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의 완성 ‘공간 연출’
| 이헌정 도예가, 설치미술가
공간의 이해
공간은 중심과 에워쌈에 의해서 실현되며 그것을 통해서 단절과 열림이 동시에 발생한다.
공간은 세상 속에서의 또 하나의 세계이며 중심을 확정함으로써 구체화된다.
공간은 에워쌈(벽), 닫힘(벽, 바닥 , 천장) 그리고 열림(창, 입구)에 의해서 결정되며 이 세가지 요소는 서로 반응하고 때로는 충돌한다. ‘에워쌈’은 외부공간과의 단절을 통한 또 하나의 세계의 실현의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에워쌈을 통해서 나를 지상의 한 점에 묶어두고 단절과 열림의 구분을 제공한다. 에워쌈을 형성하는 벽과 함께 ‘빛’은 공간을 형성하는 본질적인 것이며 다른 조건을 만족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없다면 진정한 공간의 실현이라고 할 수 없다. 빛은 크게 물체를 비추는 빛과 공간을 채우는 빛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강하게 내리쬐는 빛은 선명한 빛과 그림자를 대비시켜 사물의 모서리에 주목하게 한다. 또한 공간을 비추는 빛은 반투명의 피막을 통해서 형성되며, 공간을 온화하게 비추는 빛의 덩어리는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빛의 충만함으로 인지되어 전자와 식별된다. ‘입구’는 공간을 구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며 외부세계와의 소통을 유도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입구는 외부의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 장치로서의 부가적 의미가 부여된다.
“첫날, 나는 대성당을 둘러싸는 성벽의 입구까지 가서, 거기에서 울타리 안의 푸른 잔디밭과 그 속에 서 있는 하얀 건물을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되돌아 왔다. 그 이상의 것을 할 힘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했다. 둘째 날, 나는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 잔디밭 위를 걸어 건물의 주위를 돌고 다시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그 앞의 한 가게에서 양복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세째 날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 루이스 칸
공간의 예술적 활용
기본적으로 공간은 무언가를 담기 위한 도구이다. 위에서 살펴본 세 가지 구성요소에 의해 공간은 실현되고 프로그램에 따라 그 공간은 기능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건축행위를 통해서 구현된 공간은 인간의 활동에 질서를 부여해 주며 전시 공간 또한 예술가와 관람자를 위한 문화적 기능을 제공받은 질서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는 그들의 창작을 완성하기 위해 전시공간을 채운다. 그것은 단지 채우는 행위를 넘어 공간을 새롭게 연출하는 것이며, 때로는 비움의 겸손함을 통하여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예술가에게 공간은 단지 수동적 입장에서 그들이 완성한 작품을 방치하는 곳이 아니다. 그 공간과 예술적 체험의 흔적들은 서로 교감하고 소통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전시공간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그 공간의 전시를 아우를 수 있는 설치예술, 벽면을 활용한 회화, 공간 속에서 개별적 가치를 갖는 조각이나 공예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준다. 회화는 단절과 분리의 역할을 통해서 구현된 공간속의 벽을 다시 열림의, 세상과의 소통의 통로로 인도하여 준다. 전시공간속의 조각은 공간의 중심을 확정하여 주며 이때 우리는 조각을 통하여 공간을 인식하게 된다. 반면 설치적 특성을 띤 예술표현은 공간이 지닌 본래의 성격을 분해하고 재조립하여 공간속의 공간 또는 관념적 공간의 재생산을 유도하기도 한다.
도예가에게 있어서의 공간
도예가들은 많은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제작과정과 그 실험에 몰입한다. 도예가들이 다루는 재료인 흙과 불은 익히 알다시피 타 재료에 비해 많은 취미적 만족을 제공한다. 가소성이 있는 흙을 다루는 행위, 그리고 번조과정 중에 제공되는 기다림의 즐거움과 종교적 교감을 체험케 하는 불이 주는 즐거움은 과도한 작업량과 더불어 우리들을 작업실에 묶어두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필자를 포함한 도예가들이 취미로 도예를 하지 않는 이상에는 남들에게 예술적 체험을 통한 성취를 보여주고 경제적으로나 혹은 심정적이든지 간에 성과를 어떠한 형태로든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도예가들 또한 성과에 대한 기대를 전시라는 형태의 공간 연출을 통해서 실현한다. 과연 우리는 전시공간에서의 도예의 완성을 전 제작과정 중에 얼마나 할애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