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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월호 | 전시토픽 ]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전
  • 편집부
  • 등록 2010-04-01 16: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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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6.30~9.17 서울 덕수궁미술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전
2009.6.30~9.17 서울 덕수궁미술관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은 구미의 주류 미술사에 따르는 경향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경향을 구축하여 새로운 감각을 더해 왔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화하며 자리잡아 온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라틴 예술가들이 탄생했는데 그 중 콜롬비아 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는 20세기 중반이후 독창적인 작품으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보테로는 1961년 뉴욕 MoMa에 <Mona Lisa, Age Twelve>를 공개하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과장되게 부풀린 보테로의 모나리자는 당시 뉴욕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을 정도였으며 현재 그는 세계 주요 옥션 작품 판매 순위에서 피카소, 샤갈, 미로에 이어 4위를 차치하고 있다.

“보기 좋게 살이 붙은 통통한 얼굴에 조그마한 두 눈, 정감가는 이중턱, 갓 구운 빵처럼 부푼 팔다리, 마치 고무풍선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듯 과장되게 부풀려진 사람들” 작품에서 보이는 터질 듯한 절대적인 볼륨과 비율의 척도는 자유롭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표정과 부동자세 또는 정면을 향한 시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물의 개성이 아닌 단지 극단적인 볼륨에만 집중했던 그의 조형세계를 나타낸다. *데포르마시옹으로 인한 형태 증대는 더 많은 색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히고, 관능미와 풍부함을 잘 전달하는 작가만의 방식이다. 그가 추구했던 과장된 양감표현은 대상의 사실적 재현보다는 객관적이면서 관념적인 형태를 추구한 결과이다,

“나는 항상 내가 그리는 모든 것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이 깃들여지기를 바란다.”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난 보테로는 가난한 어린시절 정통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 17살에 고향신문 ‘엘 꼴름 비아노’에 삽화를 기고하면서 뛰어난 예술성을 나타냈다. “피카소와 예술의 불일치”라는 제목의 당시 기사는 현대미술에 대한 보테로의 성숙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또 그는 첫번째 전시회 이후 스무살의 나이로 보고타의 National Salon에서 2등을 차지했고 상금으로 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했다. 1957년 보테로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무렵 국제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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