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작업실은 서울 당산동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오피스텔이다. 언제나 그렇듯 작업공간의 분위기는 선생의 성품을 닮아 단아하다. 인터뷰를 위한 테이블 위에는 A4용지 서넛쪽의 자필 자료와 여러 권의 두꺼운 사진 파일이 반듯하게 준비돼있다. 선생은 도예가로써 스스로 철학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에 새겨온 세가지의 가르침이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교육자이셨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의 후배와 제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재불여근才不如勤.아무리 재주가 많아도 성실한 사람보다 나을 수 없다. 도예가에게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도예는 과학과 예술이 완벽히 조합돼 완성되는 예술입니다. 순수미술과는 다른 점이죠. 지리와 수학, 화학이라는 복합적인 기본 지식교육을 우선 배워야 합니다. 이후 기법습득은 반복적 기능교육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은 전통기법이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일 수도 있지요. 불성무물不誠無物. 성의를 다하지 않으면 완성된 결과를 볼 수 없다. 도예는 초급으로 만들어지면 극히 기능적이기만 한 물건이 되지요. 마음에서 우러나 만들어져야 진정한 예술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흙 작업은 무심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여기서 ‘무심’이란 성의 없이 막 만들란 얘기가 아닌 욕심을 버리고 성실히 임해 흙을 빚으라 의미인 것 같아요. 능변여상能變如常. 항상 변하지 않으면 현상유지 할 수 없다. 전통을 버리라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멍에가 될 수도 있지만 기본의 뿌리를 풍부하게 해주는 바탕이 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도예분야에서는 전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저항이 많지요. 하지만 그 안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선생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화다.”를 말한다. 조금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오랜 경험에 의한 깨달음이다. “세계화시대에 한국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은 무의미하다라는 주장도 있죠. 이 주장은 문화의 획일성을 야기시킬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문화 전쟁의 시대입니다. 각박한 심정으로 대응해야하는 시기죠. 우리 고유성,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를 고민해야합니다. 고유성은 역사적 산물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만이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5천년의 문화 축적은 무궁무진한 컨텐츠를 제공합니다. 도예분야에서는 신라토기, 고려청자, 조선분청과 백자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독창성을 발견해서 활용할 수 있죠.”
도예비평에 대해 순수미술비평과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함도 언급한다. “서구의 미술이론은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내세우죠. ‘도예가 흙으로 하여금 작가가 의도한 것을 말하려는 수단이며 이것이 새로운 사조를 지향하는 이상이다.’ 라는 분석은 서양의 이론적 시각입니다. 동양은 다릅니다. 흙속에 몰입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죠. 흙과의 대화에서 호흡의 일치를 느끼는 것이 동양의 도예사상입니다. 일본의 국보가 된 찻사발은 욕심을 버린 무심의 경지에 이른 도공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다른점이죠. 그들은 자연을 정복했지만 우리는 자연에 순응했어요.”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조정현은 1940년생으로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도예과 석사와 1976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 석사를 마쳤다. 1986년부터 2년간 한국공예가회 회장, 1992년부터 2년간 한국현대도예가회 회장을 역임했다. 1969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 2004년 대한민국 대통령상으로 녹조 근정 훈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