든다고 단언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 팔리지 않으면 생산을 중단한다고 했다. 그는 메사추세스 예술대학Massachusett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페인팅을 전공했다고 했다. 제임스 구기나 작가의 홈페이지는 www.coolpots.com이다.
역시 아름답고 환상적인 유약 표면으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톰 캔들Tom Kendall의 기능성 용기들은 자연에서 대할 수 있는 녹색, 황토색, 갈색 등으로 마치 추상 표현주의의 페인팅 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콘 10 포셀린으로 물레 작업 한 후에 고온 유약을 바로 초벌구이가 안 된 그린웨어에 붓으로 여러 겹 바른다. 그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유약 레시피에 안료와 산화철로 색상을 내고 철저한 번조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색깔 별로 구분하여 사용한다고 했다. 표면 광택이 없는 유약은 어떻게 만드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기본 유약에다가 점토 성분을 유약에 더 첨가한다고 했다.
밥 풀Bob Pool은 캘리포니아에서 온 작가였는데, 광택있는 현란한 색상의 유약들을 입힌 석기 흙으로 만든 콘 10 번조 용기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부스 설치하는 날부터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함으로 눈인사를 나누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행사 기간 내내 즐겁게 지냈다. 밥은 막사발 축제에 초대되어 한국에 다녀온 경험, 한인이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들, 정감어린 한국문화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있을 갤러리 전시에 한국 도예가들도 초청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큼직한 벽걸이용 접시와 항아리들을 캘리포니아에서 운반하는데도 만만찮은 노동과 경비가 들지 않았느냐는 필자의 궁금증에 그는 전국에서 모인 갤러리 소유주나, 바이어들에게서 주문을 받기 위해 샘플들을 준비했다고 하며 주문에 맞추어서 용기들을 그의 스튜디오에서 생산한 다음 그들에게 보낸다고 했다.
American Craft Council은 전국적으로 일곱개의 공예쇼를 열며 홍보 광고를 통해 공예인들을 지원하며 그들 작품의 판로를 제공한다. 수 십 년 동안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이 쇼를 참가하는 아티스트가 많았다. 쇼를 지원할 당시에는 필자가 거주하는 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잘 알려져 있는 큰 규모의 공예쇼이고 수많은 관중이 찾는다는 이유로 서슴없이 지원했었고 도자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한번쯤은 경험해 봐야 할 거라는 예상에서 참가했었다. 지원할 당시부터 경쟁이 심해서 참여작가로 결정될 때까지 쉽지는 않았다.
참가자로서 부스 경비만도 $2,000(약 220만원)이 넘었고 전기사용, 카페트, 파이프 대여, 주차까지 하면 실제로 들어가는 돈은 $2,500 (약 280만원)이 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이 쇼를 위해 온 도예가를 생각하면 호텔에 비행기표, 일주일 식비, 포장 운송비 등까지 합하면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들어가는 비용만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작품제작, 스튜디오 운영, 광고, 재료비 등 아티스트나 공예인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는 일이 이래저래 수월치는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마감하면서 아티스트로서 오로지 작품 제작과 그것들을 팔아서 생활한다는 것은 안정된 수의 수집가들이나 갤러리, 기프트 샵 등이 기다리지 않는 한 무척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목걸이, 팔찌, 반지들이 주가 되는 여성을 아름답게 꾸미는 귀금속 공예분야는 그 가격이 비싸도 여성들의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구를 채워 준다는 면에서 이 경제적 위기, 불황의 시기에도 어느 정도 비싸게 팔리고, 비즈니스가 되는 반면, 공예를 넘어선 예술 작품들에 대한 수요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예술가로서 판매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의 질을 높이고 개인의 독창성을 발전시키면서 예술성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작가로서 이상적인 것일까 생각해 본다면 그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고흐나 쟈코메티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대표작들을 가장 힘든 시기에 만들어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떤 면에서 이 어려운 시기가 우리 예술가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