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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1월호 | 전시토픽 ]

조선철화백자전
  • 편집부
  • 등록 2009-06-13 11:39:48
  • 수정 2015-05-12 06: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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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2.12~2009.2.20 경기도자박물관

 

지난 1996년 17세기 철화백자용문호가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당시 도자경매 사상 최고가인 842만달러(약 115억원)에 팔린 적이 있다. 철화백자는 비록 청화백자의 대용품으로 유통되기 시작했지만 분청사기와 같은 소탈함과 해학적인 멋을 담고 있는 등 나름 고유의 맛을 지닌 양식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사실은 틀림없다. 조선왕실이 철화백자를 수용하고 지방에서도 백자에 철화문양이 장식되기까지의 그 흥미진진한 전개를 <조선철화백자>전에서 드러내고 있다.

경기도자박물관의 새로운 기획전인 <조선철화백자전>이 오는 2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경기도자박물관이 발굴조사한 가마터 유적 가운데 경기도 광주 송정동·신대리 분원가마터와 안성 화곡리, 가평 하판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조선 17, 18세기 철화백자 유물 약 10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철화백자는 산화철 안료를 이용해 문양을 그린 것으로 철회백자라고도 하는데 값싼 안료로 여겨져 값비싼 수입 코발트 안료로 그린 청화백자에 비해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조선왕실의 각종의례와 연향에서 국가의 이념과 왕권의 존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릇은 값비싼 수입코발트안료로 문양을 그린 청화백자였던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국가재정이 궁핍해지고 정국이 불안해짐에 따라 청화 백자의 안료인 코발트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반면에 철화안료는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17세기부터 분원 관요에서도 본격적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청화백자의 대용품으로써 성격이 강했지만 그동안 백자에 문양을 넣은 예가 드물었던 지방의 경우 철화백자는 한층 진보된 새로운 백자양식의 등장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른 의식변화와 왕실에서 양반·사대부, 지방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요층으로 바뀌어가며 조선철화백자가 가지는 특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7~18세기에 제작된 경기도자박물관 소장의 「백자철화운룡문항아리」를 비롯해 경기도박물관과 개인소장자들이 소장한 명품유물   10여점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에 경기도박물관에서 대여되는 작품들은 경기문화재단으로 통합운영된 이후 처음 열리는 소장유물 순환전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뜻깊다.
한편 전시 개박 당일에는 <조선왕실출토품으로 본 조선도자>를 주제로한 제6회 경기도자학술세미나도 열려 최인화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의 《경복궁출토 조선도자연구》, 김경중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사의 《강화행궁출토 조선도자연구》, 박종규 경기문화재연구원의 《회암사출토 조선도자연구》 등의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이연주 기자   maigreen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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