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여개의 미니어쳐 집들과 화려한 채색의 집들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로비를 장악하고 관람객들의 시선과 발길을 머물게 한다. 이경주 개인전 <이경주_즐거운 나의 집(Lee Kyong Ju_Home Sweet Home)2008. 12. 8 ~ 12. 12>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행정안전부 중앙청사의 삼엄한 경비와 경계를 뚫고 들어와 전시의 제목이자 주제인 ‘즐거운 나의 집’을 찾기 위한 도자陶瓷 지도를 그려냈다.
이경주는 1999년 첫 개인전 때부터 <집>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왔으며, 수많은 크고 작은 도자기로 만든 집들을 하늘에서 조망하듯 설치한 이번 네 번째 개인전은 그동안 집에 대한 사유를 체계적으로 조형화하면서 작가 작업에 있어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공통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을 이루는 요소이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이슈로 다가온 <집>이라는 주제를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이경주 작가만이 가능한 이상적이고 정서지향적인 <집>을 제시함으로써 공간에 대한 담론을 조심스럽게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가로 4.5m, 세로 10m의 바닥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번 전시는 도예를 공예의 한 장르에 국한시키지 않고 현대미술을 표현하는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영역의 확장을 가시화시켰다. 일생동안 가정을 갖지 못하고 방랑하다 객사한 미국출신의 작사가 죤 하워드 페인John Haward Payne의 노래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에서 제목을 차용하여 20세기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세계화 속에 변모해 가는 집의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집은 인간 존재의 토대로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나와 타자, 외부와 내부를 구별하는 경계이다. 20세기 문명을 증언하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집이란 ‘거주를 위한 기계’이며, ‘당신은 자전거나 냉장고, 자동차를 바꾸듯 당신이 거주하는 기계Machine for Living를 자주 바꿀 수 있다.’고 한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언급은 현재의 집 개념에 적확했다. 전 세계적인 이주의 증가와 그에 따른 새로운 삶의 형태는 집에 대한 기존 개념을 변화시켰다. 속도와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집 잃은 존재Homeless Being인 현대인들에게 집은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정신적 안락과 휴식의 공간이기보다는 투자 가치만 부각된 물질적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경주의 이번 전시는 네 면의 벽과 천장, 바닥으로 구성된 물리적 공간으로써의 집이 아닌 부유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심리적 공간으로써의 집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미명아래 상품화된 집이기 보다는 경계를 허물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눔과 공존이 의미 있는 진정한 ‘즐거운 나의 집’ 찾기를 지향하고 있다. 8±5cm 크기의 집들을 ‘선시공 후분양’ 한 <즐거운 나의 집 분양 프로젝트>는 지도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듯 관람객이 4,500여개 집 가운데 자신만의 ‘즐거운 나의 집’을 스스로 선택하여 쇼핑하듯 종이봉지에 담아가게 함으로써 관객과 소통하면서 가치교환의 수단이 되어버린 집의 개념을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경주_즐거운 나의 집>은 실제적인 통제와 경비로 보안된 정부중앙청사를 급습해 거대한 공공건물의 일상을 깨고 이주와 유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에게 진정한 ‘집’의 의미와 개념에 대해 묻고 있다. 변화된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외부 세계로 나아갈 출발점인 집에 대한 시각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생각해보는 이경주의 길 없는 지도 그리기인 <즐거운 나의 집>은 현대미술의 맥락 속에서 특정 공간과의 만남을 통해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시도했다고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