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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월호 | 작가 리뷰 ]

무유번조에 거침없이 불을 당기는 도예가 - 김대웅
  • 편집부
  • 등록 2009-06-13 12: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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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없는 영혼을 지닌 인물
김대웅(37). 이름에서 연상되듯 웅장한 포부를 가진 큰 사람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그리고 그를 만난 사람들은 더 작고 초라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영국인들에게 땅과 권력을 빼앗긴 인도인들은 ‘겉’으로는 식민지가 되었지만 ‘속’은 결코 식민화되지 않았다. 800년이 넘는 무슬림 통치와 200년에 가까운 영국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문화를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인도인의 외양은 늘 온순하고 때로는 연민까지 불러일으키지만 야누스적 얼굴의 생명력은 외유내강이다. 바깥에서 오는 것이 정체성의 준거는 아니라는 뜻이다. 김대웅의 외향은 다른 얼굴에 지나지 않았다.
작가는 사람들과의 첫만남에 있어 이러한 고정관념의 설정들로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것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빠르고 삭막하게 돌아가는 도시생활과는 달리 멍멍할 정도로 조용하고 바람과 풀냄새, 풍부한 공기가 느껴지는 자연과 이웃한 친환경에 둘러싸여서인지 그는 늘 순박한 웃음으로 충만했다.
인터뷰는 가마번조에 관한 질문부터 시작됐다. 통가마장작가마에서 나왔다는 오묘한 요변현상을 담은 작품들을 보고 제일 먼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통가마의 장점은 봉오리 가마에 비해 통가마내부에서 기물이 재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어 요변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크다는 것과 그만큼 자연적인 색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작가적인 입장에서 보면 자연본연으로 귀향하려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더 유리할 수도 있겠다싶다. 반면 짧은 시간과 적은 땔감으로 불을 때고, 불의 온도를 적절한 타임에 끊을 수 있는 컨트롤은 약하다는 것.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 딸린 통가마를 처음 때던 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한파가 몰아치던 2004년의 겨울 어느 날. 90여 시간의 불을 때면서 뜨겁게 달아오른 가마의 온도처럼 기대또한 사그라지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 가마문을 열었더니 초벌상태인 거예요. 가마를 축조하고 나서 공불을 때줘야 한다는 걸 그땐 몰랐던 거죠. 당시엔 속상하고 이런 저런 마음에 술을 많이 마신 후 잠들었는데 다음 날 바깥을 바라보니 온 세상이 하얀 거예요. 가마 밖으로 끄집어 내놓았던 기물들 위에도 하얀 눈들이 쌓여 장경을 이루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장면은 본적도 없었고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에게 어떤 에피소드보다도 소중한 기억이 되었던 것.
인터뷰 장소를 옮겨가며 커피를 두어 잔 마셨고 동동주도 반쯤 나눠 마셨고 어느 덧 밤은 깊어갔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연스레 김대웅의 도자와의 인연이 어떻게 맺어지게 되었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막걸리를 먹다 시작된 호기심으로 술의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주병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직접 경험해보자며 단국대 도예과에 지원하게 되었다는 그의 계기는 순수하게 보여진다. 그리고 도예의 인생길로 굳은 의지를 심게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은 그 명성으로만 접하며 감복하던 박종훈 교수의 첫 수업에서 열렬한 강의를 들었을 때라고 회상한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서슴없이 꼽는다.

 

자연을 모티브로 이루어진 작업들
지난 달 서울 안국동 갤러리담에서 열린 전시의 주제 《인연nature》은 일상의 과정과 자연의 섭리가 인연의 과정에 서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동안 ‘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돌이나 나무 등 자연의 형과 색을 표현해왔고 그에게 있어 자연은 끝없는 모티브의 제공과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형과 색에서 나아가 자연과 내가 하나의 고리 안에 있음을 응시하며 꽃, 이끼, 조가비 등의 생명체 길을 따라 가는 ‘짠한 내면적 성찰의 시간’을 담게 되었다.
작품 표면의 돌기는 이끼, 꽃 등 원시적인 생명체라고 인식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충남 태안에 있는 양승호 스승의 작업실에서 수련하던 당시, 기존의 생각과 관념들을 탈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이 있었던 태안은 해안가의 갯바위를 비롯해 소라도 있고 다리많은 벌레라든가 삼엽충처럼 생긴 벌레들도 많아요. 관념적으로 꺼려지는 것들이지만 생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거죠. 이것들이 없어서는 갯바위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그 자체가 삶의 아름다움이고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이 되는 것”이라고 전한다.
돌은 돌이었고 이끼는 이끼였는데 모든 게 하나처럼, 즉 둘이지만 하나인 것처럼 다가왔다. 저마다 다른 시간대와 향기를 담고 있고, 한편으로는 모든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미묘하게 다르다. 김대웅만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인+연」, 「stone flower」, 「wave」, 「샘」, 「봄의 바라봄」 등 작품과 제목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바다의 길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크고 작고 무질서하게 놓여진 갯바위 사이에서 생명체를 발견하기란 처음엔 영 쉽지가 않다가 그들의 길을 이해하게 되면 쉽게 발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 형태의 갯바위에 길을 따라 각자 자신의 몸을 맞추고 나열을 달리한 모양이 원래 하나의 존재처럼 보여진다. 곧 바위는‘인’이 되고 조가비나 이끼는‘연’이 되어 인연을 이루니 그것이 자연이 된 것이다. 자연이 나에게 경이롭게 다가오는 것은 돌 하나 작은 생명 하나하나가 그 인연의 길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숱한 생각들이 작업노트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 자신은 특별한 작업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환경에 따라, 급변하는 심적 욕구에 따라 변화무쌍하다고 믿고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김대웅만의 체취가 뭍어나는 듯하다. 그래서 혹자는 ‘흙을 다스리고자 하는 주체할 수 없는 힘찬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하기도 하고, ‘자연이 담겨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라고 이분법적으로 반응한다. 흙덩어리를 꼬거나 짓이겨 판장의 형태를 만든 다음 이것을 휘감거나 이어붙여 일차적인 형태를 만든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다.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생각을 하다보면 관념적이거나 습관적 표현법이 들어가기 마련. 이후부터 그의 작업방향에서 그 체취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분해하거나 뒤집거나 던져 눕혀 비로소 손과 발과 머리가 분주해지고 어떤 것은 항아리가 되고 어떤 것은 꽃병이 되어 새롭게 존재의 탄생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의 통념이 뭍어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월간도예 2008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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