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도예가 서광수
도자기에 41년의 세월을 담아낸 전통백자, 진사작가
겨울나무들이 늘어선 오솔길을 따라 서광수(55) 도예가의 작업장을 찾았다. 그가 작업하고 있는 ‘한도요’는 경기도 이천과 광주를 어우르는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산비탈을 오르는 좁은 길을 지나면 작가가 사는 작은 초가집이 보이고 그 초가집 뒤로 작업장으로 사용되는 1층짜리 건물과 봉통마다 입구가 검게 그을린 6봉짜리 장작 가마가 묻혀있다. 가마 곁에는 소나무 장작이 높이 쌓여있다. 기자가 처음 만난 서광수씨는 도자기와 함께한 세월이 묻어있는 널찍한 어깨와 턱을 덮고 있는 덥수룩한 회색수염이 인상적인 모습이다. 말수가 적어 기자를 난감하게 하기도 했지만 도자기와 함께 그의 삶은 이미 많은 이야기를 풍겨낸다.
이천 토박이인 서광수도예가가 도자기와 인연을 맺은 지는 올해로 41년째이다. 자신의 가마를 갖고, 자신이 원하는 작업하고 있는 지금의 그가 되기까지 힘겨운 세월을 감래해야 했다. 철이 들면서부터 지순택요에서 일하며 도자기의 기본적인 기술을 배웠고 도평요가 문을 열던 76년부터 80년까지 도평요에서 가마대장으로 있었다. 그렇게 20여년간 다른 요장에서 도자기술을 익혀 86년도에 들어서 독립된 자신의 작업장을 열었다. 86년도에 서광수씨는 이은구씨, 유광열씨 등 도예가 7명과 함께 ‘이천 도자기 축제’를 처음 개최하기도 했다. “일본의 아리타 도자기축제를 보고 와서 이천의 많은 도자기 업체들이 함께하는 ‘도자기축제’가 의미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 시작은 남의 땅을 빌려 ‘도자기장터’처럼 열었는데 그 행사가 문화관광부의 관심을 끌고 도자기엑스포로 발전하게 된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이런 공로 덕에 그는 94년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공로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전통백자 장작가마소성, 가마여는 날 찾아오는 손님들로 분주
그의 작품과 전시 후원하는 후원회도 생겨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전통백자이다. 무지백자 외에도 청화백자, 철화백자, 진사자기 등을 빚는다. 2달에 한번 가마 불을 지피는 데 가마를 여는 날이면 주변지역과 서울에서 손님들이 찾아온다. 서광수씨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의 작업과 전시를 후원하는 후원회가 조성돼 있어 가마 허는 날이면 사람들이 모인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통가마를 고집하는 것은 전통가마에서만 낼 수 있는 맛 때문입니다. 장작가마 작품이 눈에 익으면 가스가마에서 나온 매끈한 작품이 눈에 차지 않습니다” 그의 말처럼 그의 달항아리와 정병 등의 작품에는 불의 흔적이 남아있다. 진사자기는 요변이 더욱 확연하게 나타난다. 기물 전면에 동을 칠해 번조해도 가마 불의 움직임과 환원정도에 따라 붉은빛과 푸른빛이 어우러져 나온다. 장작가마에서 완성된 작품들은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서광수씨는 이런 의도 할 수 없는 전통 가마의 묘미 때문에 가스 가마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초벌도 장작가마에서 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빛은 유백을 띠는 무광백자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 국내외서 왕성한 전시활동
도예가 서광수씨는 발색이 좋은 철을 구하기 위해 철광을 찾아가기도 하고 유약재료로 쓰이는 도석을 직접 채취하기도 한다. 태토는 직접 수비한 흙을 판매하는 흙과 조합해 사용한다. 그의 백자유약은 양구도석과 은고개도석, 석회석, 대리석 등의 도석을 이용한다. 양구도석을 캐오던 지역이 군부대 안에 있어 구해오기가 힘들다고 한다. 유백을 띠는 무광백자가 그가 추구하는 백자 빛이다. 그는 지난 1996년과 97년에 서울과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었었고 98년은 일본 아바라기현과 후쿠오카, 고베, 도쿄 등에서 초대전을 갖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일본 전시를 꾸준히 개최하는 편이며 올 가을 즈음에 일본 후쿠오카에서 개인전을 열기위해 전시장을 물색중이다. 이밖에도 올 5월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열리는 ‘한국전통도예가전’에 초대돼 그곳에서 선보일 작품을 한창 진행하는 중이다.
무지항아리 사발 다기 일본 애호가 많아
기능올림픽 위원회 엑스포중 전통가마 기술위원도 지내
일본에서는 주로 달항아리와 백자매병 등의 무지항아리류와 사발, 다기들이 많이 판매된다. “한국에도 도자기 작품을 구입하고 감상 할 줄 아는 소비층이 크게 형성되었으면 합니다. 그나마 우리작업장에는 가마 허는 날 찾아와 가마에서 도자기 꺼내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구입해 가기도 하는데, 그런 정도로 도자기에 관심 있는 사람의 수는 미비한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광수씨는 지난 2001세계도자기엑스포의 전통도예가 전시에 초대되어 작품을 전시했다. 그 전시를 계기로 공영TV방송국에서 그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제작해 20여분간 방송됐다. 현재 맡고 있는 직책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둔리 민간소방대장’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전에는 기능올림픽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고 엑스포기간중 전통가마 기술위원을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시회에 나갈 것들도 많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는 건강을 위해 작업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서너번은 가까운 산에 오른다. 산에 오르면 답답했던 마음이 트이고 머리가 맑아져 더 좋은 작품을 하기위한 충전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등산을 위해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요즘은 해외전시 등의 일이 많아 그럴만한 시간이 나지 않는다. 등산을 좋아하고 자연을 벗삼아 지낸 줄 아는 그의 작품이 푸근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자신이 왜 도자기를 빚는지 말하지 않는다. 단지 도자기를 빚고 불을 지피는 일이 그가 할 일이고 그의 삶일 뿐이다.
“젊은이들 전통도자기 너무 쉽게 만들려는 자세 버려야”
서광수씨는 현재 동생과 함께 작업하고 있지만 동생보다도 도예를 전공한 딸이 자신의 작업장을 이어 받아 작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에게 당부한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도자기를 너무 쉽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전통도자기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데 현재 작업하는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마구 만들어 싼값에 판매하고 있는 현실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작가는 젊은 작가들이 이익에 좌우되는 작업이 아닌 우리도자기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힘써 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