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관람객의 대화
글 김태완 월간도예 편집장
평소 미술품 감상을 즐기는 한 지인이 전시장 에티켓에 대해 질문을 해왔다. 몇 해 전 개성있는 작품을 선보여 기억에 남았던 도예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장을 찾았다고 한다. 마침 작가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전시중인 작품을 둘러보았다. 작품 감상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과거 작품과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작품에 대해 나눌 얘깃 거리는 당연히 없었다. 그는 겨우 “전시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겠네요”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전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근처 다른 전시장을 찾았다. 유학을 다녀온 젊은 작가의 전시였다. 그곳에는 획기적인 시도로 높은 완성도와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를 담은 작품들이 가득했다. 작품 감상자의 입장에서 심미적 만족도가 최고조에 달했으나 막상 그가 작가에게 건넨 인사는 겨우 “멋지네요”였다. 작품의 의미를 관통하는 수준높은 이론과 교양이 담긴 화두를 꺼내 지적대화를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는 맴맴 돌았지만 결국 입을 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시장에서 어떤 (수준높은) 대화로 어색함과 아쉬움을 없앨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달라는 질문이었다.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살짝 고민해봤을 법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직업상 매월 수십 곳의 전시장을 찾아가 작품을 보고 작가를 만나야 하는 입장에 있는 본인 또한 똑같이 겪는 곤욕이다. 그나마 기자 직분을 앞세워 “반응 좋아요?(많이 파셨어요?)”, “제작기법이 궁금합니다”, “재료는 뭘 쓰세요?” 등 취재를 가장한 질문을 던지며 양자간에 맴도는 어색한 공기를 희석시키곤 하지만 뭔가 어색하고 아쉬운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반대로 작가의 입장은 어떨까? 자신의 개인전을 찾은 관람객 한사람 한사람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응보다도 ‘저 사람은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왔을까?’라는 궁금증이 앞설 것이다. 작품을 살 사람인가?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인가? 미술전공 학생인가? 평론가인가? 언론사 기자인가? 작품에 대해 의미를 물어보면 어쩌지? 어떤 멋진 미사여구로 포장해 내 작품을 설명하지? 등등 오히려 관람자에 비해 더 긴장하는 입장이 된다. 이 정도되면 전시장에서 만큼은 관람자가 더 우위에 있는 것 같다. 공연을 하는 배우는 긴장하게 되지만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은 편한 법이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양자간(작가와 관람자)에 맴도는 어색한 공기를 없애는데 ‘꼭 어떤 방법과 규칙이 필요한 것일까’라고 자문해본다. 미술에 대한 생각과 작품 감상의 자세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대화를 놓고 어떤 것이 옳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의 어떤 미술관도 그림 앞에서 움직여야 할 방향과 속도, 혹은 어떻게 그림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등을 규칙으로 정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작금에는 미술이론 혹은 미학 관련 강좌나 서적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다. 왜일까? 예술문화에 대한 이론으로 무장해 재치있게 대화를 이끌고자하는 지적욕구 때문이다. 물론 이를 통찰한 사람이라면 예술작품 감상이 훨씬 더 수월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많은 재밋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일상적인 대화를 어색하게 건네는 것에 당신의 무지함을 덧붙여 창피해 할 필요는 없다. 정해진 방식에 따라 미술에 대한 수준높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과 오해에 불과한 것이다. 작가에게 전시장을 찾은 이들 중 가장 반가운 사람이 누구인가. 큐레이터도, 평론가도, 기자도 아닌 관람객이다. 작가는 관람객이 건네는 “작품이 정말 멋지네요”, “이 작품 제가 사고 싶습니다”라는 일상적인 대화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