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은 자연이 담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것을 주제로 하는 작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도 수많은 생명체의 하나일 뿐이다. 생명체는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자 한다. 초기의 작업에서부터 작가는 이러한 자연의 생명체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금번 <Black Cage-> 전시(2008. 4. 2- 4. 8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전시실)는 이러한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연장선에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형식적인 부분이나 기법적인 부분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이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재준의 작업세계는 작품의 내용적인 부분과 기법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형식적인 부분에서 작가는 대형 야외환경조형 작품 및 벤치 등 일반적인 도자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도자의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장을 제시하기 위하여 노력해 왔다. 주지하다시피 현대 미술에 있어서 도자라는 장르는 공예적인 성격과 순수예술이라는 장르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재준은 이러한 도자 미술의 성격 중에 순수 미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공예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고 함께 작업에서 담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세계는 크게 도자 메커니즘의 한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도자예술의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대한 그의 주제에 관한 것과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내기 위해서 어떠한 표현 방법과 기법연구를 하였는지에 이 두 가지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먼저 작품을 살펴보면 이번 전시에서의 작품들은 도판에 검은 색의 철창 안에 어렴풋이 보이는 수탉, 앵무새나 상어가 갇혀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SMOKED PAINTING’ 시리즈이다. 작가는 이러한 표현을 하기 위해 그을음을 사용한다. 장작을 사용하는 가마에서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러한 연기의 그을음을 활용하여 도판에 농담을 조절하여 가지고 회화적인 형상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해서 표현되는 검은 색은 농담의 효과를 통해서 어렴풋하지만 철창이라는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그 안에는 동물들이 갇혀 있는데 이러한 동물들은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줄도 모르게 배경과도 같은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검은 철창과 그 안에 나타나는 검은 그림자 같은 동물들의 형태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같은 검은 색의 이미지들이지만 철창의 수직적인 이미지와 그 안에 나타나는 동물의 검은 실루엣의 형태는 채도차이에 의하여 서로 같은 색임에도 불구하고 대비되어 나타나며 서로 긴장감 있게 표현된다. 유일하게 잘 들어나는 상어의 눈동자를 보면 강력한 바다의 왕자의 눈빛이 아니고 갈 곳을 잃어버린 우수에 찬 슬픈 모습을 하고 있다.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새들도 어렴풋한 형태로 인하여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린 소외된 모습으로 나타나며, 생명체라는 느낌이 없이 박제된 느낌으로 서서히 생명이 소멸되어 가는듯한 모습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효과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작품 전체에 드리워진 그을음을 이용한 다양한 채도의 검은 색 때문이다. 작품 전체에 나타나는 다양한 검은 색으로 이루어진 철창과 동물들은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연기로 그려진 작품들은 그의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잘 맞아 들어가는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생명체인 동물들은 우리가 먹는 식탁위에 올라오거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간들에 의해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생명체이다. 이것을 표현하고 있는 연기 또한 장작을 때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기체이지만 이는 곧 우리의 시각 속에서 사라져 버릴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체를 도판에 그을음으로 남게 하여 영구적으로 시각화시키는 작업 방식은 자연스럽게 주제를 우리에게 각인 시키고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생명체에 대한 무관심과 자연의 순리에 대한 파괴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도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도 작품에서 나타나는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것들을 곧 사라질 물질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 흔적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한 생명체와 다른 생명체간의 올바른 관계회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의 작품에 있어서 형식적인 부분과 기법적인 부분을 작가가 어떻게 순수예술로써의 도예 작업으로 풀어나가는지 살펴보자. 이재준의 이전 작업들을 살펴보면 형식적으로는 대형 야외환경조형물의 제작으로 메시지를 담고자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을 되찾고자 하는 바램에서 공공적인 장소에서 작품을 발표해왔다. 또한 작업의 형태 역시 공공장소에 어울리는 벤치나 큰 조형물의 형태로 벅수라든지 인간의 모습 등을 표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평면 작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입체에서 평면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형식만 바뀌었을 뿐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그의 작업 전반에 흐르는 내용은 그대로 이행된다. 이재준은 도예를 하는 작가로서 도예의 메커니즘의 한계에서 그 한계만을 논하면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커니즘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기법과 도예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특성을 찾아내어 새로운 순수미술로써의 표현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이번 전시인 <Black Cage->에서 작가는 이러한 새로운 기법연구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법들을 알아갈 때 우리는 그의 작업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SMOKED PAINTING’ 시리즈에 사용된 기법을 살펴보자. 연기는 잡히지 않는 물질이다. 대기 중으로 희석되며 사라지는 물질이다. 이것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이 연기를 가두어 적절히 그 농담濃淡을 표현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농담을 조절할 수 있어야 회화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회화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작가는 검은색을 표현하던 전통적인 기법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떡시루, 전통기와 같이 연燃의 탄을 흙속 깊숙이 침투시켜 검은색의 위생적인 기물들을 만들어 오던 기법이 있는데, 작가는 여기서 착상을 얻어 이러한 기법을 좀 더 깊게 연구하였고, 농담을 조절하여 페인팅이 가능하도록 하게 된 것이다. 그 기법을 살펴보면 먼저 백자도판을 900℃ 정도에서 1차 번조 후 꺼내 테이핑 작업을 하고 테라시질라타 등 흙물을 테이핑 안 된 빈 공간에 두세 번 바른다. 이렇게 바른 횟수와 두께에 따라 미세한 농담차이가 생겨나게 된다. 번조 시 가마 안에서 연기가 침투될 때 흙물을 바른 곳은 흙의 두께가 형성됨으로 탄의 침투가 깊게 이루어지지 못해 조금 밝게 나타나게 된다. 흙물을 칠하고 난 뒤 테이프를 떼어내면 깨끗하고 선명한 스트라이프 문양이 나타나며 그 뒤 가마에 다시 넣고, 질그릇가마黑陶窯에서 600℃까지 온도를 높인 후 불을 끄고 나무를 넣고 공기를 완전히 차단시킨다. 가마 안의 온도가 높아 나무가 타들어가나 산소가 없어 불은 붙지 않고 불완전 연소되며 그을음이 발생한다. 바깥으로 나오려는 연기를 모두 진흙으로 막으면 연기는 갈 곳이 없어 초벌된 도판의 입자 사이사이로 침투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애초에 테이핑 되었다 뗀 부분에는 탄이 깊숙이 침투하여 진하게 표현되고, 흙물을 발랐던 곳은 수세미와 물로 벗겨내면 그 부분은 밝게 나타나면서 농담표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기 위하여 작가는 백자 도판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흰 화지의 먹처럼 연의 농담을 미세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SMOKED PAINTING’ 시리즈들에서 나타나는 작가의 표현 기법에 대한 연구는 신선하며 새롭다. 장작을 사용하는 가마를 사용하고 연기의 그을음을 가지고 표현해 내는 작업은 이러한 다름 아닌 전통적인 도예 메커니즘에서 찾아낸 새로운 기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재준은 위에서 살펴 본대로 자신의 주제를 도예의 메커니즘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표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다시 말해 그는 흙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가마에서 구워내는 전형적인 도예 메커니즘의 틀 안에서 도예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기법을 찾고 연구하여 순수 조형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작업에서 공예적인 성격과 순수 미술의 성격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재준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점들이 앞으로의 그의 작품들에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기대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