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로 흙을 빚는 일은 그릇이 주종이다. 대칭에 의한 회전은 다양한 형태를 담아내면서 쓰임을 전제로 한다. 고래古來로 시작된 물레성형기법의 명맥은 실로 인류사에 지대한 역할을 감내해왔던 방법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그릇이 신속하게 만들어지며, 즐거움의 유희성도 있으면서, 진득한 인내로 수련하고 고독을 견디어 내야하는 어려움도 많다 하겠다. 도공陶工으로 터득해야할 기본 성형방법이기도 하다. 단지, 쉽게 배워지지 아니하는 심술이 있어 대부분 그 언저리에서 맴돌기 일쑤이지만, 각고의 노력을 수반하면 날 새는 줄 모르고 탐닉에 빠져드는 매력도 가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물레는 쉼 없이 회전의 변형으로 몸부림치며 큰 숨을 내쉬곤 해댄다. 이번 전시에는 물레로 가능한 형태로 뽑아 결합을 통한 형상으로 인간의 머리와 얼굴을 표현하고자 실험해본다. 보편화된 상징성을 표출하려는 시도가 재미있고, 그 다양한 표정에 녹아들어 시리즈로 만나려 애써보았다.
주제는 명상瞑想, Meditation이다.
눈을 베시시 감은 묵상默想의 형상으로, 고뇌의 깊이로, 내면의 세계로, 자유로운 마음의 주인으로 해학의 자태로 나타내면서 조형적造形的 감각을 중요시 해본다. 균형과 리듬의 포용과 조화의 순조로움을 주면서 제시된 언어는 ‘명상하는 사람들’로 나를 초대하여 맞이해 준다. 인간의 얼굴은 하느님이 빚은 최상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들은 우리를 무지와 욕망과 미움을 버리라고 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사랑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보여드리고, 삶의 허상을 통한 인간의 들어난 속성을 이야기하려 해보았다.
모든 생각과 의식의 기초는 고요한 내면에서 순수한 의식으로 몰입하게 된다.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다라나Drarana와 마음이 고요해져 순수하게 맑아진 디야나dhyana, 자신의 의식은 사라지고 대상만이 우주와 합치된 사마디Samadhi는, 즉 깨달음을 말하여 준다. 긴장과 잡념의 현실세계에서 의식을 떼어놓고 밖으로 향한 마음을 자신의 내적 세계로 향하게 하여 안정과 휴식의 몸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모습들. 명상은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인간다워야 함을 말하는 의미는 이런 것이다. 자기가 만든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세속을 떠나는 것은 자기기만과 회피일 뿐이며, 우린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 해내고, 인간의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인간다운 명상임을 고요히 느껴본다. 우린 어딘가 항상 도달하려고 애쓰지는 않는가! 하지만 그 목적지는 지금 여기이고, 나를 알아차리면 온전히 존재하는 자리로 돌아올 것을 알아야 한다. 힘든 일이 생기면 그것을 초월적 존재에게 염원하는 것을 우리는 기도라 부른다. 아! 나는 누구인가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요. 지금의 삶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요.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의 전부는 아님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나로서 존재를 의식할 것이다.
산다는 그 자체가 항상 부족한 모습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하루를 다시 주시고 호흡을 주시는 분께 감사드린다. 자꾸만 틀에 묶으려 하고, 눌려서 숨죽이고 있기를 거부하면서,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하는 자체가 나를 부인하는 명상일 뿐인데…….
지금의 나의 짓거리가 이 세상에 무슨 의미를 주고 있는지, 무슨 도움을 도모해가고 있는지요. 후학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회자會者될는지 염려하는 명상들.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가벼운 먼지 한 점으로 부유浮游하는 그날까지 날개가 없다고 어찌 비상飛上을 꿈꾸지 않으랴 라는 말을 명상해 본다.
