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개관을 앞두고 있는 경기도 안양의 수리산자락 아래 자리한 ‘돌석도예전시관’에서는 수 백점의 옹기항아리를 볼 수 있다. 현대식 건축물 지붕 모서리에는 전통 기와에나 올라있어야 할 잡상이 올라서있어 이채롭다. 이 전시관은 평생 옹기작업을 해온 김석환 선생이 30여 년간 준비해온 숙원 사업이다. 선생은 서울 신촌집에서 주말도 없이 매일 아침 이곳으로 발걸음 한다. “요즘도 흙 작업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흙이 말을 들어야지!”라고 답한다. 평생 힘차게 옹기 물레를 돌려온 옹기장이도 세월의 흐름은 이겨낼 수 없다보다.
선생의 전통사랑은 남다르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우리 전통을 기반으로 변형된 도자예술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아 발전돼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도예계 현실을 지적한다. “전위적인 도자가 들어오면서 전통도자가 자꾸 멀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1960년대 대학재학 시절만 해도 전통도자를 배우고자 한 동료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통보다는 서양의 전위예술에 빠져들어 성향이 바뀌었지요.” 선생이 옹기를 고집하게 된 이유다. 어떤 방법으로든 전통을 붙잡고 싶어 선택한 것이었다. 김석환 선생은 1972년 단국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한 이후 30여 년간 옹기에 대한 사랑으로 제자들에게 전통기법을 전수했고 전국을 돌며 옹기를 수집했다. 현재 선생이 수집하고 직접 만들어 보유하고 있는 옹기는 천 여 점에 이른다. 그 옹기들은 선생의 전통에 대한 애정의 전부이다.
젊은 도예가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리자. 단번에 “전통을 지키라.”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하더라도 물레작업의 충실한 기반 위에서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는 교직에 있을 당시 학생들에게 혹독하게 발물레를 가르치던 선생이었다. “제자들에게 물레를 철저히 하라고 강조했어요. 그것에서 한국의 전통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통에 대한 남다른 애착 때문인지 선생의 작업장에는 제자들의 발이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살림집과 같이 있었던 지하 작업실에는 선생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찾아온 제자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선생의 가족은 뒷전이 됐다. “내 생애 가장 후회스러운 것 한 가지는 가족들 특히 남편에게 아내노릇을 못해준 것이지요.” 하지만 이같은 애틋한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와 같은 결과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제자를 가르치던 교직생활이 그리우시냐는 질문에는 “옹기 만드는 일이 더 즐거웠습니다. 교직생활에 대해 아쉬운 것은 옹기 만드는 제자들을 많이 못 키운 것이지요.” 이제 선생이 발물레를 돌려 옹기독 짓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게 됐지만 다행인 것은 선생이 평생을 바쳐 손수 만들어낸 결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은 위안이다.
김석환은 1932년 인천출생이다. 1962년 홍익대학교에 입학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전, 서울현대도예공모전, 동아미술제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94년 덕수궁에서 <오지그릇의 어제와 오늘전>을 개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