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던 역사 속에서도 강한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강한 긍지는 한국인들로 하여 그들의 역사를 더욱 부흥하게 했으며, 여러 면에서 현재 한국의 도예가들이 분청도자의 전통을 계승하게 하는 열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너무나 자주 그저 흔한 전통의 모방품이 등장해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소수의 젊은 도예가들이 현재의 분청의 기법을 토대로 이것을 확장해 전통적인 기법을 현대의 가치관에 맞도록 선택적으로 접근해서 현대적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도예가들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반면, 그들의 창작 레파토리를 확장해서 19세기 20세기 예술의 영향을 받아 어느 순간에 동양적이지만 동시에 서양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현시대의 새로운 생명력과 힘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최성재가 그러한 도예가 중 하나이다.
모든 도자기는 형태를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도자기의 형태는 도예가의 언어이다. 형태 만들기의 중심은 도예가의 집중력이며(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기초를 세우고 그 위에 모든 것을 빚어 올려야 한다. 도기의 모양은 때때로 그 자체가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순수하며 변형되기 쉬운 것이다. 종종 가마의 변덕으로 변할 수도 있다. 도자기의 형태는 문양을 새겨 넣는 뼈대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캔버스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최성재는 도자기의 기형을 이용해서 그의 그림이 지니는 표현적인 요소를 보여주는데 아주 능숙하다. 그의 그림은 아주 능숙한데 반면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방법을 사용한다. 한국인으로서 그는 본능적으로 동양의 미니멀리스트의 구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3차원적인 프레임 안에서 완벽한 공간감각으로 거리나 공간의 강조와 표현에 필요한 비율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다른 요소들 사이에서 공간은 그것 자체로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공간은 물이다. 그것은 물이라고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그것이 물이라고 제안하고 있지도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물이라고 알아보는 것이다. 최성재는 물을 그려 넣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공간이 물과 같이 젖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치 형태의 사각 기형작품은 활동적인 양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설명적인 그림 기법과 공간의 비율에서 축약된 청정한 형태로 옮아가는 작품이다.
최성재의 많은 작품의 형태는 점토를 석고 프레스 몰드 한 것이다. 그는 점토 원형을 이용해서 큰 몰드 틀을 만든다. 이러한 기법이 시간이 많이 들고 육체적으로도 힘이 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같은 모형을 반복해서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같은 모형에 여러 가지 장식을 시도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물레성형작가 이기도 하다.
나는 최성재의 작품과 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심오한 세계를 관찰해 왔다. 표면이 적절히 건조된 기면을 적당한 두께의 하얀 이장과 함께 코팅한 후에, 드로잉 준비를 위한 몸의 자세를 잡는다. 이 흰색의 이장은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어야 한다. 너무 젖어 있다면 흘러내릴 것이고, 너무 말라 있다면 손가락에 덕지덕지 묻어 작품 표면에 작업하기 힘들 것이다. 잠시의 생각과 심호흡을 한 후에 그는 빠르고 열정적인 움직임으로 장면을 만들어낸다. 아마 마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감과 기법을 숙련하게 할 때까지 그 기법이 태초 한 순간부터 이러한 작업을 수없이 수행해 왔다. 그의 손가락은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도구이며 부러뜨린 나무 가지와 수수 귀얄 그리고 대나무칼이 중요한 이미지를 만든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오리는 항상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최성재는 그의 작품을 석기 도예가 치고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구워낸다. 낮은 온도에서 구어 내는 것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들은 그가 원하던 형태를 얻어내는데 효과적이다. 첫 번째 장점은 성형시 형성된 얇은 벽이 휘지 않고 평편한 상태를 유지하며 구워진다. 높은 온도에서 작품을 구워냈을 경우, 작품은 휘거나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장점은 하얀 이장과 몸통 소지 색의 대비가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최성재의 작품은 굉장하고 잊을 수 없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현장감은 내가 최성재의 작품을 만났던 그날 하루 종일 나를 그 미술관에 가둬두었다. 그의 작품은 붐비고 종종 의미 없는 도자기 세계에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매 순간이 창작의 열정의 한 획 속에 포함되고 있으며, 그러한 매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선다. 따뜻하고 고요한 일상 속에 강둑을 따라 노니는 오리들이 그들의 길을 찾아다니고, 흔들거리는 버드나무 가지가 머리위로 늘어서 있다. 이런 물가의 순간들이 희미한 떨림과 갈대들의 움직임 점잖은 흔들림들이 오리떼들의 잔잔한 움직임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다. 최성재의 작품에는 모든 도자기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진흙과 유약의 축복이다.
그의 작품에는 겉치레나 허식이 없다. 그림은 자유분방하고 모든 요소요소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전반부에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옹기 항아리 이외에 숨겨진 것은 전혀 없다. 필자가 일찍이 사용했던 표현과 비슷한 공명을 지닌 것이다. ‘유약과 점토는 시간 일부를 정지시킨다. 좀더 정확하게 몇 초의 순간들이 영원히 기록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진부한 표현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이보다 더 진실하게 최성재의 작품에 내포되어 있는 시공을 초월한 품격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 도자 공예가 가지는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현 시대 표현주의를 온 나라의 도예 문화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7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