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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월호 | 작가 리뷰 ]

김시영_불에서 색을 찾다
  • 편집부
  • 등록 2010-04-30 11:51:53
  • 수정 2010-05-13 08: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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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 _ 불에서 색을 찾다
| 서정걸 미술사, 미술비평

“모든 종류의 예술 가운데 불을 사용하는 예술보다 더 위험스럽고 결과가 불확실하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귀한 예술을 나는 본적이 없다”
 (폴 발레리)


도예란 어쩔 수 없이 불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지만, 청곡 김시영은 <불의 작가>라 할 만큼 불의 변화를 추구한다. 불의 변성점을 지나 물질이 변화되는 과정에서 예술적 묘미를 찾는 것이다. 불을 통해 유기물 속에 잠재되어 있던 색채를 일깨우는 작업이 바로 김시영 작품세계의 핵심이다. 불은 자연의 영역이다. 흙 또한 그렇다. 도예가의 불때기는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불의 세례를 통해 도자는 빛을 얻고, 격조를 부여받는다. 그가 불로 빚어내는 색채는 변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가 빚는 흑색의 오묘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것은 예술과 과학의 결정체다.

세상의 색들은 빛에 의해 생성되지만, 김시영의 색들은 불에 의해 생성된다. 그것은 자연 속에 감추어진 색을 일깨워 얻어낸 귀한 색이다. 그 색들은 화학적 색채가 아니라 천연의 색채다. 그의 작업은 마치 도자에 화염을 칠하는 작업과 같다. 그 화염을 조정하는 것은 작가이지만, 불의 변화를 주관하는 것은 자연이다. 그 색들은 깊고 고요하다. 밤같이 까만 흑색의 고요와, 우주처럼 깊은 심연... 청곡의 흑유자기들에 대해 ‘우주의 빛’ 또는 ‘신비의 색’ 같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나는 그런 무서운 표현들보다 ‘착한 짐승의 검은 눈동자처럼 맑고 순수한 흑색’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흑자들은 맑고 고요하며, 깊은 느낌이 난다. 그의 작품들이 훌륭한 것은 단순히 다채로운 색의 표현이나 기교의 뛰어남 때문이 아니라, 그 색채와 형태들에 정신의 울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술의 연마로는 도달할 수 없다. 깊은 성찰과 정신의 수련이 동반되어야 가능한 세계다.

도자는 예술인 동시에 과학이다. 도자가 여타의 예술들과 다른 것은 바로 과학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예술이나 과학이나 탐구와 실험에 의해 발전된다. 김시영은 원래 과학도다.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공학을 전공하고 요업기술원에도 근무했다. 도예가의 길을 결심한 이래 20여 년 동안 가평의 작업실에서 흙과 불을 탐구하고 실험해왔다. 그것은 때로 과학적 탐구이기도 했고, 때로는 예술적 창작의 험난한 길이었다. 아마도 종교적 수행이 그와 같을 것이다. 가평의 산들을 오르내리며 흙을 퍼다 실험하고, 기름가마, 장작가마, 가스가마 등 여러 가마들을 가지고 불을 실험하고, 옛 도자의 숨결을 잇기 위해 박물관을 오갔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 위에서 20년을 보냈다. 그리고 고려의 전통 속에 잠자던 흑자의 세계를 재현함으로써, 그의 길을 찾았다.

모든 예술이 쉬울 수는 없지만, 도자는 자연의 조력없이는 불가능한 세계여서 어렵다. 흙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유연한 재료지만, 작가에게 저항하는 유일한 재료이다. 흙은 가장 덜 문명화된 순수한 재료다. 나무나 금속처럼 정제되고 조절된 재료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동성을 갖고 있다. 흙을 자유롭게 다루려면 오랜 시간 흙과 함께해야 한다. 흙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작가의 의식을 담아낼 수 없다. 흙을 알아가는 과정은 세상의 문리를 터득해가는 과정과 같다. 그러므로 도예의 실은 삶의 길과 다르지 않다.

산을 오르듯 천천히, 한발 한발 심혈을 기울여 흙을 빚고, 혼을 불어넣듯 불을 지펴, 가장 완벽하게 빛나는 한 점의 도자기를 완성해내는 삶. 그는 “느리지만 깊은 사기장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에 전시하는 흑유항아리들 속에, 그가 살아온 날들의 고뇌와 성찰이 담겨 있을 터이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0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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