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찾은 홍진식(37)의 작업공간은 이른바 재택겸용 작업실.
한적한 곳에 위치해 간혹가다 경운기와 그 뒤에 탄 사람, 낯선 차들이 오고 갈뿐
펜션형태의 멋드러진 외관과 곱게 깔린 잔디는 마치 CF장면에 나오는 듯한 평화로운
오후의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아카시아나무에서 만개한 꽃들의 달콤한 향과 그 꿀을
얻으려는 꿀벌집단들의 윙~하는 소리가 미풍에 실려왔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푸른 오월의 공기를 탄력있게 울렸다.
그의 작업실을 들어서자 초벌만 마친 온갖 종류의 기묘한 캐릭터 인형과 같은
조형물들이 가득했다. 한켠에는 고풍스러운 난로를 중심으로 폭신한 의자와 기타,
음악LP판들로 가득해 이곳이 자신만의 아지트인 듯 했다. 일하는 시간은 대중없지만
아내의 가사일을 거들거나 열 살, 다섯 살배기의 딸과 노는 시간외에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공상을 하고, 졸다가, 모델링을 만드는 일로 즐겁고 또한 자유롭다.
그를 닮은 작업
홍진식은 집안에 뛰어난 예술가 내력의 영향은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곳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고 자라 시골의 정겨운 흙장난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고2때 미술을 시작했고 잊고 있던 흙의 기억을 조소반 친구들의 흙을 통해 익숙하게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학은 대구대학교 공예과를 지망, 도예파트로 들어서면서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자유롭게 사고하고 엉뚱한 세계를 가지더라도 큰 제재를 받지 않아서인지 밀도있게 쌓아온 표현의 욕구를 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손빠르게 나타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나옴직한 왜곡된 인체비율을 가진 인간이나 유쾌한 표정의 동물형상 등을 신나게 만들어낸 것. 이것은 사실적으로 닮았다기보다 그의 눈으로 한번 걸러 주관적인 해석이 더해진 모습이다. 캐릭터라는 것이 작가가 만들어낸 자신일 수도 있고 또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충실히 코일링을 쌓고 반복, 내공을 쌓은 덕에 지금은 코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코일링을 잘해야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고, 한땀한땀 작게 들어가 있는, 손맛이 잘 나타나는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전통강한 문경이란 이곳에서 전통작업을 고수하는 작가들은 그를 삐딱하고 치기어리게 여기고 ‘도예란 이런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하지 말라’며 고개를 흔들며 간적도 있었다. 한적한 시골에서의 홀로 작업하는 자체가 외롭고 힘든 일인지라 답답한 마음에 뛰쳐나가기도 했지만 나가봤자 논밭이었으니 참으로 허탈한 일. 다시 돌아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음을 가다듬기도 했다. 한때는 근처에 있는 말농장을 자주 찾아 그들의 역동적이고 활기찬 모습들에서 힘을 받아 몰두하기도 했다. “주로 말에 삘(사투리가 강한 그는 필feel을 이렇게 발음했다)을 받아 그것에 비롯된 형상들이 많기도 해요. 공허한 마음이란게 아직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자신감이 부족해서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무슨 작업을 하던지 장인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서 표현하는 것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하고 자문하기도 해요.” 자신이 만족해야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고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홍진식에게 가장 중요한 셈이다.
막연하지 않은 이야기
홍진식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있으되 이런 저런 이유로 그 엉뚱한 공상의 이야기는 감추어져 있고 잠재워져 있고 마치 흔적처럼 드러낼 뿐이었다.
“형태적인 상징성은 신라토우에서부터 시작됐어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꿈과 이상을 표현한 토우는 모든 세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죠. 또 토우에서 보여지는 형식들은 각각의 사물마다 인간의 염원을 담은 물건이고 무언가에 의지하고픈 인간의 심성을 담고 있죠.” 서울산업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논문을 『신라토기를 주제로 한 조형연구』로 썼다.
“근작에 와서는 토우에서 벗어나 어렵거나 무거운 주제를 탈피해 나의 이야기들 즉, 나의 집, 지루한 일상, 주변의 얘기들을 서술식으로 풀기도하고 또는 응집시켜 추상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이런 작업을 통해서 자연과 교감하고 순응하는 나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어요.” 홍진식 작업의 본령은 사실 사유의 상상이 아닌 욕망 쪽에 무게가 더 두어진다. 세상이 무어라고 하든 말든 자신의 욕망을 느끼는 대로, 오히려 반작용의 원리에 따라 자신이 느끼는 그 이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대신 그 욕망을 대리분출할 채널을 찾아서 해소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기발한 상상력은 자아와 주변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깊은 애정에서 비롯했고 일련의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 무작위적으로 배치된 인물과 동물들은 질서정연하게 보여지는 듯 하면서도 각 개체의 성격이 고유히 드러난다. 복잡다단한 신경이며 나의 숲속, 나의 고양이, 나의 새, 나의 말 등 주로 가까이 있는 것에서 소스를 얻는 편이다.
여러 번 봐야 알아낼 수 있는 무한한 의미와 이야기. 봐야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존재.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한 작품. 보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은 보는 이가 채워주는 부분으로 그의 작품에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
세간에 알려지기야 도예가 홍진식이지만 주지하다시피 도조를 업으로 하는 일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그의 수입원은 다른 일에서 얻어진다. 이를테면 소재의 도발성이 담긴 생활식기를 만들거나 캐릭터의 엉뚱함이 뭍어나는 소품, 시퀀스sequence의 신선함이 있는 벽화 등을 제작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간간히 부모님의 농사에 일조하거나 대학강단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들깨농사같은 경우에는 도자과정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사전준비가 많은 만큼 번거롭거든요.” 이렇게 외도아닌 외도를 하고 돌아오면 작업에 대한 집중도는 더욱 높아진다.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아이디어스케치를 하고 모델링을 거치는 모범라인을 누구나 다 하는 건 아니지만 홍진식은 이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특히 조형작업에 있어서 초반에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 않으면 낭패보기 십상이고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어떤 치밀한 계획에 따라 꼼꼼히 작업하겠다라는 짐작이 갈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머릿속에 그려진 아이디어를 손쉽게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편이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이나 생각한 일들을 일기형식으로 적거나 그림을 그려서 느낌이나 기억들을 기록해두는 편이예요. 나오는 대로 감각적으로 만드는 스타일이어서 처음 의도와는 달리 하다보면서 바뀌기도 하는데 최대한 처음 느낌을 살릴려고 노력하죠. 모델링이라고 만들긴 만드는데 결코 작은 사이즈가 아니예요. 그래서 초벌만 마친 기물들이 많은 편이예요. 근데 중간과정의 결과물도 완성된 결과물도 제겐 다 소중해요.” 작품에 사용하는 흙은 백자작에는 순백자만 대형작에는 조합토 30%를 섞은 잡토를 사용한다. 유약은 테라시질레타나 던칸유, 청자유, 화장토 등을 쓰는데 최근엔 백자와 청자유로 작업한 그 느낌이 좋단다.
유명한 만화는 의무감으로 다 보지만 의외로 좋은 만화인데 묻혀진 만화를 발견하는 기분이랄까. 홍진식의 해방감이 느껴지는 자유로운 작업을 보면서 살맛나는 그 기분을 같이 느끼고 싶고, 미래의 희망도 함께 그 기분에 담아두게 된다. 선량해 보이는 웃음 뒤에 숨겨진 독창적이거나 혹은 기괴한 홍진식만의 크리에티브 컬러를 뽑아내고 있는 그의 작업에는 제법 쏠쏠한 재미가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세라믹스 2008.6월호를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