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영숙 아트플랫폼 세인 아트디렉터
최근 미술계에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전통의 현대화이며, 그러한 현상의 하나로써 전통적인 소재를 차용한 작품들이 눈에 띄고 있다. 민화를 재해석한 작품, 전통산수화에 도시적 풍경이 결합된 작품, 청자나 백자의 색과 형태를 응용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여타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표피적인 차용과 달리, 작가 이명아는 도자기 재료를 활용하여 현대도예의 조형적 특징과 함께 미니멀한 작품형식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경우는 모양의 아름다움 외에도 다른 예술품에 비해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의 감성을 잘 표현하는 예술품이다. 작가는 이러한 도자기의 조형성과 역사성에 착안하고 나아가 작가 개인의 감성적 조형언어를 가미하여 이번 전시 타이틀인
지난 전시에서는 《기억의 잔상》과 《Skyscape》를 주제로 하여 기억의 흔적과 시간의 괘적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작품에서처럼 기억과 시간이라는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일관성을 띄지만, 형식적인 면에서는 더 평면화되고 단순화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The Second Puzzle」이라는 작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작가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 특징을 볼 수 있다.
첫째,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내면의 시정詩情성이다. 작가의 시정성은 지붕이다. 전통가옥의 지붕이라는 특정한 형태가 작가의 손을 거침으로써 새로운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아파트 지붕의 직선들이 서로 겹쳐짐으로써 계단 형태의 선으로 나타나는 것을 통해 ‘Skylines’과 ‘Skyscape’을 담아내고 있다. 기독교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에게서 지붕의 의미는 하늘과 인간세계의 경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인간 삶의 보호막이다. 또한 개인 기억의 흔적이 머물며 역사를 품고 있는 저장창고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지붕은 과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에서 작가의 주정적인 뜨거운 느낌을 표현하는 중요한 소재가 된다.
작가의 감정을 추상작업에 표현한 대표적인 국내 작품으로는 1세대 추상화가인 수화 김환기의 말년 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있으며, 거기에서 김환기는 작가 자신의 내면의 감흥을 조형 요소들인 점과 선 그리고 색채로 표현하는 한편 고향에 대한 무수한 그리움을 수많은 점으로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해외 작품으로는 몬드리안의 말년 작인 「브로드웨이 부기우기」가 있는데 이는 초기의 차가운 추상적 표현인 분할이 아니라 뉴욕 대도시의 밤 풍경을 통해 음악적 영감을 창조해 낸 감성적 추상 표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추상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내면의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은 조형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심미적 미감을 끌어내기도 한다. 작가 이명아의 ‘Skyscape’는 아파트 건축물의 외형적 특성에다가 저녁에 바라본 아파트의 인상을 사각입체로 부조함으로써 내면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기하학적 추상이다. 위에서 언급한 지붕이라는 오브제가 물적物的 대상을 떠나, 주관적 순수 구성을 표시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형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The Second Puzzle」을 보면 정사각형 형태의 유니트Unit가 동일한 크기로 40여개 나열되어 있고, 내부에는 아파트 지붕의 중첩된 계단형태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전시장 한 면에 설치된 이 작품은 환경조형 작품으로도 설치될 수 있을 만큼 회화성과 조형성까지도 갖추고 있다. 회화성은 유약과 번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통 유약인 소금유Salt Glaze와 현대 유약인 러스트 골드Lust gold등을 사용하였고 타일에 숫자와 영문 문자 등을 전사한 기법을 이용하였으며 번조는 저온 및 고온 번조를 두루 사용했다. 이는 도자기의 기본인 흙을 이용하여 기하학적 추상표현을 하기 위한 작가의 끝없는 실험의 결과이다. 이러한 실험성은 작가의 작업실에 있는 다양한 드로잉 작품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추상에서 강조되는 조형적 요소와 원리가 분명히 내재된 이 작품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지나간 과거의 흔적을 삶의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퍼즐 형식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시간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이입 방식은 조형성만으로는 작가의 생각을 이입시킬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위의 두 가지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작가의 작품은 서정적 추상 회화의 한 경향인 앵포르멜 양식이 내재된 주관적인 기하학적 추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곧 미술사조의 형식적인 측면만을 따른 것에서 벗어나 작가의 독자적인 심미안이 부각되는 기하학적 추상표현인 것이다. 순수한 모더니즘 형식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을 통한 내면의 시정詩情과 현대 도예의 미감을 표현하는 작가의 독창성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