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균 청백자전 2002. 6. 5∼ 9 일본 도쿄 도예갤러리 ‘旬’
작가의 개성과 전통의 이상적인 만남
글/이데카와 나오키(出川直樹) 일본 도예평론가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상쾌한 바람을 쐬는 듯한 느낌의 분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각각의 작품이 발하는 청신함에 의한 것이었다. 거기엔 조선도자의 전통에 대한 경의와 함께 작가 자신의 미의식과 창의성을 향한 씩씩한 의지가 서려있었다. ´무심무작위(無心無作爲)의 미(美)´ 등을 주장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민예론의 일부 악영향의 결과, 일본의 신작도예전에서는 작품에의 사려나 기술적 완성도가 낮은 경우를 적지않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단지 수공(手工)의 것임을 내세우려 투박함을 보이는 경우라든가 소위 ´작가선생님´ 이라 불리는 것에 안이하게 기대는 자세 등으로 말미암아, 도예가보다 장인(匠人, 職人)들이 만든 것이 오히려 쓰기 쉽고 아름다운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장인(도공)들의 작품은 기계생산품 속에서 존립의 어려움에 직면하였으며, 또한 작가(도예가)들은 자기의 작품을 기계생산품과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손맛(?)을 낸 조잡한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는 그릇된 방향이다. 인간이 지닌 감성과 손의 정묘함은 그 어떤 기계나 컴퓨터도 따라올 수 없는 특장이 있으며, 바로 그런 방향에서 인간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공예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이번 정희균씨 개인전의 작품을 보면, 바로 그러한 인간의 공예라 할 올바른 방향이 제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높은 품격> 요란한 자기주장은 피하고 있으며, 분명한 골격을 가진 조형과 더불어 갖가지로 시도된 작품 하나 하나가 매력적인 청화(靑華)의 색조라든가 즐거운 그림이나 문양의 조화가 작품의 품격을 높혀주고 있다. <되살려진 전통> 조선시대로부터의 백자(특히 청화백자나 청화채)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안정감과 함께, 정희균씨 나름의 창의가 더해져 청신한 기운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민족적인 전통과 개인적인 미의식의 이상적인 결합이 미래를 향한 ´공예´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작품에 나타난 주의 깊은 사려> 언뜻 보면 마음 편히 즐기면서 제작한 듯이 느껴지지만, 작품 하나 하나를 지긋이 보면 이 작가가 작품의 구석구석에까지 섬세한 신경을 쓰고있음을 알게된다. 이점은 이 작가의 자질을 말해주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지나치게 세세한 신경이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면 신경질적인 작품이 되기 쉽고, 반면 그러한 신경을 없어서는 조잡한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한 가운데 면깎이의 모서리 선 하나하나, 이장(泥漿)에 의한 선묘에서도 그 굵기와 섬세한 처리에까지 주의 깊은 의식이 배어있다. 더구나 전시된 작품 전체적으로 조선도자풍의 깊은 존재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작품의 세부에 휩쓸리지 않으며 동시에 작품의 전체상이 무너지지 않는 도예가란 실은 드문 존재인 것이다. 작품전이라는 것은 그 작품 하나하나의 음미도 의미있지만 그 전체를 보고 작가의 방향성을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시작 중 몇몇 작품은 보다 성숙된 표현을 요하는 점도 없지는 않으나, 이번에 출품된 260여 점에 달하는 작품 하나 하나에서 미묘하게 다른 표현을 의욕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점도 확고한 작가정신의 표출이라 하겠다. 정도를 걷고 있는 이 도예가의 앞으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