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중국도자』의 출간 배경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으로는 백제와 통일신라 유적과 1977년 신안 해저에서 발굴된 도자기들을 꼽을 수 있다. 이 발굴 도자기들은 주로 논문과 보고서를 통해 시대별로, 또 유적지별로 소개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대표 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제강점기부터 소장한 중국 도자기에 대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당연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중국 도자기의 종류와 실상에 대해선 파악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이므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국 도자기들의 종류와 품질 등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축적하는 기초적인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필자에게 밀려왔다. 그러나 박물관에는 다른 여러 사업이 있기 때문에 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작업량이 방대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중국 도자기(주로 오대부터 청대까지의 도자기)를 분류하고 체계화한다는 것은, 전공자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었다.
어쨌든 소박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도자』의 발간을 위해 3년간의 계획을 세웠다. 필자를 비롯한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연구원들은 이 가마터들을 답사했고, 그 후 필자(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는 미술부의 이애령 연구관, 이정인 연구사와 함께 『중국도자』의 발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 책에는 중국 도요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수집한 생생한 정보들이 반영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도자의 내용
국립중앙박물관의 중국 도자기들은 대부분 고려,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진 것들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의 수집품들로 구성된다. 발견된 곳은 주로 개성 일대의 고분이나 왕실 유적, 전국적으로 중요한 사찰 유적, 해저의 난파선 등지며, 소장품에는 기증품이나 구입품도 일부를 차지한다. 그 후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 연구자들이 발굴한 유물들의 수가 점차 증가했는데, 신안해저에서 인양된 2만여 점의 중국 도자기들이 그 한 예일 것이다. 한반도 남서쪽 신안해저 출토 도자기는 용천요 청자 12,000여 점과 경덕진요 백자 5,200여 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신안해저 유물로 인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중국 도자기 소장품 수가 대폭 증가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도자기의 체계적인 소개에는 중국의 대표 가마窯를 중심으로 도자기를 분류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대순으로 재분류하였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도자기의 시대폭은 오대부터 송, 원, 명, 청대까지다. 이 시기의 대표 가마들로는, 백자의 경우 정요定窯, 경덕진요景德鎭窯이고 청자의 경우 여요汝窯, 월요越窯, 용천요龍泉窯, 요주요耀州窯이다. 그리고 각종 흑유와 다양한 도자기의 경우 자주요磁州窯, 건요建窯, 길주요吉州窯 등지다.
각 가마별 도자기의 수는 월요 7점, 요주요 22점, 정요 39점, 자주요 38점, 용천요 17점, 경덕진요 101점, 기타 19점으로 총 243점에 이른다.
주목할 만한 중국 도자
도자기를 감상할 때 흔히 명품을 위주로 한다. 그런데 품질이나 예술면에서 완성된 명품은 아니라도, 어설픈 해학이나 치기어린 순수함, 혹은 특별한 생명감으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도자기들이 있다. 신안 해저에서 인양된 남송 양식의 어룡 장식 청자병은 가히 명품에 속하는 청자이다. 몸통은 물고기이며 머리는 용인 상서로운 동물 장식이 목 양쪽에 서로 마주하고 있다. 청자 유색은 은은한 광택의 비취색으로 남송 용천 청자의 전통을 계승한 원대의 대표적인 용천요龍泉窯 청자이다.
이 청자병과 비교할 만한 작품은 신안 해저에서 인양된 청자 인물상이다. 이 인물상은 다른 명품 자기를 제치고 과감하게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인물상은 여인으로 얼굴에 살집이 두둑하고 전체적으로 몸이 풍만하지만 눈이 가늘고 끝이 날카로워서 보는 이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얼굴과 목과 손에는 유약을 입히지 않고 태토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런 기법은 원대에 크게 유행하여 여러 작품들이 전해온다.
또 소개할 만한 작품은 요주요 청자이다. 이 청자는 연꽃 사이로 오리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오리의 포즈에서 율동감을 나타내려고 했다. 요주요에서는 주로 틀을 이용해서 매우 도식적인 문양을 나타냈으나 이 청자 오리문 대접에서는 인각과 음각을 섞어서 시문했다.
백자로는 내표지를 장식한 북송대 경덕진요의 백자 화형 접시는 내외면에 가는 빙렬이 가득하면서도 유색이 은은하다. 접시의 주둥이에서 몸체가 꽃잎 모양으로 이런 화형 접시는 오대와 송대에 유행하였고 고려 자기에도 영향을 주어 화형 접시와 대접이 다량 제작되었다.
칠흑같이 검은 색의 유약이 입혀진 도자기가 있다. 복건성 건요, 강서성 길주요, 하북성 정요와 자주요 등지에서 흑유를 제작하였다. 이들 도요지의 흑유는 각각 고유한 특색을 보인다. 특히 자주요는 ´백지흑화 당초문 매병´과 같은 명칭의 도자기로 유명하다. 이는 백토와 흑토를 두 겹 입힌 후 긁어내면서 문양을 나타낸 것이다. 이런 자주요에서도 흑유를 제작하였다. 특히 북송 후기의 「흑유 철반문 병黑釉醬斑文甁」은 칠흑같이 검은 유약에 벽돌색의 붉은 반점이 마치 호피무늬처럼 장식되어 있어 특이한 효과를 낸다.
책의 구성과 활용
이 『중국 도자』에는 도자기에 대해 세밀한 부분 사진을 많이 수록하고 필요한 경우 도면도 제시하였다. 또 관련 분야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도자 연구자들의 논고를 여러 편 수록하였다. 독자들에겐 섬세한 세부 사진과 함께 전문적인 글들은 중국 도자기를 이해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도서출판 예경의 한병화 사장께서 제작비를 아끼지 않은 결과 실물을 보는듯한 해상도 높은 사진으로 인쇄하였으며, 품격 있는 장정으로 고급화를 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학계의 연구와 일반인들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와 전반적인 역사를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본 기사는 일부자료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