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진 전 _ 피부자아The Skin Ego
2010.3.31~4.6 서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전시실
류혜진은 세상이 뭐라 하던 뚜벅뚜벅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작가다.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녀의 용기와 발빠름은 사람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마치 피부가 숨구멍을 통하여 안과 밖을 숨 쉬며 공유하듯 그녀는 변화하는 작품을 통하여 진솔함을 보여주고 있다. 신체 즉, 피부는 기억과 관련된 경험의 중요함을 담고 있다. 엄마의 달콤하고 다정스런 피부언어는 아기를 포근하고 뽀송하게 감싸주고 이러한 즐겁고 안전한 피부의 경험들은 이에 반응하는 아기 신체언어의 바탕으로 아기자신의 심리를 감싸주는 심리적 싸개인 피부자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나가며 언어화된다. 받아들이고 내뿜는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녀의 <피부자아>는 시간이 정지된 유아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사라져 잃어버릴지 모르는, 풍경이 되어버린 아들의 유년시절 추억을 옷가지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정지된, 켜켜이 쌓인 작가 유년시절의 내면화된 가치는 구멍이 숭숭 뚫린 무미건조한 나무박스로 외재화 되어 다시 보여 진다. 옷가지와 박스의 낯선 대립은 마치 피부의 무의식처럼 의식과는 상관없이 반복되는 엄마와 아이 둘 사이에 맴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낯섬을… 그래서 서로 공유된 불편한 진실의 순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슬픔이 밀려온다. 그 이유는 유년기의 공유된 불편한 진실, 공유된 증상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증상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류혜진의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의 불편한 진실의 일부가 되어 우리 속의 증상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지금 여기 작품 앞에서 박제화 된 우리의 신체를 허물고 하나의 유대관계를 만들게 한다. 이것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는 거침없는 방법이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멈추기도, 바라보기도, 요동치기도 한다. 1996년 이후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작품의 색깔들이 모두 다른 것은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는 도예가로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작가의 특이성이 그녀만의 작업경향을 만들었다고 본다.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새로운 무의식의 모습을 기대하며, 그녀의 진지함과 실험정신에 깊은 포옹을 해주고 싶다.
이원영 PIP정신분석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