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2008.01월호 | 특집 ]

미국의 도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고
  • 편집부
  • 등록 2009-06-08 15:48:01
  • 수정 2015-05-12 04:39:28
기사수정


글  토니 헵번Tony Hepburn 캠버웰 컬리지 오브 아트 교수
번역  최석진 미국리포터

먼저, “미국의 도예”라는 주제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기에는 공간이 허락되지 않아서 미국의 지난 도예의 역사 50여 년간 가장 돌출된 문제와 현상을 선택했음을 밝힌다.

1950년대, 여러 해외 도예가들이 미국을 방문했는데, 그들로 인해 국내의 도자 예술에 대한 미적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온 버나드 리치Bernhard Leach와 일본에서의 쇼지 하마다Shoju Hamada 그리고 소유츠 야나기Soetsu Yanagi였다. 이런 작가들은 미국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강의와 작업 시범을 보였으며, 그들의 영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들의 과업은 도예의 기술이나 공예성을 영구적으로 강조하며, 청중들 앞에서 작업 시범으로 기器를 만드는 전통을 지속해온 피터볼커스Peter Voulkos나 다른 작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작품의 개념Concept이 동등한 열의로 토의되기까지 다시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이전에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 도자예술이 이따금 주된 미술잡지에서 논의가 되곤 했지만 실제로 이것은 공예에 대한 언급으로 귀속되거나 격하된 것이었다. 193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활동하던 대부분의 도예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기器를 사용하였고, 도예작업은 더욱 예술의 가장자리로 비껴졌다. 

1960년대에 가장 중요한 진보의 커다란 걸음으로 ‘도예조소’가 등장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명칭은 일반적인 조각과는 다른 양상을 시사하며 최근에서야 사라져 가는 경향을 보이는 예술 범주상의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 사이에 미적 선호도를 나누는 흥미로운 지리적 구분이 생긴 것이다. 당시 서부는 문화적 주류에서 벗어나고 일종의 변절자로 여겨진 반면 미국의 동부, 주로 뉴욕 등에서는 돌이나 브론즈 그리고 나무 등과 같은 전통적인 재질을 사용한 조각이나 그림이 아닌 작품은 반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후에 나타난 도자예술의 대 변혁은 서부의 캘리포니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도예의 전통이 동부에 알프레드 대학Alfred University 같은 학교들에 의해 세워졌지만, 그런 학교들은 전통에 대한 지지가 남아있었다. 공예 와 예술, 두 분야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포스트모던Post Modern 시대의 이해력이 필요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이 성취한 일은 그 상태에서 깊이 투자되어진 전통적인 제도와 이미 확립된 일들에 도전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몇 군데의 학교들과 미술 화랑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도예를 다루었다. 그들의 전제는 도전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내용에 대한 전체적 개념을 살펴보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조셉 그리제리Joseph Grigely가 그의 저서인 『Textualterity』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내용은 단순히 만들어진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재발명되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단순히 화랑들이나 학교들 뿐만 아니라 미술관까지 영향을 미쳤다. 즉, 도예는 여전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장식미술 파트 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었다. 만약 도자기가 그들의 컬렉션으로 들어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점토로 만들어진 조각은 혼돈을 일으켰다. 그러나 예술 범주상에 둘러쳐진 벽은 무너지고 있었다. 로렌스 위너Lawrence Wiener는 “이 세상은 오브제들로 가득하다. 나는 이곳에 더이상 더하고 싶지 않다. 단지 나는 예술가로서 계속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라고 말했다.
한때, 도예는 순수미술의 주류에 의해 둘러싸인 작업이었다. 요즈음 우리는 모든 미술 분야가 둘러쌓인 상태의 시대에 있다고 느낀다. 인터넷이 수직성의 이동이 아닌 수평성의 정보이동을 만들어 왔다. 학생들은 그들의 기술에 대한 즉각적인 정보를 갖는다. 이것은 그들의 ‘사고’를 바꾸고 있다. 한 학생이 최근에 나에게 자기 명함을 주었는데 그는 자신의 작업을 ‘도예, 조소, 기능성 용기, 평면 디자인, 입체 디자인’ 이라고 묘사했다.

최근에 졸업한 학생인 크리스티 롸이트Christie Wright는 덴마크에 있는 드룩 디자인Droog Design에 일하러 갔다가 파리에서 보그 잡지에서 유행분석가로 일했고 지금은 뉴욕으로 돌아와서 게이샤와 핸드폰의 합성을 바탕으로 한 도예 조소를 만들고 있다. 즉, 무엇이든 가능한, 예술세계를 수평으로 보는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불안정한 토양 위에 있다. 이것은 좋은 점이다. 미국의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작품에 점토를 첨가하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제프 쿤스Jeff Koons나 토니 그랙Tony Gragg 그리고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는 지난 10연간 유명한 점토 작업을 만들어 왔다. 점토의 약함이 미술시장에서의 문제거리라는 오래된 속담은 사라졌다. 

기술. 새로운 기술의 역할이 중요한 가치로 강조되는 듯하다. 이것은 다시 한번 통제에 대한 생각과 성형과정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다시 정리하게 한다. 필자의 크랜불룩Cranbrook Academy of Art 학생들은 점토를 만지지 않고 도예의 형태를 만든다. C.N.C Computer Numerical Controlling와 같은 과정은 라이노Rhino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기 위하여 점토를 놓고 프린터로 점토를 다듬어 신속하게 원형을 만든다. 이것은 ‘신념의 보호장치’로 인해 비판되는 ‘손을 떠난’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과정들은 전통에 대해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이 방법들은 전통을 확장하고 있다. 
교육은 어느 분야에서나 기동력이 된다. 도예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도자예술은 미술계의 논의의 필수의 분야이다. 도예는 고립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계 완전한 부분이다.  도예 조각은 모든 조각의 시야로 논의되고 평가된다. 기器는 모든 종류의 기로서 평가된다.
도예의 미래는 다양함에 달려 있다. 즉 미술에서의 도예와 건축 그리고 디자인부분에서 도자예술이 활동의 한 영역이 될 것이다. 우리는 조직적으로 민첩한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전 세계 문화 그리고 거리의 문화가 모두 포용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예술가들은 항상 어떤 특별한 재료나 과정에 자연히 이끌린다. 이것은 ‘그들이 누구인가’와 ‘그들이 선택하는 재질과 과정’ 사이에 일종의 상호 신진대사가 맞기 때문이다. 도자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 본 사이트는 일부자료만 등록되었습니다. 더 많은 자료는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0
비담은 도재상_사이드배너
설봉초벌_사이드배너
산청도예초벌전시장_사이드배너
월간세라믹스
전시더보기
작가더보기
대호단양CC
대호알프스톤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