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도예가의 필요충분조건
| 이세용 도예가
<전업도예가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몇 년 전에 월간도예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이 격했던 탓인지 욕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 또 어쩌려고 그러냐고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또 한편으론 시원하다, 정말 꼭 집어 잘 말했다는 격려도 있었으며 어린 후배들로부터는 “선생님, 짱이예요”란 뒷꼭지 간지러운 소리까지 들었었다. 사실 전업도예가로 살아간다는 건 우리나라 같이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올바르려면 구만리고 또 다분히 왜곡되어 있는 척박한 곳에서는 어떤 예술보다 힘든 건 사실이다. 작가란 늘 말하듯이 작업을 직업으로 하여 먹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게 화가라면 모름지기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 것이고 조각가는 돌을 다듬던지 청동을 녹여 붓던지 할 것이고 도예가는 도자기를 만들어 먹고 살 일이며 섬유 공예가는 직조를 하던지 염색을 해서 먹고 살 일이다. 선생은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고 장사꾼은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기를 써야하며 작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를 써서 서로 잘 먹고 잘사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이지 선생이 장사를 하기 위해 장터를 기웃거린다거나 장사꾼이 전대 두르고 주판알 튕기며 작가가 되겠다고 설쳐대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고 기울어진 사회임이 틀림없다. 물론 장사꾼이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작가가 장사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업이라는게 그리 녹녹하던가! 가진 것 다 들이붓고 백골이 진토되도록 발버둥 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말이다.
각설하고 이런 같은 제목의 글을 써달라는 말에 “전에 그런 제목으로 썼었는데... 또 씁니까?” 라고 했더니 이번엔 다른 각도로 써보란다. 다른 각도? 그랬더니 “필요 충분 조건”이라는 가제를 제시하였다. 필요 충분 조건이라...ㅎㅎ. 전업도예가라는 폼나는 직업으로 산다는 죄로 60살 가까이 살아오면서 일궈 놓은 거 하나도 없이 자식 놈 둘을 공부시킨다고 헉헉대고, 겨우 마련한 아파트마저 팔아서 빚잔치한 주제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노후대책은 하나도 못 해 놓았고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 게 아니라 아직도 죽을 둥 살 둥 그야말로 대가리 터지도록 치열하게 살아야하는데... 그나마 타고난 체력이 있었으니 이만큼 견뎌온 게 아닌가 싶어 가끔은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싶을 때가 많다. 과연 나는 후배들에게 전업도예가는 신나는 짓이고 폼나는 삶이니 조금만 참고 오니와 장애물과 가시덤불로 뒤덮인 이 길을 어서 오라고 손짓할 수 있을까? 아서라! 내 비록 심술도 많고 나 혼자 죽지는 못한다고 물귀신처럼 곁에 있는 놈이라도 붙들고 물속으로 빠져죽는 못된 심보를 가졌다 한들 그 짓만큼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구절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까닭은 이왕지사 이 길로 들어 온 사람들, 그리고 작업 아니면 할 게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몇 가지만 서로 다짐하자는 차원에서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우선 전업도예가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가장 먼저 꼽고 싶은 건 성실이다. 작가에게 직장은 작업실이다. 직장에 성실하지 않은 회사원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가 그 회사의 책임자라면 더욱 심각하다. 책임자가 불성실하면 그 회사는 망하는 데 아무 염려없다. 내가 아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잘나가는 도예가 중 한사람은 일반 회사원과 똑같이 8시에 출근하여 6시에 퇴근한다고 한다, 그는 작업할 시간에는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으려 하고 가능하면 불필요한 전화는 받지도 않는다고 한다. 또 어떤 작가는 아예 작업시간에는 휴대전화 전원을 꺼놓는다고 한다.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 하면 전업 작가에게 작업은 폼나는 예술 활동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계수단이라 할 수 있다. 즉, 돈을 버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게으른 자가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는 없다. 보통, 잘나가는 회사들을 보면 경영진이나 기술진 혹은 디자인 책임자 등등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막말로 날밤 까는 걸 밥 먹듯이 하며 엄청나게 일을 한다. 전업 작가는 스스로가 경영자이며 기술자이고 디자이너이다. 스스로 성실하지 않으면 내 회사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내 회사가 무너지고 내 가정이 무너진다고 상상해보시기 바란다. 성실하지 않고는 내 식솔을 거느릴 수 없다.
그 다음 덕목으로는 기본기에 충실하자는 얘기이다. 도예에 있어 기본기란 무엇인가? 팔 수 있는 작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련의 과정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물레 성형을 위주로 작업하는 작가는 물레만큼은 내가 원하는 기물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석고 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는 원형부터 거푸집까지 모든 공정에서 완벽하게 작업을 수행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어떤 형태가 물레로 가능한지 어떤 방법으로 성형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휨이 안생기고 뒤로 안 뒤집어지고 주저앉지 않는 지도 모르는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기본기에 충실하지 않은 작가는 그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내가 후배들에게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고졸한 맛이니 비워야 한다느니 하면서 기물을 치열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엄벙덤벙 만드는 친구들이 있다. 그건 비우는 게 아니다. 당신은 꽉 채워 본 적이 있는가? 채우지도 않고 비운다? 웃기는 이야기다. 그건 비우는 게 아니라 못 채운 거다. 채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비울 수 없다. 그냥 모자라는 대로 사는 거지! 먼저 채운다는 거, 그게 바로 기본이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0년 3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