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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월호 | 특집 ]

도예교육의 현장에서 본 일본현대도예의 전개
  • 편집부
  • 등록 2008-12-24 19:02:06
  • 수정 2015-05-12 03: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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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교육의 현장에서 본 일본현대도예의 전개
글·사진  다이쵸토모히로大長智廣 일본 아이치현도자자료관 학예원
자료협조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도예는 말 그대로 흙을 소재로 하여 번조이라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지만 복잡한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독자적 제작과정을 바탕으로, 만수천년전 죠몬繩文토기의 탄생 이래 일본 전국각지에서 여러 가지 도자가 만들어졌다. 그 전개의 바탕에는 중국과 한반도 등지에서의 영향을 중심으로 하는 연속된 기술의 혁신이 있었다. 그러나 기술혁신에 의해 이전의 기술과 양식이 무시되는 직선적인 전개가 아닌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토기, 도기, 자기가 병렬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복선적이고 중층적이며 다양한 일본도자의 세계가 형성되었다.
현대의 도예표현을 형식적으로 개관하면 기, 오브제, 크래프트, 프로덕트 등이 있으며 표현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그 가운데 도, 도예, 야키모노라고 불리우는 작품제작을 하는 작가들은 여러 부류가 있다. 종래의 도예 형식과 양식을 무자각적으로 답습하는 작가, 도예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미술과 대등하거나 또는 그것의 경계영역에서 표현활동을 하는 작가(그러나 도예와 현대미술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차이성에 대한인식을 문제로 삼아야 되는) 그리고 도예로서의 필연적인 조형을 모색하는 작가들로 나눌 수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현대미술의 작가가 도陶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작품 등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도예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식의 차이를 가진 작가들에 의해 도예라는 분야가 막연하게 형성되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과거와의 형식적, 소재적 동일성에 의해 받아 들여지는 현상에는 서양의 근대미술개념에서 유래하는 하이어라키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도예라는 장르의 본질적 예술성을 애매하게 하는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개인작가의 등장과 대학도예교육의 시작
원래 산업적인 측면에서 발전 전개되어 온 도예에서 근대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오늘날의 개인작가와 같은 존재는 전무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일본에서 특히 다이쇼大正시대 이후 서양의 미술개념을 공부하거나, 모모야마桃山 시대의 도자 등 고전적인 연구 등을 통해 도자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하는 개인작가가 등장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선구적 역할을 한 -지금도 그 예술관이 현대도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은 도미모토 겐키치富本憲吉이다.(사진1) 도미모토는 도쿄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한 후 영국에 유학하는 등 서양근대미술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도자는 자신의 취미성과 창작성이 결합된 지점에서 선택된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빌려가면서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 독학으로 도예의 기술을 익혀나갔으며 그러한 가운데 도자의 본질을 발견하고 작품으로 구현하였다.
예전부터 도자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도예공방의 가문에서 태어나던가 도제로 들어가 오랜 기간의 수련을 하고 독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지금도 일부 남아있으나 종래의 상황과 비교하면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도미모토와 같이 독학으로 기법을 익히면서 도자의 본질적인 조형을 확립하는 자세나 모모야마 도자 등 고전의 연구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결합하는, 그리고 도자를 현대에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선택해 나가는 작가의 존재는 도자의 제작이 근대적 의미에서 예술표현의 생성의 장으로 전환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도예교육의 경우에는, 도미모토 등과 같이 초기의 개인작가들이 교육현장을 재구성함에 따라 산업적, 장인적 도예제작의 현장과는 의식적인 면에서 전혀 다른 미술계대학과 전문교육기관이 그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토시립미술대학(현, 교토시립예술대학)에 일본 최초의 도자기전문학과가 설립된 것은 1950년이다. 그 곳에서 도미모토는 교수로 부임하여 가모다 쇼지加守田章二, 야나기하라 무츠오柳原睦夫, 와다 모리히로和田守卑良, 마츠다 유리코松田百合子, 구리키 타다스케栗木達介 등 일본을 대표하는 도예가를 배출하였다. 1955년에는 일본 유일의 국립미술대학인 도쿄예술대학에도 도자기과가 설립되어 이로에자기色繪磁器의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인 가토 하지메加藤土師萌가 초대교수로 취임하였으며 이후 다른 미술대학에서도 도예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오늘의 상황을 준비하게 되었다. 

