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건을 살 때 좋은 브랜드 대신, 만든 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생각한다면 베틀로 옷을 짓는 라오스의 여성이 충분한 식량을 살 수 있고, 일주일에 50시간 양탄자를 짜던 네팔 소년이 학교에 갈 수 있다. 절망에 빠진 인도의 면화 재배 농민이 자살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숲의 파괴로 멸종위기에 몰린 착한 생명들이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다. 무엇보다 단순한 기부가 아닌 거래를 통해 생산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다.
공정한 세상을 향한 지구시민운동, 공정무역
착한 소비라는 구호아래 펼쳐진 공정무역이 일상 속에서 들리는 빈도가 잦아졌다는 건 그만큼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공정무역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생산자들이 만든 물건을 합리적이고 공정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하는 사회적인 무역활동을 말한다. 기업이 최저임금과 허술한 환경규약을 찾아 아무런 규제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동안 노동자들의 가치는 무시되고 생태계와 인간의 삶과 문화가 파괴되었다.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생산자들을 위한 공정성을 획득하고 국제적인 무대에서 더 활동적으로 폭넓은 역할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에게 자립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공정무역의 목적이다. 국내에서도 생산과정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극복하고 보다 인간적인 시장을 만드는데 기여하기 위한 사회 운동이 점차 알려지고 있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공정무역품으로는 커피, 초콜릿, 차 등으로 온라인에서는 구입이 어렵지 않지만 눈으로 직접 보고 살 수 있는 전용공간이 없어 직접적인 실천이 어려웠다. 이러한 생산품에 대한 접근이 쉽고 공정무역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공정무역가게‘그루’가 서울 안국동에 새롭게 오픈했다.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통해 새로운 만남을 이어주는 곳
<그루>는 나무를 세는 단위로, 만든 이의 따뜻한 손길이 입는 이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하나하나의 마음들이 모여 숲이 되기를 희망하는 바램에서 붙여진 이름. 시민단체 등이 출자하여 만든 기업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아시아의 가난한 여성들이 만든 자연주의 의류와 생활용품 등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하여 판매하고 있다.
면, 울, 마, 실크 등 자연소재와 베틀로 짠 원단을 사용해 만든 의류는 종류와 디자인이 독특해 어떤 옷을 사야할지 무척 고민하게 만든다. 오가닉코튼은 농약 대신 자연농법으로 키운 유기농면화를 기계가 아닌 사람의 힘으로 나무 베틀을 돌려 만든 옷감으로 우리의 피부를 더욱 안전하고 부드럽게 감싸안아준다. 네팔 특유의 붉은 흙으로 만든 도자식기류는 머그컵, 티포트, 접시, 드리퍼 등으로 손맛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져 정겹기만 하다. 네팔의 코도 바크타프르의 티미마을에서 손수 만든 드리퍼는 가장 인기있는 제품. 포트종류도 이에 못지 않게 판매가 좋다고. 이외에도 옷을 만들고 난 짜투리 천을 이용해 만든 천연 아마씨 안대와 방글라데시에서 자라는 식물인 빠띠의 풀을 엮어 만든 상자,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 동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촛대 등 예상치 못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공정무역상품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피와 초콜릿, 설탕 등도 마련돼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
혼잡한 길가에서 벗어나 안국동의 비교적 한산한 골목에 위치한 그루는 한옥고유의 운치를 살려 공정무역제품을 알리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친환경 자재와 재활용 디자인을 활용해 재탄생된 이곳은 가게라고 해서 물건만 팔면 너무 재미가 없을까봐 편히 들려 수다도 떨고 쉴 수 있도록 가게안팎으로 멋스럽게 정원을 꾸며놓았다. 매장 구석구석에 장식하고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장식해 숨은 보물 찾듯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공정무역거래는 공정한 거래 뿐만 아니라 생산지의 전통 기술을 잇는 제품개발로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윤리적인 성격의 소비도 지닌다.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세계공정무역협회IFAT가 지정한 ‘세계공정무역의 날’에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5월 둘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이 행사는 세계 곳곳의 공정무역단체들이 공정무역을 홍보하기 위한 캠페인으로 한국에서는 2007년도에 처음 선보여 사람들의 호기심과 애정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페어드코리아는 올해도 변함없이 참여할 계획이니 현장에서 소중한 만남을 이어가도 좋겠다. 앞으로 1호점에 이은 더 많은 그루들이 생겨나 숲이라는 목표를 이루기를 기대해본다.
이연주 기자 maigreen9@naver.com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09.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