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가득 차 있는 자연과 조형의 아름다움을 자기의 안목이 어느 만치 가늠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어느만치 간절하게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즐거움이 크게 달라진다.” - 최순우 -
모처럼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해가 뜨는 창가에 앉아 있으니 상쾌한 기분입니다. 곧 아스팔트가 이글이글 타들어 가며 늦여름의 뜨겁고 긴 하루가 시작되겠지요. 고즈넉이 앉아 있으니 어쩐지 서늘한 대나무 그늘 아래 처연한 평상, 그 곁에 풀꽃 한들거리는 내음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평범하고 당연한 그런 것을, 이제 곁에서 쉬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 삶은 조금씩 흔들립니다. 오늘도 해가 뜨고 힘겨운 하루가 시작될 거라는 사실이 행여 답답할지라도, 아침에 해가 아예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무시무시함과는 비할 바가 못 되지요. 늘 그러한 것, 오래고 늘 틀림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아슬아슬한 우리 일상을 안전하게 받쳐 줍니다. 이 시대는 당연한 것들을 베어 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 놀라운 것,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찬 도시들을 열심히 세워 왔지요. 이 여름, 서울에서 거의 모든 당연한 것들의 운명은 순조롭지 못합니다.
공예는 그 당연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닥이 따뜻한 온돌집이라서 도톰한 명주솜을 댄 방석에 앉고, 나즈막한 소반에 푸성귀가 푸릇한 밥상을 내어 옵니다. 입고, 먹고, 자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일상의 이야기 말이지요. 옛 사람들은 모름지기 그런 물건들이야말로 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있는 듯 없는 듯 알지 못할 지경이 된 책상, 입으면 시원해서 여름이면 또 찾게 되는 웃도리, 목 아래 배면 잠이 솔솔 오는 배게.
참된 것은 선합니다. 주변에서 무리하지 않고 구한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그 마음이 착하니 물건도 착할 수밖에요. 나에게는 좋지만 남을 해치는 것이라면 선하지 못하겠지요. 요즘이야 친구의 질투를 자극하려고 비싼 그림도 가구도 척척 사는 시절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산 생명 괴롭혀 만든 먹거리, 과한 장삿속으로 사람과 환경을 해쳤다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쓰는 마음이 편치는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필요와 쓰임새에 더도 덜도 없이 꼭 맞추어 멈출 때, 나를 절제하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 때, 물건은 쓰기 편하고, 비싸지 않고,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참되고 착한 것은, 저절로 아름답습니다. 순금으로 아홉 마리 용과 봉황을 박아 넣지 않아도,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온 값비싼 원석들로 치장하지 않아도,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쓰는 사람의 곁에 늘 함께 하면서 마음에 고요한 기쁨과 사랑을 안겨 주기 때문입니다. 덧대어 치장한 모든 아름다움이 사라져도, 바탕이 되는, 손으로 다듬은 나무결과 명주결의 아름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나만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모두에게 무사공평한 아름다움, 굳이 아름답다고 이름하지 않지만, 시골집 늙은 할매가 땐 군불처럼 그저 어느 날 지친 우리에게 자그마한 구원을 주는 아름다움입니다. 참되고 착한 아름다움이 충만한 세상이라면 미술이니 예술이니, 치장이니 문양이니, 그런 것들의 의미는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최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진, 선, 미´라는 말이야 낡아빠질만큼 흔해졌지만, 이 당연한 아름다움이 세상에 실현된 경우는 흔치 않아서, 미의 순례자들은 조선의 일상에 경탄했지요. 못을 사용하지 않고 짜맞추어 오래 가도 삐걱거리거나 녹이 나지 않는 목가구들, 그 가는 기둥이 뒤틀어지지 않는 사방탁자, 시간이 갈수록 더 광채를 더하는 칠과 백동 장석. 사랑의 경상이나 마루의 반닫이는 모든 장식을 거두고, 기품과 무게를 지닌 채 은은한 빛을 냅니다. 그 위에 버려질 천조각을 덧대어 만든 조각보며 누비 담요, 고마움을 여며 맨 보자기와 기억이 머무는 모시 가리개는 변화무쌍한 하루하루의 풍경을 잘도 담아내지요.
조선 선비의 목가구를 충실히 계승하고 재현하는 데 평생을 바쳐 온 화안가구와 바느질의 귀한 뜻을 새로이 새기는 빈 컬렉션이 쌈지길에서 만나 전시를 연답니다. 오늘날, 전통에 기대어 큰 이름을 좇거나 값싼 장사를 부끄러운 줄 모르는 탁류 속에 어렵게, 틀림 없는 물건의 길을 터 온 마음이 모인 겁니다. 제 이름을 드러내기보다는 쓰는 이의 일상을, 물건의 생명을, 바른 아름다움을 귀히 여기는, 어쩌면 바보같고 우직하고 또 여린 마음이요. 얼마나 바보같으면 미술을 다루는 갤러리에서 전시까지 열기로 해 놓고서 제목도 <틀림 없는 물건>이랍니까. 하지만 조그만 땅에서도 틀림없이 돋는 풀을, 지난 늦여름 틀림없는 뜨거운 볕에 튼실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 모든 흐르는 것과 살아있는 것의 애틋함을 잊지 않으셨다면, 이 지난한 계절 거친 도시 속에서 마음이 참으로 쓸쓸하다면, 아마도 당신에게도 ‘틀림 없는 물건’이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