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여류도예가인 페르한Ferhan Taylan Erder, 1939- 은 터키 북부 흑해연안 도시인 삼순Samsun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스탄불에서 도자기공장을 운영하면서 장인匠人으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도예가였던 아버지와 화가였던 어머니의 관심 속에서 음악과 무용을 훈련받았지만, 1961년에 이스탄불 국립미술아카데미Istanbul State Academy of Fine Arts의 회화과를 졸업하고, 1959-63년 사이에는 타일란 도자기 공장에서 근무했다. 1964년에는 로마 텔레콤 대학을 졸업했고, 1984-88년까지 우소아트USOART 도자기 디자인 연구소에서 채색 점토와 자기를 연구했다. 이와 더불어 1981-89년까지 도예교수였던 아스텐고Emanuel Astengo 밑에서 도예를 수학함으로써 이탈리아 도예기법과 터키 도예기법의 절충양식을 탄생시켰다. 그녀는 1989년 이래로 앙카라의 빌켄트 대학교Bilkent Univeristy에서 도예를 강의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국제도예학회IAC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도예세계는 자신의 고향인 삼순에서 어릴 적에 체험했던 바다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중환경」시리즈가 대표적인 이번 작품들은 바다 속 생명체의 형태 모방을 통하여 밀물과 썰물을 반복하는 바다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그 무한한 역사의 인식으로 사고의 지평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그러한 주제의 표현방식은 태토의 형태적, 색상적 변화를 통하여 실현되고 있다. 판상성형으로 늘인 점토판을 손으로 말고, 구멍을 내며, 붙이고, 오리는 등의 행위를 가미하여 직립형이나 나열형으로 전환시켰다. 직립형은 그녀의 인본주의 철학을 반영하듯이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닮고 있다. 시유방식에 있어서는 회화를 학습했던 연유로 붓으로 칠하는 방식을 주로 택함으로써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면서도 차분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수채화의 분위기를 창조해내고 있다. 번조기법으로는 주로 가스 가마를 활용하지만, 간헐적으로 라쿠raku 번조기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판상성형 기법으로 제작한 「바위/수중환경Kaya/Deniz Alti Habitat, 2000」을 보자. 전체적인 형상은 바위를 닮고 있는데, 언뜻 보아서는 외투를 걸치고 비스듬히 서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비쳐진다. 즉 바다라는 특수를 통하여 바다의 역사나 지구의 역사라는 보편으로 나아가며, 그것을 의인법적 사유를 통하여 작가 자신의 신체와 비유적으로 연결한다. 물결치듯이 이어지는 곡면의 중간 상부지점에는 대각선 방향으로 다른 색상의 띠가 드리워져 있으며, 여기저기에 다양한 크기의 구멍들이 나 있거나 작은 띠들이 부착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기면 위에서 부유하는 작은 띠들의 색상은 기면의 색상에 비하여 매우 선명하다. 따라서 작품의 전체적인 형상은 인체의 이미지이며, 기면의 장식과 색상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로 생겨나는 물때처럼 바다의 유구한 역사성과 더불어 작가 자신의 어릴적 이미지의 잔상이 어우러져 있다.
그런가 하면, 위 작품과 동일한 성형기법을 활용하고 있는 「수중환경 IIDeniz Alti Habitat II」는 앞의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화사한 적색과 청색을 발색하는 이중 시유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러한 보색 시유는 기면의 분위기를 묵중하게 만들고 있지만, 마치 수채화 그림을 그리듯이 기면 여기저기에 넓적붓으로 흰색을 채색한 것은 묵중한 분위기에 날렵하고 산뜻한 기분을 가미한 것이어서 색상적, 시각적 이미지에 변화감을 가져오고 있다. 또한 「바위/수중환경II」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크기의 구멍 형태들의 부분이 이번에는 흰색, 청색과 노랑색 등의 혼재로 변화되었는데, 그 분위기가 마치 무언가 사물의 형태를 암시하려고 낙서를 하거나 드로잉을 시도한 것과 같은 분위기이다.
「도기 그릇Canak」에서도 위와 동일한 성형기법을 활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초기 단계에서 흰색과 검정색을 발색되는 이질적인 태토를 모자이크 패턴으로 배열하고 프레스로 누름으로써 그 형태가 일그러지면서 추상적인 형태로 변해버렸다. 그것이 불규칙적이거나 규칙적인 기하학적 미나 우아한 마블링 효과도 발산하고 있으며, 기면의 내부 중앙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어서 그릇으로서의 장식성과 실용성을 겸비하고 있다.
「안포라Anfora」는 원래 로마시대에 포도주를 담그는 용기를 의미했다. 내벽에 솔가루, 유황, 꽃가루, 꿀 등을 칠하여 방수효과와 방향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수학하면서 그 나라의 전통에 매료되어 이러한 용기를 제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는 유약이 화려하게 발색되어 있으며, 여러 유약들의 경계지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해저산책Dipte Gezinti」은 바다 속 물고기의 형상을 세 부분으로 제작하여 철사나 기타 재료로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세 부분의 색상은 녹색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각 부분의 특성을 살리듯이 작은 굵기로 코일링한 점토들을 얽어가면서 무언가 상세한 이미지의 부각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녀의 창작이념은 그녀가 태어나 성장했던 해양과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변증법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철학자의 자세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환경 속에서 보여지는 해양의 다양한 사물들 바닷가 바위, 물고기, 산호 등을 모티프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고수해오고 있는 것이다. 성형기법으로는 주로 판상성형을 활용하고 있어서 자유분방한 형태성을 구가하게 되었으며, 시유는 회화의 채색기법처럼 붓으로 바르는 기법을 활용하고 있어서 마치 수채화에서 얻어지는 이미지처럼 산뜻하면서도 명증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9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