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공예비엔날레를 비롯한 크고 작은 공예전시장에서 다양한 재료와 기술, 참신한 형태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대학교육을 통해 배출된 현대공예가들이 기술적인 능숙함과 작가로서의 조형의식을 바탕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학을 졸업한 작가들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학 동문전이 큰 역할을 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대학의 동문전은 다양한 기획의 단체전에 밀려 점차 그 규모가 축소되거나 사라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별다른 내용없이 개개인의 작품 위주로 전시가 기획, 구성되다보니 회원들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관객들이 보기에는 집안 잔치로 인식되는 재미없는 전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여대 공예학과 동문전인 온공예회전은 34년 동안 섬유와 도자 두 분야에서 매년 전시를 열어왔다. 이 동문전 역시 5년마다 두 분야가 한 장소에서 전시를 개최한다는 것 외에 타 대학의 동문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35회를 맞은 이번 전시는 섬유와 도자가 한 목소리로 동문전의 새로운 출발을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여대 공예학과 동문들은 물론 다른 공예계 동문들에 고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지리감스러웠던 동문전을 바탕부터 새롭게 하자는 의미에서 삼원색의 공간을 기획하였다. 섬유공예의 평면작품부터 도자의 입체작품까지 모두 품을 수 있는 장치로써 다차원의 공간을 제시함과 동시에 각각의 색이 지닌 협의에 뜻을 두는 것이 아닌 세 가지 색이 함께 있는 삼원색 자체로 접근하여 모든 색을 아우른다는 의도인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닌 작가들을, 더구나 서로 다른 두 장르의 공예작품들을 세 가지 기본 색으로 분류하여 1, 2, 3차원의 공간에 배치하는 것은 분명 인위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작업을 통하여 작가들은 자신의 색과 위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고 그러한 고민의 결과가 관객들에게 진지하게 보여질 수 있다면 이는 인위적이라 하더라도 꽤 의미 있는 전시 기획이 아닌가 싶다.
34년동안 일관된 모습으로 지속된 전시가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없었던 전시의 주제가 생기고 그 기획 의도에 맞춰 새로운 작품을 제작해야 하며 전시의 전체적인 완성을 위해 작품 배치까지 제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작가들에게는 귀찮거나 언짢은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원색 공간 속의 작품들은 이러한 우려를 잠재우고 오히려 이들이 참신한 시도, 새로운 출발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아무 색이 없는 흑백 공간에 놓인 두 장르 간의 협동작품들은 삼원색 공간 속의 작품들보다 전시의 취지가 집약적으로 잘 표현되었다는 느낌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사실 공예비엔날레를 비롯하여 공예의 여러 장르가 같은 공간에서 전시되는 경우는 많다. 이러한 점에서 온공예회의 35번째 전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장르의 혼합전시에 비중을 두었다기보다는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이로 인한 창작의식의 고취를 통하여 동문전의 활성화를 꾀하였다는 점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따라서 동문들의 이러한 노력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동문전은 단순한 졸업 동문들의 모임이 아닌 지식과 끼가 다분한 현대공예가들의 새로운 발표의 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7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