도예가 김성진 그는 끊임없이 아직도 실험하고 있는 도예가이다. 그의 이번 전시(2008. 4. 23~ 4. 29 한국공예문화진흥원)도 남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시도로 신선함을 추구하고 새로운 표현력이기에 주목된다. 그는 일단 도예의 다양한 기법에 능통하다. 그렇기에 표현하는 영역이 다양하며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 동안의 전시 내용을 보면, 판상작업으로 숲과 인간을 조형적 언어로 보여주었고, 고향에 대한 회상을 추상적 형태로 접목하거나, 대형작업으로 표면장식을 조각하거나, 순전히 물레성형으로 항아리 시리즈를 보여 주었고, 이번 6회에서 물레성형기법으로 두상Head시리즈를 보여주는데 주제는 <명상하는 사람들>이다. 크게 얼굴과 목 부위를 물레 성형한 후 결합시켰으며, 눈매는 명상하고 있는 형상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데 외형의 느낌과는 달리 내면에 삼라만상이 고여 있는 고뇌와 마음의 맑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정화된 물레성형의 그릇器 개념을 넘어서서 보면, 매우 오래된 기법이고, 그 전통의 범위를 뛰어넘기가 어려우나, 그의 꾸준한 독학적 수련은 점차 영역의 확대에 많은 의미를 보여주며, 그는 끊임없는 실험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는 대칭형의 그릇은 물레의 1차적 성형이며 여기에 변형과 다양한 장식을 부여하여 2차, 3차의 시도로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내고 있으므로, 물레성형은 가장 현대적인 기법이며 아직도 새롭게 찾아내야 할 방법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물레성형을 매우 즐긴다. 그것은 답습과정을 지났으며, 새로운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는 도공陶工으로 불리워지기를 원한다. 그것은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 기술을 전제로 하는 도예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손에 의한 테크닉이 그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을 통하여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머리의 연계성이 그를 만들어 내는 사이클이라 말하고 싶다.
그는 현실에서 머무르거나 정체되기를 싫어한다.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위치라 더구나 정지된 것은 퇴보이며, 게으른 소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도와 실험 정신은 항상 새롭다는 인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배우는 입장에서 그를 밟고 넘어갈 학생이 드물기에 그를 닮으려고 애쓴다. 새로운 방법론을 체득하고 현장에서 독립된 독창성을 보유하도록 가르치고 있어 이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이미 체험으로 경험했기에 강조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사실 자체가,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탐구하는 도공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명감과 책임감은 또 다시 전시될 작품의 새로운 시도를 기다리게 하며 기대를 주는 희망이기도 하다.
그는 무엇을 추구해야 되는지 더 나아가 도공으로서 무엇을 남겨놓아야 되는지도 그의 도예관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는 겉치레보다는 속을, 외형보다는 내면을, 형식보다는 자유를, 구속보다는 해방을, 부정보다는 긍정을, 용서를, 사랑을, 양보를, 배려 등으로 인생을 꾸려오는 분이다. 그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며, 무엇이든 진정으로 자신을 만들어 가기를 원하는 도공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여준 작품의 형태와 표정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실험치를 여러모로 감지해낼 수 있으며, 그의 지대한 노력의 흔적을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박수를 보낸다. 또한 그는 도공으로서 기술적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가 투자한 시간과 비례하면 그가 얼마나 큰 열정으로 흙을 사랑하고 있는지 가늠이 된다.
이제 그의 남겨진 인생 속에서 얼마만큼 새로운 도예의 장을 펼칠 것인지도 나의 관심 사항이기도 하다. 그는 전시가 무엇을 뜻해야 되는지 잘 알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희망과 꿈을 주는 작가라고 부르고 싶다. 앞으로 그의 작품 행보는 심오한 메시지를 부여할 것이며, 도자공예가 지닌 본질의 방향을 주시할 것이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한 도공의 넋두리를 떠나 설화처럼 고요하고 정적이 드문 고독한 그를 만나고 있음에 새삼 감사를 드린다. 주변 여건이 작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아껴야 될 도예가임은 틀림없다 하겠다. 제6회 김성진 도예두상전을 진심을 축원하면서…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