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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월호 | 특집 ]

유약의 기원과 역사
  • 편집부
  • 등록 2010-04-07 15:30:10
  • 수정 2010-04-07 15: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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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의 기원과 역사
| 서국진 도예가

인류가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은 드디어 정착 생활 문화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토기는 초기에는 저장의 기능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그 쓰임새가 다양해져 조리 기구나 식기로 사용되면서 보다 편리한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러한 기능성이 어느 정도 충족된 이후에는 같은 값이면 조금 더 색다르고 멋진, 아름다운 어떤 것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 더 좋은,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 즉 조형의지가 생기게 되는데 여기에 우연이라는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어떤 현상이 더해지면서 인류는 ‘More than more’의 수혜를 누리며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도자에 있어서도 더 나은 것을 향한 고대인들의 의지는 유약이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것을 발견하여 토기에 도입하기에 이른다.

유약은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의 파이앙스Faience로부터 시작된다. 파이앙스란 기존의 이집트에서 사용되던 토기를 장식하는 채식기법(색이 다른 흙으로 토기의 표면에 칠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기법)과 유리의 제조기술을 응용한 것으로 토기의 태토 위에 실리카Silica·SiO2와 알카리Alkali·Li2O·Na2O·K2O를 혼합하고 발색제發色劑로 동銅을 첨가하여 구워낸 도기를 말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서양 도자유약의 원류가 된다.
한편 동양에서는 토기를 가마 안에 넣고 불을 때는 과정에서 우연히 재가 날아가 붙어서 생기는 자연유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오늘날 재CaO를 기본으로 하는 동양 도자유약의 토대가 된다.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발생한 중국의 양샤오仰韶.앙소, 롱샨龍山.용산문화의 채도彩陶, 회도灰陶, 흑도黑陶는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인 상商, 殷이라고도 함대에 이르러 청동기 주조에서 청동을 용해할 때 환원염 번조를 하는 것에 착안하여 도자용 환원번조가마 즉 도염식 가마를 도입함으로 해서 고온번조가 가능해지고 이후 자연유 현상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자연유는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기물 전체에 유약이 골고루 발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한 첫 시유도기施釉陶器가 기원전 1300년경의 상대의 시유 항아리(1928년 발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유도기인 녹청자유綠靑磁釉가 출현한 시기가 통일신라 말이라 했을 때 무려 2200년 전에 있었던 그야말로 혁명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유약은 재유로 대표되지만 재유에 한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대漢代.B.C.206~A.D.221는 스톤웨어Stone ware라 불리는 경질 토기 즉 석기의 전통이 확립된 시기이고 신비에 쌓여있는 중국 저화도 유釉인 연유鉛釉가 발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연유가 이슬람의 영향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과 주장이 있지만 중동지역에서 연이 처음 유약으로 도입된 것은 기원전 1000년경의 일이나 이슬람은 알카리 유가 유약의 기본이었고 동의 발색發色을 녹색으로 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연을 사용하였다. 이슬람 도기에서 연이 주된 융제가 되어 동과 함께 사용된 시기는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였다. 그러나 로마가 이슬람을 지배했던 때는 한의 시대와 같은 시기였고 그 당시 한나라에서는 청동기에서 이미 연의 사용이 일반화된 상태였다. 보통 연유는 태토에 밀착이 쉬워 기공이 많은 토기에 불투과성을 만들어 주며 1150℃에서 휘발하기 때문에 자연히 번조온도가 낮아지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의 장점을 도자에 도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라서 연유의 사용이 한시대의 독자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하겠다.
또 한대 후반에는 재유를 환원염으로 번조한 청자가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재에 장석분長石分을 더해서 안정화된 고화도 유약, 즉 자기유磁器釉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대의 청자 유적지에서 발굴된 파편으로부터 추정된 번조 온도는 1270~1310℃이다. 한대의 도자는 오늘날의 중국자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한 시대임에 틀림없다. 또한 한대에는 물레성형이 정착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상대에서 시작한 시유기술이 한대를 거쳐 남북조시대에 이르러 일반적 시유기법인 담금법dipping으로 정착하기까지 무려 2000년이란 세월의 산고가 있었다. 지금의 우리 도예인들은 3300년 전으로부터 축적되어 온 세라믹 기술에 대하여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당唐은 세계역사에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0년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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