확대하는 도자의 표현
대학에서의 도예교육이 시작되고 본격화된 당시의 일본도예의 상황을 개관하면, 2차대전 직후는 오브제도자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에 해당한다. 일본에서 오브제도자의 등장은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에 걸쳐서 시고우카이四耕會(사진2,3)와 소데이샤走泥社(사진4,5)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배경에는 이미 다른 소재와의 조합이나 선, 면, 양괴에 의한 구성 등 오브제적 표현을 모색한 데시가와라 소우후우勅使河原草風(사진6), 오하라 호우운小原豊雲 등의 전위적인 꽃꽂이 작가와의 영향관계 그리고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사진7)가 손 댄 하니와埴輪와의 조형적 공통성을 지적할 수 있는 테라코타작품 등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또한 도자를 실용품으로 인식하는 습관 가운데의 하나인 항아리의 아가리를 막아 용도성을 배제하고 거기에 순수한 포름에 의한 조형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실험적인 시도도 존재하였다. 일본의 도예표현은 오브제의 등장 이후 표면적으로 조각과의 유사성을 확대 해석한 것에 의해 종래의 전통적인 기의 형식과 대치하면서 흙에 의한 자유로운 조형표현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그 가운데 도예교육의 현장에서 후지모토 요시미치藤本能道의 존재는 당시 도예의 방향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후지모토는 나중에 이로에자기로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가 되었으나 1956년부터 전임강사로서 도미모토와 함께 교토시립미술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당시 후지모토는 모던아트협회에 출품(1958년 입회 63년 탈퇴)하였으나 작품은 브랑쿠지 등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흙에 의한 조각적인 것이었다.(사진8,9) 이와 같이 표면적 형식에서 기형을 중심으로 한 종래의 도예표현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후지모토의 표현에 대해서 당시 학생이었던 야나기하라 무츠오는 기의 형식에서 제작하였던 도미모토 보다 후지모토의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회상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에 걸쳐 원색에 가까운 색채와 크기, 형태, 그리고 현대미술의 동향과의 공통성 등 종래 일본도예의 맥락에서는 보이지 않는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는 미국도예가 여러 전람회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일본에 소개되었다.(사진10, 11) 그 영향에 의해 일본에서 야나기하라 무츠오(오오사카예대 명예교수)(사진12), 모리노 타이메이森野泰明(사진13), 도미나가 리키치宮永理吉-현재의 3대 宮永東山, 나카무라 긴페이中村錦平-타마미술대학 명예교수 등의 많은 도예가가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도미하였다 귀국 후 도예 표현영역의 확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도예의 표현영역이 확대되는 가운데, 1980년부터 81년에 걸쳐 가 개최되었다. 이 전람회의 서문에서 "일본의 도예는 완성된 양식과 전통을 대대적으로 계승하여 왔다. 그래서 현대의 도예작가 또한 그와 같은 유산이나 다양화된 현대미술의 동향에서 새로운 조형언어로서의 도예를 지향하고 있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은 기에서 오브제, 그리고 현대미술이라는 시점을 통해서 도예표현을 하려고 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이 전시회는 현대미술이 회화, 조각, 도예 등의 영역에 구애 받지 않고 경계를 넘는 횡적인 표현을 하는 것처럼 도예 역시 같은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임을 지적하는 것이라 하겠다.(사진14,15,16)
이처럼 도예가 「미술」을 지향하는 배경에는 도자가 산업으로서 전개하고 있다는 역사성이나 기억에 유래하는 잠재적인 콤플렉스가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은 서양근대예술 개념에 기반을 둔 하이어라키와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도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기에 있어서의 일본 도예는, 도陶로서 표현의 필연적 조형을 모색해 온 일부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현대 미술의 동향과 문제의식을 빌어가면서 미술과 대등하다고 여기는 실험적 시도의 의미에서 정점에 달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속에서 활약한 도예가, 또는 예술가들의 많은 수가 도자기, 조각, 회화 등을 전공하고 미술계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러나 출신에 상관없이 도陶를 사용하여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도예가 