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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월호 | 작가 리뷰 ]

빛을 담다 - 한영숙
  • 편집부
  • 등록 2009-06-13 11:59:36
  • 수정 2009-06-13 14: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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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행 : 허보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선임연구원

지난 1월 14일, 오랜만에 겨울다운 싸한 바람에 귀가 시리던 날,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2층에서 열린 한영숙 개인전을 찾은 사람들은 도자기가 품은 따뜻한 빛에 마음이 한결 포근해졌을 것이다. 오랫 동안 도자 조명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 온 한영숙은 이번 첫 개인전에 빛을 담은 그릇들을 선보였다. 도자 기벽을 통과한 부드러운 빛, 도자기 사이로 새어나와 형태를 만드는 빛 등 빛과 도자기가 하나로 어우러진 작품들 속에 그녀가 빛과 더불어 담은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우선 도자기 본연의 그릇 형태를 유지해서, 그릇이 지닌 ‘담는다’라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을 부각시켜 보았습니다. 특히 무형의 빛을 도자기 안에 담음으로써 빛의 존재가치를 강조함과 동시에 도자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빛이 담긴 그릇 위에 원형의 달을 올렸습니다. 그릇과 달 사이의 틈새로 새어나오는 빛이 마치 흰 달그림자가 된 것처럼 말이지요. 풀벌레 소리 가득한 여름밤에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듯 빛나는 반딧불이의 빛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기억이 됩니다. 그 빛은 어둠 속에서 그 존재를 호소하는 빛입니다. 제 작품에서 그릇과 달 사이의 빛 역시 세상을 밝히려는 빛이 아니라, 거기에 그렇게 담겨있음을 조용하게 말하고 있는 빛입니다.

도자 조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2000년 여름 핀란드로 건너가 박석우 선생님의 피스카스 작업장에서 일하던 시기에 얇은 백자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1,380℃에 번조한 두께가 2mm도 채 안 되는 얇은 백자 잔에 홍차를 마시며, 백자의 투광성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OGI-SUKU(오지아이 스꾸: 박석우 선생의 백자 테이블웨어를 생산/판매하는 회사)에서 작업을 계속 하면서, 얇은 백자에 대한 기술적인 면과 감각적인 면을 키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지아이 스꾸는 몇 해 후 아티그램이라는 회사가 되었으며, 백자 테이블웨어에서 도자기 조명으로 생산아이템을 전환하였습니다. 아티그램은 국내에서 도자기 조명을 처음으로 상품화하여 시판한 회사였습니다. 아티그램에서 일한 4년 동안 저는 백자의 투광성을 활용한 조명제품들을 개발했습니다. 샘플뿐만 아니라 제품생산에 이르기까지 생산과정 전체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 특히 공간에 도자 조명을 시공해보는 경험을 통해 실내공간 안에서 도자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도자 조명은 금속, 나무 등의 타 재료와의 반드시 접목시켜야하는 어려움, 발광재료와 전기의 기계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어려움, 공간 내 설치 방식을 따로 고민해야하는 어려움 등 도자기 제작 이외에도 해결해야하는 복잡한 문제가 아주 많은 분야입니다. 그러한 장애물들을 헤치고 나가는 경험을 아티그램에서 일하는 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시 학교로 돌아와 작업을 하면서, 그러한 경험들이 기술적인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든든한 자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자 조명은 다른 조명과 어떻게 다른지요?
조명기의 재료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은 유리입니다. 투광성의 수치적 측면에서 보면, 도자 조명은 결코 유리만큼의 밝기를 투과시키지 못합니다. 도자기는 불투명한 흙이라는 재료에서 출발하여 고온의 불에 의해 반쯤 유리질화 되었다가 서서히 냉각되어 단단하게 거듭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도자기는 태토의 종류, 번조온도, 기벽의 두께에 따라 빛을 통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얇은 백자를 통과한 빛은 불가능에서 가능성을 성취한 듯한, 그러면서도 미묘한 불완전이 내재된 매력을 발산합니다. 얇은 백자를 통과한 빛은 정말 매혹적입니다. 그것은 흡사 고온의 가마 안에서 말갛게 달아올라 반쯤 투명해진 상태의 도자기를 보는 것처럼 경이롭습니다. 따사롭고 부드러운 햇빛을 머금은 듯한 빛을 만들어 주는 조명은 도자 조명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자 작업에도 여러 기법이 있는데, 주로 택한 작업 방식은 어떤 것인지요?
주된 성형 방법은 슬립캐스팅입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그릇이라는 기본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좀 더 세분해보면 그릇 형상과 그릇 안쪽에 얹힌 달의 형상, 이렇게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릇 형상들은 이중벽 구조로, 드레인 캐스팅drain casting을 기법으로 이용하여 기벽을 최대한 두텁게 그래서 불투명하게 제작했습니다. 원형의 달 형상은 투광성을 지니도록 얇게 드레인 캐스팅하되, 자연스러운 두께 차이를 주어 빛의 투과 정도가 다르게 제작하거나, 혹은 솔리드 캐스팅solid casting 기법으로 두껍고 불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그릇과 달 사이에 새어나오는 빛이 더 부각되는 것이지요. 달의 형상에는 색, 질감 등으로 다양한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번조 방법은 대부분 1280도 산화번조였으나 일부 환원번조를 시도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릇’이 완성되면 내부에 LED를 이용해 빛을 담았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무엇입니까?
도자 역사를 살펴보면, 얇은 기벽의 투광성을 이용한 작업이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박태자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지요. 또한 1950년대 미국 작가 루돌프 스테펠Rodolf Staffel을 비롯한 많은 현대 도예작가들 역시 얇은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에 심취했습니다. 그러니 이미 투광성을 이용한 도자 작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도자기로 빛을 표현하려는 경우, 대부분이 투광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이번 전시는 물론 앞으로도 도자기에 빛을 담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 싶습니다. 빛을 위해 그릇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과 그릇이 서로 녹아든 형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그릇 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해볼 생각입니다.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흰 그림자’라는 일견 아이러니한 주제를 다른 형상에 적용시켜보고 싶습니다. 더 욕심을 내자면 무형의 다른 요소들 즉 소리, 바람, 움직임과 같은 것들을 빛과 함께 도자기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또 학업과 작업 그리고 강의까지 하고 계시니 어려움이 많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러한 일상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는, 같은 여건의 작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간 안배를 잘하고, 작업을 위해 주어진 시간과 여건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육아가 제일 힘듭니다. 가장 큰 기쁨을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이지만,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웃음) 작업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할 때는 본인이 엄마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육아보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지니까요. 사실, 여러 역할을 겸하는 어려움이 크지만, 어렵기 때문에 결실을 보았을 때에 스스로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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