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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7월호 | 전시리뷰 ]

깨지기 쉬운 것의 미학
  • 편집부
  • 등록 2003-07-11 14:54:18
  • 수정 2018-02-19 09: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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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옥사나 루트닉(Petra Oxana Lutnyk) 도예전 2002. 5. 29 ~ 6. 9 토아트

갤러리 깨지기 쉬운 것의 미학

글/강재영 (재)세계도자기엑스포 광주전시팀장

 도자기는 인류의 역사와 삶에 있어 기술과 과학의 결정체이다. 토기, 도기, 청자, 백자의 발전 과정은 점토, 유약, 고화도의 기술 개발에 의한 것으로 질 높고 단단한 유기질의 자기는 문화 생활의 척도가 되었다. 동양 도자의 위대성도 고화도 환원의 화려한 장식의 백자가 일찍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도자사의 발달면에서 보자면 현대 도예는 하나의 반란이다. 실용과 기능성,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저화도로 구워내고, 일그러뜨리고, 부수고, 깨지기 쉽게 만들어내는 것은 도자기의 예술적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임에 틀림없다. 도자가 갖는 예술성과 그 고유성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 페트라 옥사나 루트닉의 작품에서 그 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개념과 기법면에서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현대 도예의 예술성을 강조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 되는데, 그녀의 작업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녀의 이력을 살펴보면 대학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아방가르드한 개념 작업을 했다. 이후 스웨덴에서 도자 공부를 시작하면서 도예가로 전향했다. 그녀가 흙을 매개로 사용한 초기 작업 가운데 멕시코 체제시에 수 천 개의 인물의 군상을 점토로 구운 설치 작품이 있다. 거대한 도시 속의 인간의 자화상들을 설치라는 장르를 통해 흙이 갖는 강력한 호소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그녀는 본격적인 도예의 실험에 몰두한다. 제작 기법을 보면, 물레를 사용해 무수한 그릇들을 만드는데, 가능한 한 최대로 기벽을 얇게 제작한다. 어떤 재료적 물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안에서의 공간감과 깨지기 쉬운 것(Fragility)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 과정으로 물레를 돌린 그릇 표면에 물기를 없애고 투명함을 유지하기 위해 돌가루로 3번 이상 마연한다. 그리고 저온에서 1번 구워낸다. 이 작업 과정은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릇 하나 하나를 마연하고 가마에 40개 정도를 겹쳐서 구우면 성공작은 고작 2∼3개 정도일 뿐이다. 작가는 현대의 초고속 사회에 이렇게 시간을 소비하는 과정을 미친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불의 우연에 의해 자연적으로 그려진 형상과 무늬들, 얇은 기벽과 은은한 컬러가 주는 촉각성은 성공적인 작품 하나가 갖는 힘과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 예술이란 이름 하에 단 하나의 작품을 건지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것들을 버리지 않는가.

 페트라 옥사나의 그릇들은 기능성이 소거된 것이다. 작가는 작품의 기능성에 초점을 두고 형태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초기 작품은 접시 같은 형태였다가 점점 사발의 형태로 발전했다. 표면의 형상도 영롱한 색채의 풍경에서 점점 간략한 선들의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또한 그릇 표면에 수평선의 자국들이 있는 시리즈는 가마 내에서 그릇들을 겹칠 때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라 한다. 형태의 변화는 가마내의 불의 움직임이 더 잘 반영될 수 있도록 깊이 있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고, 그릇의 기벽의 장식들은 풍경이나 어떤 연상 작용을 하는 그림에서 점점 미니멀한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기조에는 동양 도예의 정신이 잠재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무심하게 수 천 개의 사발 같은 그릇들을 만들고, 제작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보다는 우연성을 최대한 살려 자연 그대로 보이도록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예술적 감각을 발견해 내는 것이라 하겠다. 깨지기 쉬운 그릇.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공간은 도자라는 공예가 갖는 기능성을 넘어 시지각적인 해석의 여지를 가진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촉각적인 감각을 자극하며 손으로 감싸 앉으면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갈 것 같은 에너지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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