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도예전 2002. 6. 19 ~ 7. 2 한전프라자갤러리
‘현대’, 그 수혜와 박탈
글/김영민 한전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김진경의 이번 전시는 ‘몇몇’ 가지 면에서 시사점을 가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예에 ‘현대’라는 말을 붙였을 때 변화하는 현상 혹은 개념에 관한 것이다. 현대공예를 말할 때, 아주 곤욕스럽게 회자되는 문제, 즉 ‘현대공예가 있는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예가 그곳에 없다는 사실뿐’이라는 조롱과 관련하여 김진경의 이번 전시는 공예 안에서는 극단적으로 쓸모를 배제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를 규정하던, 현대적인(modern) 작가가 가지는 ‘지금’(contemporary)사고의 단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공예’라는 이름을 자신의 작업에 부여하고 싶지 않은, 다시 말하면 ‘그냥 예술’이면 된다는 혹은 미적 생산물의 범주로 자신의 작품을 규정하려는 ‘생각 하나’와, 새로운 미적 정서를 환기시켜 우리생활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 쓸모의 진정한 역할이라는 ‘생각 하나’가 충돌하거나 어울리는 국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예술의 범주에 관한 문제는 ‘현대’라는 타이틀이 우리에게 부여한 수혜에 관한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 수혜 때문에 잃어버린 ‘모습’에 관한 것이다. ‘현대’라는 날개를 얻어 자유로워진 조류의 박탈된 다리의 근육같은 양면성이, 현대와 관련하여 공예를 말할 때 가지는 딜레마이다.
김진경은 이번 전시에서 그 딜레마의 통합을 모색하고 서로 화해를 주선하기는 하나, 충돌하는 개념들의 통합이 단선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지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 한계는 절충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양자를 결합한다기보다는 접합함으로써, 통합의 국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미적정서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일상의 삶이라는 문제들이 엇박자로 벗어나고, 미술이라는 영역의 울타리들이 오히려 담이 되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서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들이 ‘쓸모’에 대한 생각을 끄집어내게 되고, 그것이 공예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역할들에 미치게 되어, (미술의 분파로서의) 현대공예에서의 공예의 부재 혹은 소외라는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기는 하나 그녀가 차용하고 있는 방식이 몇 년째 지속하고 있는 작업들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듯 싶다.
삶 혹은 일상의 생활들에 자신의 작품이 융화하고 그들을 복되게 하는 방식으로 쓰여지는 기표(記標)가 이전에 다른 것으로 쓰던 것과 달라지지 않아 ‘현대’가 전가의 보도로 삼고 있는 방법의 문제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다른 것들’에 너무 많이 우선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김진경만의 방식’이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방법들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어서 그녀의 의도가 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