현대미술에 표면적으로는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미술의 개념을 도예에도 응용하면서 표현영역의 확대를 시도한 당시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단계에서는 도자기전공과가 대학 등 교육기관에 개설되었다 해도, 도예계의 유행으로서는, 도예의 고유성에 유래하는 필연적 조형성보다, 어떤 종류의 현대미술과 공통되는 표층적 ´전위´개념을 따르면서 장르의 횡단적 표현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세간적인 평가는 도예내부에 있어서의 평가기반이 충분히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도 포함되지만, 현대 미술로서의 작품이 중심이 되며, 이른바 도예와 거리가 먼 표층적, 표면적인 도陶의 형태가, 역설적으로 조각 등의 타 분야와의 공통성을 획득하며, 평가되고 있다는 뒤틀린 상황을 형성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예에 대한 평가가 확대해 간다면, 특수한 제작 과정을 필요로 하며, 현대미술과는 다른 사회성이나 역사성 즉 중국이나 한국 등의 아시아와의 특수한 관계성 등을 배경으로 지닌 도예의 고유성이나 도예라고 하는 장르 그 자체를 해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된다. 현대미술에서는 장르 횡단적인 작품이 횡행하며, 장르 그 자체가 해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표현에 따른 본질을 탐색하면 장르 사이의 벽은 확연하게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도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표현영역이 확대된 결과 나타난 것은, 현대미술과의 표현상의 유사점인 동시에 도예라는 장르 고유의 조형적 본질성이라 할 수 있다.(사진17,18)
그것은 표층적, 표면적인 조각적 형태나 현대미술과의 문제의식의 공유가 아닌, 도예제작의 고유한 프로세스를 해체하고 재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도예표현을 재구축하는 일과 소재나 기술과 작가와의 관계라는 관점으로부터, 도예(공예)의 고유성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움직임과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1900년대 이후는, 표현영역의 확대를 목표로 해온 도예가 표면적으로는 현대미술에 근접해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초월할 수 없는 장르사이 벽의 존재를 재확인하고 반성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표현세계만이 표면적으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도예의 고유성에 딱 들어맞는 새로운 조형의 영역을 도예독자의 언어와 논리로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 현대도예의 현상 속에서, 오늘날 미술계대학에 따른 도예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타장르의 학과들이 같은 대학 안에 모인 상태에서 교육이 행해지는 환경적 요인에 유래한다. 그러나 그 환경자체는 종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도예개념의 심화에 따라 대학교육의 장은 그 양상을 바꾸고, 종래와는 달라진 관계성을 바탕으로 성립되고 있다. 도예가에게 대학시절은 기술이나 소재를 익히는 것을 포함하여 자신의 조형적 기반을 확립해 가는 초기단계이다. 다시 말해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타장르 학과와의 관계를 통해 도예를 객관적으로 보고, 그 고유성을 재검증하기 위해 항상 열려 있는 경험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의 교수진 대부분은 한 세대 전과 같이 미국도예의 세례를 받아 유럽과 미국과의 비교검증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 현대미술과의 유사성을 경험하고, 장르사이의 관계성을 재검증하면서 도예의 고유성에 입각한 조형론을 확립한 세대이다.(사진19, 20)
역사성이나 사회성, 기술, 소재 등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도예의 고유성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도예에서 표현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도예의 맥락이 현대성 또는 작가 개개인과의 관계를 통해 재구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재 활발하게 논의 되어지는 미술과 공예의 경계에 있는 중간적 영역이라는 개념 또한, 이러한 장르 사이에 있는 고유성과의 관계가 기반이 되어 처음으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의미에는 도예를 축으로 한 표현영역의 가능성이 아직 무한정으로 넓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만 등록했습니다. 더 많은 사진자료는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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